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미와 루하마의 하나님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호 2:1)
요즘 KBS2 드라마 중에 제빵왕 김탁구를 아시지요? 그런데 진짜 제빵 왕이 성경에 나옵니다. BC 782-753년경에 북이스라엘을 통치한 여로보암 2세 때 활동한 호세아입니다. 호세아의 출생지는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왕국에서 태어난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의 직업은 제빵업자이거나(7:4), 평범한 농사꾼이었습니다. 호세아의 이름은 신약 식으로 부르면 ‘예수’입니다. 이름의 뜻도 같습니다. ‘구원’이라는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윗 때 통일 왕국을 이루어 솔로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우상숭배와 타락으로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그때가 B.C. 931년입니다. 북왕국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남왕국을 유다라고 불렀습니다. 북왕국의 초대왕이 여로보암(왕상 13:1-14:31)입니다. 남왕국 유다의 초대왕은 르호보암(대하 10:1-12:16)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여로보암1세이고 오늘 호세아가 선지자 활동을 하던 시기의 여로보암은 2세로 13대 왕으로 왕위에 41년(왕하 14:23)을 있었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후에 여러보암2세까지는 149년(931-782)이 흘렀습니다. 여러보암2세가 등극하고 정확히 61년 있다가 721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망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왕이 19명 있었는데 한 명도 선한 왕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남왕국 유다는 20명의 왕이 있었는데 선하다고 할 수 있는 왕이 7명 정도입니다. 북왕국 210년, 남왕국 345년 동안 유지하다가 망합니다. 하나님은 이 기간에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사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버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다시 한번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로보암2세는 북왕국 19명의 왕 중에 41년이라는 제일 오래 동안 통치한 왕입니다. 이 기간이 북이스라엘이 제일 왕성하고 평화로웠던 시기였습니다. 수리아가 앗수르의 침략으로 쇠약하여지는 틈을 타서 하맛에서부터 아라바까지 땅을 차지했습니다(왕하 14:25). 그런데도 성경은 왕하 14:23-29까지 간단하기 소개하고 마칩니다. 사실 이 기간이 제일 번성했던 기간이니 만큼 제일 많은 기록을 남겨야하지만 성경의 저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6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27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왕하 14:26-27) 이 기간동안의 번영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으로 끝입니다. 너무 허망한 것 같은 생각이 안 듭니까? 그래도 북이스라엘에서 제일 잘 나가던 시기인데 어떻게 이렇게 짧게 기록되고 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짧게 기록된 반면에 하나님은 이 시기에 가장 강력한 선지자 두 사람을 보내셔서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당시에 활동을 했던 아모스와 호세아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이 두 사람만큼 인상에 남는 선지자는 흔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제일 잘 나가던 그 시기에 하나님은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번영은 죄와 타락만 키울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는 국가, 개인 잘되는 것 부러워 할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만 키우고, 악만 키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잘 되어도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아이에게 부모님 없으면 먹을 것, 입을 것 다 주어도 소용없습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데도 안 간다”, “예수님 없이는 아무 일도 안 한다”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없이 번성하면서 나타난 현상을 아모스가 잘 지적했습니다.
“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암 2:6-7)라고 했습니다.
“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암 6:4-6)라고 합니다.
저는 침대 사용 안 합니다. 침대가 문제이겠습니까? 자기가 마치 다윗이 된 것처럼 행세한다는 겁니다. 요즘 우리가 왕처럼 살고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결국 망한다고 예언했습니다. 이런 쓴 소리하고 북왕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모스는 북왕국에서 남왕국으로 탈출했습니다. 탈북자인 샘입니다. 그리고 계속 남왕국에서 북왕국을 향해서 너희들 그렇게 살다가는 망한다. 왕과 신하들이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암 1:15).
“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암 2:9)
“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3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져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4:2-3)고 쓴 소리를 합니다.
이런 사치와 방탕에 대해서 호세아도 입장을 같이합니다.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호 13:3)고 예언했습니다. 망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아모스와 달리 북왕국에 남아서 선지자 활동을 했습니다. 아모스와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누가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이 사용하신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은 두 방법을 모두 사용하신 것입니다. 탈북자가 되어서 눈물로 호소한 아모스도 가슴아픈 선지자이지만 호세아는 그 북왕국에 남아서 그 사람들처럼 되어야 하는 연극이 아닌, 인생을 건 포퍼먼스를 해야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아모스가 죄에 대하여 책망만 했다면 호세아는 그래도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구원해 주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호세아게 그들처럼 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호 1:2) 우리는 여기서 잘 이해해야 합니다.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과 결혼했다고 해서 타락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창가의 여자 고멜과 결혼했습니다. 아이도 셋이나 낳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자식들의 이름을 하나님이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어주시는 이름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합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입니다. 이즈르엘은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예후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아합 집안의 사람 42명을 집단 살인한 장소입니다(왕하 9:27, 10:13). 둘째는 딸인데 로루하마 ‘하나님께 은총을 입지 못하다’는 뜻이며 아들을 또 나았는데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다’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호세아 입장에서 본다면 참으로 가혹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우리가 다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교훈하기 위해서 호세아가 희생당하고 자기 자식들까지 그런 이름을 지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호세아는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합니다. 그것이 선지자의 삶입니다.
호세아는 창녀하고 삽니다. 그녀는 호세아에게 만족을 못합니다. 밤마다 나갑니다. 다른 남자의 품속에서 히히락락하며 밤을 지냅니다. 결혼만 했지 집에는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그 생각만 하면 호세아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하나님이 그런 여인하고 결혼하라고 해서 한 것입니다. 호세아보다 마음고생 더한 선지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차라리 죽고싶습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제 친구가 이혼을 한 친구가 있는데 여자가 바람나서 했습니다. 물론 이 친구는 제가 보기에 그럴만한 이유를 상당히 제공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의 외도가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그 친구하고 지방에서 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오면서 밤새도록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속이 뒤집어져서 참을 수가 없더랍니다. 그리고 그 장소를 알았을 때는 자기가 차에다 기름통을 싫고 그 집까지 찾아갔답니다. 그 집으로 그대로 돌진하여 다 불지르고 끝내고 싶었답니다.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데 그렇게 속이 아프더랍니다.
지금 호세아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가르치는 것입니까?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이 그렇게 아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그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호 2:13)
하나님과 이스라엘백성인 성도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결혼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무시하고 음란하게 우상을 따르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을 호세아를 통해서 느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정으로 다가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마치 처음 연애하는 남녀의 사이 같았습니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호 9:10)
바람난 창녀 고멜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멜은 세 자식을 낳고 바람나서 집을 나갔습니다. 자식 버리고 나가는 여자 정말 용서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다. 이런 여인을 사랑하고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호 3:1-2)라고 합니다. 고멜은 노예시장에 팔렸습니다. 값을 지불해야 데려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냥 받아주기도 힘든데 값까지 지불을 해야하니 얼마나 힘이 듭니까?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사 42:3) 라고 하나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왜 바람난 여자 같은 우리를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시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값을 치르시고 우릴 구하셨습니다.
이제 오늘본문을 말씀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호 2:1)
‘암미’는 ‘나의 백성’이라는 뜻이고 ‘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가 분단되어있습니다. 구원의 때가되면 회복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백성(암미) 긍휼히 여기신다(루하다)’고 하셨습니다. 창녀 같은 우리를, 자식도 버리고 집나간 우리를 하나님은 비싼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호세아는 호소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호 4:1), “네 백성이 제사장과 다투는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호 4:4),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호 4:16)라고 합니다. 그러나 회개해야합니다. 암소 같은 고집으로 구원받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삽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호 13:4)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호 14:1)
하나님의 이 호소 거절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