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길에서 떠나라(역대하)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오전예배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15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16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17 네가 만일 내 앞에서 행하기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한 것과 같이 하여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행하여 내 율례와 법규를 지키면 18 내가 네 나라 왕위를 견고하게 하되 전에 내가 네 아버지 다윗과 언약하기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하리라”(대하 7:14-18)
본서의 내용은 열왕기상,하 두 권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를 대체로 포함하고 있으나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는 거의 빠져있고, 남 왕국 유다 특히 다윗 왕국과 솔로몬 왕국 에 관심의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 즉 저자의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며 후세를 위하여 역사에 대한 종교적 교훈을 주려고 본 서를 쓴 것입니다. 저자가 가르치려고 하는 사상은 다음과 같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제사장으로 삼기 위하여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 사명을 자각하며 율법을 지키며 종교 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실하게 산 때에는 약속하신 대로 큰 축복을 받았으나 반대로 우상을 섬기며 종교적으로 타락하고 도덕적으로 부패할 때에는 불행과 비참이 찾아 왔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이스라엘의 과거의 역사를 가지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서를 보면 제사장 나라로서 왕을 비롯하여 모든 국민이 자각하고 노력한 때인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역사는 상세히 힘을 주어 기록하고있는 반면에 책임을 소홀히 하고 타락한 북 왕국에 대해서는 그 죄로 받은 멸망의 사실 외에는 별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다시 제사장 나라의 책임을 재인식하고 분별할 것을 촉구하고자 한 저자의 의도를 짐작케 합니다.
역대기는 제사장적 관점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서술한 것이므로 주로 제사적 법전(주: 본문에서 말하는 제사 법전이라 어떤 특별한 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 오경 중에서 특별히 제사에 관한 기록들만을 지칭하는 말이다.)을 그 중심적 주제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후대의 묵시 문학들은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았지만 제사적 법전은 보다 실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이미 먼 과거에 이스라엘을 세우셨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역대기의 저자는 유대 민족을 국가로 조직할 구체적 모형이 이미 모세와 여호수아시기에 존재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담으로부터 여호수아에 이르는 기간과 여호수아에서 다윗의 시기까지는 간단히 족보로만 언급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당시에 유다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으며, 사사들의 통치 기간은 끊임없는 배교와 전쟁의 시기로서 가나안에 세워질 하나님의 왕국의 모습이 아직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역대기 기자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립하기 전까지는 모세의 성막이 이스라엘인들의 유일한 성소였다고 생각하고 다윗 이전의 기간은 단순히 왕국 역사의 서론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다윗에서부터 고레스에 이르는 시기만을 자세히 서술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역대기 기자의 총괄적 구상을 제사적 법전을 따랐는데 전통적 제사 법전이 네 시대 구분(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을 중심으로 기록한 후에 가나안 정착이 기록된 것처럼 여기서는 아담,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으로 시작되는 시기를 서술한 다음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가나안에 재 정착하고 법을 갱신한 사건이 덧붙여집니다.
이 두 경우는 다같이 하나님의 집 건축(성막과 성전)과 성직자단 조직이 그 중심 사건을 이루는데 두 역사에서 다같이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창조주인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조금도 문젯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의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 하나님께만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있고 ‘천지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일 뿐 아니라 이러한 하나님께서 비록 모든 나라들과 만물을 다스리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대인들만의 왕이요 신이심을 증거 하였습니다(대상 17:14, 28:4, 29:23).
이러한 논점에서 역대기 기자는 역대기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왕국을 한편으로는 유대 왕국(대상 28:4-7, 대하 13:5)으로, 또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한 나라가 아닌 제사장적인 관점에서의 거룩한 회중, 즉 교회로 주장한 것입니다. 이 신성 왕국의 백성에게 부여된 의무는 여호와만을 섬기며 그가 모세에게 계시해 준법과 특별히 성전 규례를 준수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역대하는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9장까지는 솔로몬 왕의 통치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10-36장까지는 유다 왕들의 통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솔로몬의 통치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역사상 제일 부강하고 발전되었던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어서 처음 한 일이 “다윗이 전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장막을 쳐 두었으므로 그 궤는 다윗이 이미 기럇여아림에서부터 그것을 위하여 준비한 곳으로 메어 올렸고”(대하 1:4), 다윗이 임시로 장막을 만들어 장막을 쳐 두어서 보관하고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준비한 곳으로 메어 올린 일입니다. 하나님의 궤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일은 곧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한 일이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대하 1:6)입니다. 일천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우리는 가끔 반복적으로 계속하는 일이 잘하는 일인지를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번제는 예배는 자주하고 매일하고 늘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일 천 번제를 드리라고 명령을 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솔로몬이 마음으로 한 일입니다.
이 일로 하나님이 “무엇을 주랴”고 하시고 솔로몬은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대하 1:10)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재판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대하 1:11)
여러분!
여기서 솔로몬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보세요? 사람들이 무엇을 중점적으로 구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부나 재물입니다.
두 번째가 자신의 영광입니다,
세 번째가 원수가 멸망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가 장수입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하나님께 구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런 것을 먼저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주의 백성을 바르게 제판하기 위하여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성전을 건축합니다.
성전건축 할 때 솔로몬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은
“4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차려 놓으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오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5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성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심이라”(대하 2:1-2)하면서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대하 1:6)라고 합니다. 이 때가 솔로몬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일 좋았던 시절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화려하게 지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이런 겸손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좋았던 것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굳이 솔로몬의 타락한 말년을 자세히 기록하지는 않지만 결론적으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게 한 일이 없었습니다. 한번도 안 된 일이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칼을 피해 10년이나 도망 다닌 것과 법궤를 옮기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지만 솔로몬은 아무 실패의 경험이 없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결과적으로 솔로몬이 타락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다고 하는 것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왕상 11:6절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바로 솔로몬 왕이 말년에 걸어간 길입니다. 그 아버지의 말년의 모습을 보고 르호보암 왕이 걸어간 길입니다. 그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아비야 왕이 걸어간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의 이 시점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개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정신차리라고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낭비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태도를 잘 구비할 수 있는 제일 좋은 기회를 선용함으로서 보다 더 하나님 앞에 떳떳하고 보다 더 온전한 모습을 구비한 후에 주 앞에 설 수 있는 성도 여러분의 신앙앞날이 다 되어지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