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써 행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Prensa 20:9, 신 5:13)
솔맨이라고 하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안된 젊은 나이에 그는 중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말해줍니다. “당신은 임파선 결핵을 앓고 있소. 앞으로 3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부인은 유명한 가수로, 그녀는 지금 임신중입니다. 아내에게도 미안하거니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할 때에도 죄스럽습니다. 몹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아내가 그를 위로합니다. “3개월밖에 못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3개월을 허락해주셨다고 생각하며 감사하십시다. 아무도 원망하지 맙시다. 3개월이 얼맙니까? 천금같은 그 기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십시다. 그러면서 오로지 3개월이나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열심히 일합니다. 그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에 유명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보통 사람은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때에 대개 자비하신 분으로, 고난 당하시는 얼굴로 그리는데, 이분은 지도력이 있고 강인한 인간성을 지닌 인물로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이 유명해서 수백만 장이나 인쇄되었고 오늘도 많은 가정에 걸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3개월이 어딥니까? 하루가 어딥니까? 한 달란트가 어디냐 그 말씀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힘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나오고 난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만 지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기에 앞서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만 고집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6일 이라는 날을 주셨습니다. 허락하셨습니다. 힘써서 일한 사람이 안식일을 잘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 노는 사람은 어쩌면 안식일이 별도로 필요 없을지 모릅니다. 엿새를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안식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바로 십계명중에 다섯 개의 인간생활과 관계된 계명이 나옵니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엿새 동안 바로 이 계명들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Prensa 20:12(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6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 14(7계명) 간음하지 말지니라 15(8계명)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16(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17(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열심입니다. 힘써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세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힘써서 일하느냐 입니다. 아무리 좋은 직업을 가졌어도 힘써서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가 제일 자신 있게 세계 제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조선입니다. 배 만드는 것 하나만큼은 미국도 일본도 우리나라를 따라오지 못합니다. 세계 10대 조선회사 중에서 무료 7개회사가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배 만드는 일에 제일 많은 공정이 들어가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용접입니다. 중요한 용접은 모두 사람이 직접 해야 합니다. 그 큰배를 어떻게 만들었냐하면 한마디로 철판들을 붙여서 만든 것입니다. 이 무더운 여름에도 불꽃을 튀기면서 저 배 밑바닥에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철모 뒤집어 쓰고 용접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배를 제일 많이 그리고 잘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열심히 일하시는 그분들 위해서 박수한번 보내드립시다.
저는 원적이 강원도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마석입니다. 아버님의 고향이 강원도 양구입니다. 큰집이 거기 있어서 명절 때면 방문하곤 했습니다. 저의 큰집이 있는 곳은 양구에서 도사리라는 곳으로 더 가야합니다. 약 8키로 됩니다. 그곳을 가다보면 중간에 한전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강원도 아시잖아요? 정말 집이 없습니다. 그 앞에 몇 가구가 살뿐입니다. 그리고 집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 교회를 해도 모두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순복음 교회가 있는데 1, 2년마다 한번씩 가는데 바로 길옆에 있는 교회가 멋있게 건축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당에 교회 대형버스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멀리 살다보니 그곳이야말로 버스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그곳 교회 목사님도 모르고 그 교회 사정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강원도에서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이렇게 성장하는 교회를 본 적이 없습니다. 마을이라고는 고작 몇 집만 있고 그것도 사방에 흩어진 몇 가구들뿐인데 열심히 하니까 강원도 시골 교회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충대충 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고 보수로 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사 59:17, Catro 9:7, 겔 39:25) 하나님 자신이 열심이십니다. 하나님의 열심히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열심히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모두 열심이었습니다. 한 문둥병자도 수 많은 사람들 사이들 뚫고 용기를 내어 나왔습니다(마8:1-4, 막1:40-45, 눅5:12-16). 중풍병자는 지붕을 뚫고 내려왔습니다(마9:2-8, 막2:2-12, 눅5:18-26).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는 병자들은 물이 동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John 5:2). 로마의 백부장은 자기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마8:5-13, 눅7:2-10). 혈루증으로 12년 고생한 여인은 사람들 틈을 뚫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마9:20-22). 소경 둘은 예수님을 따라오며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마9:27-34) 간질병 아이를 고치기 위해서 부모는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마17:14-21, 막9:17-29, 눅9:37-43)
이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나같이 열심이었습니다.
몇 일 전에 텔레비전을 보는데 연애 인들이 나와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가 있었는데 예전에 운동하던 아주 좋은 체격의 남자입니다. 집안 일을 돕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고향이 경북이었나 봅니다. 세탁기에 빨래를 하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기는 고향이 그쪽이라 그분은 정색을 하면서 아니 남자들이 그런 것도 하냐고 다른 사람에게 핀잔을 주는 겁니다. 저는 속에서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떠나서 아내를 위하는 마음이 없는 것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을 뒤돌아보니까 그 사람이나 나나 다를 것 없더라구요. 나도 빨래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Sen embargo,! 해야 합니다. 얼마나 아내들이 고생합니까? 옛날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애 볼래? 바깥에 나가 김멜레?” 그러면 밭에 나가 김멘다는 것 아닙니까? 그만큼 애 보는 것이 힘들다는 말입니다.
아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에 저에게 어떤 분이 밥을 사겠다고 해서 굳이 괜 찬다고 하는데 조금 비싼 음식점으로 한낮에 데리고 가는 겁니다. 그곳에 가 보니까 남자들은 없고 여자들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남편은 지금 아까 배 만드는 사람처럼 고생하고 있을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건물들은 창문을 안 만든답니다. 바깥 쳐보다가 집 생각나고 건물들이 보이면서 사무실을 생각하면 남편 생각나서 구매욕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회사에서 동료지간에 화날 때, 아내가 화날 때, 남편이 화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나는 열심히 하는데 같이 도와야할 사람이 도와주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선한 자를 도우시려고 열심이신 데 정작 도움을 받아야할 우리가 열심히 없을 때 우리 주님은 화가 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 3:15)
모세는 출애굽을 하고 나서 광야에서 고생고생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불순종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때의 사건에 대하여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 속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 4:9) Ten alta.
여호수아는 모세 다음으로 사명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지도자 입니다. 이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이나 그 땅에서 사는 일도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Casar 23:6) “크게 힘써”로 번역된 단어는 메오드(daom])입니다. 이 뜻은 “열렬히, 전적으로, 대단히”입니다.
한 양봉업자가 꿀벌을 열대지방에 옮겨놓았습니다. 사계절 꽃이 피는 곳에 꿀벌을 풀어놓으면 수확량이 늘어나 큰돈을 벌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첫해, 양봉업자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부터 꿀벌들이 꿀을 모으지 않아 벌통이 텅 비어버렸다. 꿀벌들은 그곳에는 겨울이 없다는 것을 알고 꿀을 저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양봉업자의 아이디어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오늘날 열대지방의 꿀벌 같은 신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려울 때는 믿음생활을 하다가 살 만해지면 교회를 떠납니다. 삶이 편안한 사람들은 게으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지요. 지나친 편리함과 안락함이 인간의 삶을 붕괴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땀 흘리며 땅에서 일하여 소출을 거두라고 명령하십니다. 내일을 바라보며 힘써 일하는 자만이 풍요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 6:3)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게 한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엡 4:2-3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어느 날, 무디선생이 삼천 명 앞에서 설교를 하는데 그날따라 더욱 은혜로웠다고 합니다. 마이크가 없던 때에 삼천 명이니까 그것만도 굉장한 숫자이지요. 무디 선생은 열변을 토하듯 힘써 설교를 하였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어느 저명한 대학교수 한 분이 무디 선생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을 건네었습니다. “선생님,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Pero…… 몰라서 그러셨겠지만 영문 법적으로 틀린 말을 열여섯 번씩이나 하셨습니다.” 무디 선생은 껄껄 웃으면서 “잘못 세었을 것입니다. 그보다 더 많이 했을 텐 데요. 저는 이렇게 무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느라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많은 지식을 가지고 한 일이 무엇입니까?” 라고 대답하였답니다.
우리도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열심히 주를 쫓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