시간은 가고 있다

کشیش yiyoungje خطبه MP3 گوش دادن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윈스턴 처칠이 어느 날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를 방송하기 위해 BBC 방송국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가 택시를 잡아타고 “BBC 방송국으로 갑시다 !” 했더니 이게 웬 일입니까 ? 운전기사가 승차를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까닭인즉슨 이제 한 시간 뒤에 위대한 정치가 처칠 경이 중요한 방송을 할 터인데 자기가 BBC 까지 가다보면 그 방송을 듣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칠은 기분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1파운드를 내놓으면서 “그러지 말고 좀 갑시다” 하고 짐짓 애원 조로 부탁해보았습니다. 그러자 이 기사 아저씨, “에라 모르겠다” 하더니 중얼거립니다. “타세요! 처칠인지 개떡인지 내가 알게 뭐람. 돈이나 벌어야지”.
우리도 이와 같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 도적같이 소리 없이 우리 앞에 나타나실 그리스도를 생각해 보세요. 그 분을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고자 합니다.

감추어진 마지막 날

36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제일 관심이 있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제1순위가 마지막 날일 것입니다. 제자들 역시 그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오늘 본문 말씀으로 대신해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실망입니다. 모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노아 때의 이야기를 하셨을 뿐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해서 가르치고자 했던 것 역시 천국과 마지막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뽑은 예수님의 비유는 모두 49개입니다. 이 모든 비유가 마지막 때가 있기 때문에 그 때를 위해서 준비하고 깨어있으라는 내용입니다.
(등불 비유(마5:15-16), 씨뿌리는 비유(마13:3-23,막4:3-20), 곡식과 가라지 비유(마13:24-30), 겨자씨 비유(마13:31-19), 누룩 비유(마13:44), 감추어진 보화 비유(마13:44), 잃은 양 비유(마18:12-14,눅 15:3-7), 밤에 찾아온 친구 비유(눅11:5-8), 주인을 기다리는 종 비유(눅12:35-40), 지혜 있는 청지기 비유(눅12:42-44), 열매 없는 무화과 비유(눅13:6-9), 잃은 돈의 비유(눅15:11:32), 탕자 비유(눅15:11-32), 불의한 청지기 비유(눅 16:1-13), 관원에게 구하는 과부의 비유(눅18:10-14), 포도원 일군 비유(마20:1-16), 예복이 없는 손님 비유(마23:11-14), 열 처녀 비유(마25:1-13))

이런 많은 비유들로서 종말에 대한 질문을 대신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역시 비유 속에 끼어서 나온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0장은 ‘포도원 일꾼과 품삯’에 대해서 그리고 본문 뒷장 25장은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종말 일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말을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 더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은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그 날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 인기를 끌 목적으로 종말일을 말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에 이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1992년 10월 28일 휴거를 공수표로 날려버리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들이 또 나타났습니다. 1992년 당시 먼저부터 불었던 1987년 8월 29일 오대양 32명의 집단 타살 사건과 사회적으로 걸프전과 맞물려 종말론은 꺼질 줄 모르고 급기야는 갈 데까지 가고야 말았다. 당시 이러한 현상은 선교지에서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공산권의 대표적인 나라 소련이 무너지자 너도나도 선교하러 간다고 들어갈 때 다미선교회의 이장림씨 역시 이곳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휴거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한 불똥은 기독교와 이단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교회 인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주며 한국인 선교사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만큼 선교하는데 타격이 많은 것입니다.
이런 암적 종말론이 근래에 또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아직은 그 세력이 미약하나 언제 바람이 휘몰아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국제적으로 9.11 태러와 이라크전쟁 등을 통해서 고조되어왔습니다.
국내에서는 ‘7기약 영원한복음’(발행처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소재)의 소책자를 전국교회에 배포하고 영문교회(서울시 서초구 신원동 소재), 영문기도원(경상북도 함안군 군복면 소재)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شما! 주님이 모른다고 하셨으면 더 이상 알려고 하면 안됩니다. 아이들 말로 ‘다칩니다.’ 하나님을 예수님을 그렇게 못 믿으십니까? 그 날을 안들 우리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에 알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것 아닙니까? 어린 자녀에게 부모님이 안 가르쳐 주는 것은 다 필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일을 미리 고하고 준비하는 일을 하는데 이 천사들 역시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위에 아무도 모르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할 일은 다했다.

38절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할 일은 다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의 일상을 말한 것입니다. 정죄하려는 목적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관심있는 일은 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구원받는 사람들이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몰랐습니다. 자기들의 생활에 바빴습니다. 구원을 위한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들

39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본문에서 강조되는 말이 있습니다. “다 멸하기까지”(kataklusmo;”:카타클뤼스모스)است. ‘홍수가 범람하여 씻어 버리듯 파멸하기까지’입니다. ‘쓰나미’때 해변에 있다가 당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전혀 준비를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닥치는 큰 파도에 덮쳐 쓸려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그와 같은 광경을 말합니다. 이것은 노아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고집스럽고 어리석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우체국에 편지 부칠 일이 있어서 갔는데, 한 아주머니가 전보문을 쓰지 못하고 울며 손을 떨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그녀에게 말을 건네었습니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예, 내가 손이 떨려서 쓸 수가 없습니다. 좀 대신 써 주세요.” “왜 그러십니까?” “내 딸이 나와 의견이 충돌된다고 해서 집을 나갔습니다. 1년 동안 종적을 알 수 없었는데 이제야 딸이 있는 곳의 주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전보를 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 뭐라고 쓸까요?” “딱 한 마디만 써주세요. 그냥 집으로 돌아오라, 어머니.” 그 이상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돌아 오라, 여기에 무슨 조건이 있습니까?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깨어 예비하라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신 이유는 우리에게 깨어 예비할 것을 당부하시기 위함입니다. 시간은 가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가 제일 둔감한 것이 있는데 세월 가는 것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없다보니 가끔 다른 아이들 크는 것보고 “참 세월이 많이 흘렀네”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혹 시한부 종말론 자들 때문에 주님이 더디 오신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시간은 흐릅니다. 종말을 행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종말이 아니어도 개인적인 종말이 먼저 올 수 있습니다. 저는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어떤 종말이든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종말을 맞이합니다.

신학대학을 갓 졸업한 어느 청년이 진정으로 사역하고 싶은 교회를 발견하여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내일 새벽 3시까지 교회로 나오게’하고 가버리시는 것입니다. 혹독하게 추운 날씨지만 이튿날 새벽 3시에 정확하게 교회에 도착했지만 교회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동이 터 오고 목사님은 아침이 지나 10시쁨 어슬렁어슬렁 사무실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유년부 학생에게나 어울릴 만한 문제를 내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두 몇 권인가?"
“66권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여섯째 날 무엇을 하셨나?"
“네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갈수록 태산이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태어난 곳은?"
“베들레헴입니다”
“자 끝났네 자네는 합격일세. 그럼 내일 다시 교회로 오게 당회에 추천하겠네”하시는 것입니다. 어리둥절했지만 전도사는 합격이라는 말에 기뻤습니다.
다음날 당회에서 목사님은
“이 청년을 우리교회 전도사로 추천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이 청년을 테스트해본 결과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나는 이 청년에게 극기 시험을 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추운 날씨에도 먼 거리에서 새벽에 왔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정확성과 약속에 대한 테스트도 합격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내가 일곱 시간이나 지나서 왔는데도 참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내 시험에서도 합격입니다. 마지막으로 신학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 너무 기초적인 성경 상식을 물었는데 기분 나쁜 표정하나 짓지 않고 겸손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이 청년을 우리교회 전도사로 추천합니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당회원들은 만장 일치로 전도사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Eph.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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