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는 믿음
Rev yiyoungje Sermón MP3 Escoitar
As palabras de Xesús(20. 준비하는 믿음) / Texto : Mateo 25:1-13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세상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철학자들과 성인이라고 말하는 지도자들, 그리고 많은 사상가들은 저마다 인생이 걸어가야 하는 길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진리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죽어갔고 정확하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떤 통계에 보니까 교회에 나오는 분들 중에서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분들이 많더라 구요. 이것은 자신이 어느 길로 가는지도 모르는 사람하고 같은 겁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어느 길인지 알아야 합니다. Vostede! 산에 등산을 하는데 어디로 가서 어디로 내려올 것인지를 알고 가야지 그냥 막 올라갑니까? 그렇게 한번 가보세요. 얼마나 답답합니까? 가면서도 어디쯤 왔는지? 또 어떻게 갈 것인지를 모른다고 해 보세요. 가면서도 답답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벌기 위한 길은 잘 아는지는 몰라도 자신을 진정으로 살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관심이 없는 겁니다.
길을 먼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1) 악의 길이 있습니다(Proverbios 1:15, 16).
이 길은 굽은 길입니다(Proverbios 10:9).
어둠의 길입니다(Traballo 24:13).
죄의 길입니다(호 2:6).
황폐케 되는 길입니다(Catro 59:7).
허무한 길입니다(Traballo 6:18).
사망의 길이 됩니다(Proverbios 14:12).
2) 의의 길이 있습니다(Cidade 23:3).
진리의 길입니다(Cidade 25:10).
평탄한 길입니다(Cidade 27:11).
정직한 길입니다(Proverbios 2:13).
생명의 길입니다(Proverbios 2:19).
평강의 길입니다(Proverbios 3:17).
구원의 길입니다(John 14:6).
어느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막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경찰관이 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지는지 아세요? 소방관에게 집니다. 왜냐하면 물불을 안 가리니까 그렇습니다. 소방관도 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집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까요. 시각장애인은 남에게 돈을 빌려줘서 못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각장인도 다른 사람은 다 이겨도 노인은 못 이깁니다. 노인한테 집니다. 왜냐하면 노인은 다 살았으니까.
우리가 성령 받을수록 막 살면 안됩니다. 성령 받았다고 물불 안 가리면 안됩니다.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오직 경제의 논리만 있습니다. 이슬람 인들에게는 자신들의 논리만 있습니다. 오래 전에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선교사가 사러갔는데 유럽, 일본제품은 잘 나오는데 한국 것만 잘 안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고민하다 그래도 한국사람이 한국상품 안 사주면 누가 사주나 하고 한국제품을 선택했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켜 보니까 잘 나오드레요. 그래서 다시 그 상점에 가보니까 점원들이 한국 것만 잘 안나오게 틀어놓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 것만 잘 나오게 하고 다른 것은 잘 안 나오게 하고 돌아왔답니다.
좁은 길로 가세요.
본문 14절에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35:8에는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고 했습니다. 이 길이 다른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가라고 한 길로 가는 사람이 대로를 걷는 것입니다.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이 대로를 가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자신들은 선교하기 위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고난이 있습니다. 지난번 양화진에 갔을 때 제일 가슴에 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교사 자녀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고국에 있었으면 죽지 않아도 되는데 부모님이 선교하러간다고 해서 따라온 아이들입니다. 양화진에 순수한 선교사의 무덤은 111기인데 이중에 36기가 선교사 자녀들입니다.
이렇게 살다간 선교사님들과 자녀들은 ‘대로로 간 것입니까? 좁은 길로 간 것입니까?’ 개인적인 삶의 고난을 생각하면 좁은 길로 간 것이며, 남이 안가는 좁은 길로 간 것이기 때문에, 생명의 길로 간 것이기 때문에 이들은 대로로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좁은 길, 대로 모두 무슨 길입니까? ‘의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1676년 영국의 베드포드 감옥에 존 번연(John Bunyan)이라는 가난한 사색가가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 영어로 쓰여진 가장 유명한 책 중의 하나인 천로역정(The Story of Pilgrim’s Progress)을 섰습니다. 이 책은 한 사나이가 ‘위험한 여행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여행길을 마치고 천국에 도달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오직 한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유일한 길입니다.
사도바울이 AD 65년경에 로마로 들어갔다가 이년이 안되어서 순교를 당합니다. 로마 황제 네로가 로마를 불바다로 만든 후 기독교인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죽이지 못하고 칼로 목을 쳐서 죽였습니다. 지금도 그 현장이 로마에 남아 있습니다. 네로는 계속 방탕한 삶을 살다가 태후를 죽이고, 왕비를 죽이고, 스승인 세네카를 죽이고, 나중에는 방탕하여 14년만에 독약으로 자살하고 맙니다. 바울은 대로로 간 사람임과 동시에 좁은 길로 간 사람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계획을 짜세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의 여행계획을 짤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배운 것을 동원해서 짤 수 있습니다. 돈으로 우리가 가는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과 이웃이 참여하는 계획을 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선교대회 프로그램 짤 때 보니까 꼭 큰 교회목사님을 한 분모십니다. 이로 인한 폐단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렇게 짜지 않으면 경제적인 문제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게됩니다. 그래서 꼭 한 분 정도는 예산을 책임질만한 분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여행계획을 짜면 누가 책임져 주십니까?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내 맘대로 짜고 내 맘대로 가면 주님은 관심이 없으십니다.
여행가서 제일 재미없는 것이 외로움입니다. 즐거우려고 갔는데 외로운 겁니다. 혼자가면 그렇습니다. 인간은 외로움의 존재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처음 창조 될 때 아담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니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남녀가 함께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자매들은 남편보고 ‘오빠’라고 하더라구요.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니 오빠하고 어떻게 같이 삽니까?
시편 기자는 “나는 광야의 올빼미와 같고 메마른 땅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누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마치 지붕 위의 외로운 새 한 마리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시102:6-7 의역)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고 그들 보호해 주십니다.
Cidade 121:7 “여호와께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아멘.
영국의 특급 열차가 빅토리아 여왕을 태우고 안개가 짙은 밤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기관사는 시간 내에 무사히 목적지까지 모시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기차가 한참 달리고 있는데 강력한 헤드램프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곧 교량이 가까워 오는 지점이라 기관사는 급정거를 하고 차장과 열차 승무원들이 밖에 나가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가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으나 이상한 예감이 들어 몇 십 미터를 더 나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만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교량 한 가운데가 급류에 휩쓸려 나갔던 것입니다. 만약 그 이상한 현상이 아니었다면 여왕을 비롯한 수백 명이 기차와 함께 강물에 빠져 몰살당하는 사고가 났을 것입니다.
그 후 교량이 복구되고 그 열차가 무사히 런던에 도착했으나 그 이상한 현상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기관사가 기관차 헤드라이트 아래쪽을 살펴보다가 큰 나방 하나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의 날개가 라이트 유리에 붙어서 흐느적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관수가 차에 올라가 헤드라이트를 켜보니 바로 그 날개가 깃발을 흔드는 사람으로 보였음을 알아냈습니다. 여왕에게 이 사실이 보고되자 여왕은,”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방법이었소.”라는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외로움을 극복할 뿐 아니라 그 분의 특별한 보호를 받게 됩니다.
창세기 5장에는 아담부터 노아 홍수이전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제일 오래 산 사람 므두셀라도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모두 다 ‘죽었더라’고 기록합니다. 이렇게 나오는 말이 8번나옵니다. 그러나 창 5: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신약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11:5)고 다시 옮겼습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여행하시고 하시고 주님 품으로 돌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집에 종이 한 사람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종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가 너무나 어리석어 보이는 것입니다. 어느 날 주인은 장난 삼아 그에게 지팡이 하나를 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