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차매

A Vida de Xesús(1. 때가 차매) / Texto : Lucas 1:5-22, 갈라디아서 4:4-7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Lucas 1:5-22)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4:4-7)

어느 나라를 가든지 자신의 나라의 중심지가 있습니다. 지리적인 중심지가 있는가 하면 경제, 정치의 중심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능을 가지고 있는 도시를 수도라고 말합니다. 우리 나라는 요즘 신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으로 인해서 어수선합니다. 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입니다. 그러나 지리적인 중심은 러시아 가운에 위치한 ‘노보시베리스크’입니다. 이 도시는 스탈린이 러시의 중심이라고 해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과학도시로 계획해서 만든 도시입니다. 제가 이 도시에 가 본적이 있는데 지금도 하루에 두 차례씩 시 전체에 먼지가 나지 않도록 물 청소를 합니다.
그러나 한 나라가 아니라 지구의 중심지가 있다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은 모두 자기 중심적이어서 자신이 있는 곳이 중심이라고 말합니다. 선교지에 가면 모든 선교사님들이 하는 말은 자기가 있는 곳이 센터라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변방인데 선교사님은 여러 이유를 들며 그곳이 중심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런 자세는 매우 좋은 것입니다.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곳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어떤 일을 하든지 힘의 밑거름이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있었던 자리에 성분묘교회(聖墳墓敎會)를 만들어 놓고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지리적인 관점에서도 과장만은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3대 대륙을 연결하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세 대륙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대륙을 한 바퀴 돈다면 모두가 만나게 되는 곳이 팔레스타인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이 지리적으로도 최 적지였다면 예수님이 탄생하실 시기 역시 최 적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증거한 것처럼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메시야의 예언에 대해서 약 300여번 소개되어 있는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어느 때 보내셔야 할까’에 대해서 생각해 오시다 제일 적절한 시기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운동경기인 축구나 야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적절한 시기에 선수를 교체해야 합니다. 이 때 시기가 중요합니다. 운동경기 한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도 때를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어디를 갈 때도 준비하고 상황이 되었을 때 떠납니다.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은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때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종교적인 제반 조건이 하나님 품에 계시던 독생자 그리스도가 탄생할 모든 조건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탄생하신 것입니다.
이 시기를 가리켜 우리는 인류 역사상 제일 암울했던 시기에, 제일 영광스런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말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예수님의 탄생을 “인간들의 사건에는 때(밀물)가 있는 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밀물을 받아들인 루터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라는 찬송으로 전 유럽을 진동시켰고, 존 낙스는 “신앙의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외침으로 스콧틀랜드를 뒤흔들어 놓았고, 웨슬레는 영국을 성화로 불 붙였습니다. 우리 나라는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이 일제의 신사앞에 무릎꿇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지막 설교를 하고 스스로 감옥으로 찾아가 순교했습니다.

1. 정치적 준비
본문 5절에서 “유대 왕 헤롯 때에”라고 말합니다. 헤롯왕(Herod the Great, King) BC. 37년에 즉위하고 이어서 아켈라오(Archelaus)가 B.C. 4년에 즉위할 때까지 팔레스타인 지방을 다스린 왕입니다. 이렇게 로마의 한 지방을 다스리는 왕은 로마 황제(아구스도:Augustus)가 임명한 것입니다.
이 시대의 로마는 대서양에서 카스피해까지, 영국에서 나일강까지, 하드리아 국경에서 유브라데에 이르는 모든 도로 및 지역에 로마 제국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더 이상 작은 국가들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로마가 통일왕국을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통일 왕국은 메시야가 오시는 것을 준비한 것이 되었습니다. 통일 왕국은 세 가지 관점에서 좋은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첫째, 로마 주변 국가의 안정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한 세기나 반세기 전, 후쯤에 오셨다고 가정한다면, 주변 국가들은 각각 쇄국 정책으로 문호를 폐쇄하고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둘째, 교통의 편의입니다.
복음이 더 빨리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로마제국은 자신들이 점령한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지 로마로부터 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았습니다. 로마로부터 닿을 수 있는 곳이면 모두 도로를 건설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1,2,3차 여행 및 로마 여행을 한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시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 도로는 복음을 전하는 경로로 이용되었습니다.

셋째, 언어의 통일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좋은 외적인 환경이 도로라면 내적인 환경은 언어였습니다. 구 소련은 방대한 땅을 정복하고 제일 먼저 한 것이 언어통일 문제였습니다. 로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진정한 통일은 언어가 통일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랜 지배가 계속되지 않으면 언어를 바꿀 수 없습니다. 당시의 헬라어는 표준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이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헬라어를 사용하면 갈라디아 거리에서나, 아덴의 모임에서나, 로마나 스페인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로마의 시대와 현재가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교통으로 말하면 로마 시대보다 훨씬 더 편리할 것입니다. 언어 문제도 세계가 하나 되고 있습니다(나만 빼고). 또한 로마 시대에는 없었던 인터넷도 있습니다. 진실로 복음을 전할 마지막 시대가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3:8)

2. 경제적 준비
로마의 찬란한 문화 뒤에는 사치와 낭비가 만연했습니다. 로마를 걸어가는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종이나 노예들이었습니다. 때로는 이 노예들이 사회에 적잖은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로마의 시인들은 지나가 버린 과거를 황금시대로 노래했습니다.
로마가 다스리던 전 지역이 것 모습과는 달리 황폐해 있었고 가이사가 다스리는 철의 통치만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는 팔레스타인 지역 역시 다른 지역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전쟁의 여파와 과중한 세금은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국민의 생활은 걱정과 근심으로 불안했고 내일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은 체 세월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세계는 일대 고민 투성이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토록 암담한 시대에 베들레헴에서 한 소망의 소리가 들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야 그분이 이 땅에 오시는 일이었습니다. 동방의 한 지역에서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별을 연구하던 사람들이 따라왔습니다.
오늘날에도 경제 부흥을 분석해 볼 때 잘 살게되는 나라보다는 어렵게 사는 나라 사람들이 복음을 더 잘 받아들입니다. 일본은 우상이 많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합니다. 인간의 모든 재물이 다 없어지고, 밑천이 다 달아나 버린 것은 세계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기회를 준 것입니다.

3. 종교적, 도덕적인 준비
헬라와 로마는 자연 숭배와 제우스(Zeus)와 디오니구스(Diny us), 아프로다일(Aprodite)을 섬김으로 행복을 찾으려고 했는데 예수의 출현과 함께 그 모든 이교 적인 신앙이 무너졌습니다. 지금도 서양에서는 동양종교를 신비스럽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런던에 갔을 때 길 거리에서 동양종교를 소개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호기심에 찬 모습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은 더 이상 제우신이나 아프로다일 신이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제 싫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들은 동양의 신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헬라의 오림프스산에서는 동양의 우글거리는 잡신을 다 섬기고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에는 만신전(萬神殿)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로마 황제 자신이 신의 존재로 부각하여 모든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추종하도록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줄기 소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을 통해서 내려오는 메시야 사상입니다. 이제 메시야가 오실 때가 되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서 이 세계가 다시 질서를 잡을 것으로 믿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나타났을 때 이 사람이 메시야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로 사람들은 갈급해 있었고 유대인을 중심으로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4. 하나님의 준비
이제 메시야를 보내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때를 기다려 오셨던 것입니다. 그 첫 반응은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준비해 두신 대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 사가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론의 지파 자손이고 현재 아비아조에 소속된 제사장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아내는 엘리사벳입니다. 부부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며 계명과 규율도 잘 지켜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이 있다면 자녀가 없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였고, 두 사람은 이제 나이가 많아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제비뽑아 차례가 되어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분향하는 중에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분향하는 중에 천사가 내려와 분향하는 오른쪽 제단에 서서 놀라 떨고 있는 사가랴에게 “사가랴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 간구를 주께서 들어 주셨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이 일을 믿지 못했습니다. 천사는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 천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이 이루어질 때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가 너무 오랫동안 성소에 머물고 있어서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사가랴가 성소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을 못하고 손짓 발짓으로 있었던 일을 어렵게 설명했습니다. 사가랴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대로 임신을 했고, 다시 가브리엘 천사는 여섯 달 만 에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 동네로 가서 다윗 가문에 속한 요셉이라는 사람과 정혼하기로 약속한 처녀 마리아에게 찾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사가랴 부부를 통해서 요셉과 마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다음에 세례요한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 말고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역사 하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사가랴 부부를 통해서 아이를 전혀 낳을 수 없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낳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마리아를 통해서, 여인의 몸에서 탄생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존 하워드 그리핀(John howard griffin)이라는 백인 미국 사람이 1959년에 흑인들이 받는 멸시와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가 하는 것을 몸소 체험해 보기 위해 자신을 흑인처럼 만들어 흑인 행세를 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피부가 검어지는 약을 먹고 피부가 잘 타는 약을 바르고 햇빛에 피부를 태우고 검게 보이는 약품을 바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났더니 승차 거부를 당하고 식당에서는 음식을 팔지 않고 호텔에서도 쫓겨나는 등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온갖 핍박과 천대를 받고 나서 “나 같은 흑인” 이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사랑하셔서 구원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은 통하여 말씀도 하시고 율법으로 다스려 보려고도 했으나, 인간이 돌이키지 아니하므로 창조주 되신 하나님이 친히 피조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2차 대전 때의 일입니다. 필리핀이 잠시 일본에 점령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그 유명한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을 떠나면서 “나는 꼭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약속했습니다. 2년 후,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의 레이투만 해안에 상륙하면서,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속대로 나는 다시 왔다.” 맥아더 장군이 자기 개인의 명예를 걸고, 그가 다시 온다는 약속을 지켰다면, 우리들의 구세주이며 역사의 주인이신 그분이 약속을 안 지키시겠습니까? 틀림없이, 우리 주님은 약속을 지키시고 반드시 오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처음에 오실 때는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지만 재림하실 때는 심판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처음오실 때는 시대적으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사람들이 영접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시기를 택하신 것입니다. 또한 복음이 전 세계에 퍼지기 좋을 지리적인 위치와 시기를 택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준비하는 사람에게 오십니다. 갈망하는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이 세상을 의지하고 믿는 사람들에게 오실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주님만을 앙망하는 주앙교회 성도여러분에게 주님이 찾아오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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