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라

Rev yiyoungje MP3 Messa Hlustun

Jesús sagði:(47. 예수님을 따라) / Texti : Matthew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T 4:19, Bara 1:17)

Þinn!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면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도 안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갈 수도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합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 CIS선교사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러시아 노보시비리스크로 떠났습니다. 비행기가 직항이 없기 때문에 다른 도시를 경유해서 가야합니다.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하루를 먼저 블라디보스톡으로가서 기다렸다가 가야하는데 비행기 표를 구할 때 비행기 회사에서 다 알아서 먹여주고 호텔 잡아 준다는 겁니다. 미심쩍어서 두 번이나 확인했는데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만 믿고 가는데 느낌이 이상한 것을 인천 공항에서 집 붙이고 그 쪽 공항사정을 알 수 없어 질문을 했습니다. 짐을 찾을 때, 그리고 어떻게 갈아타는지 등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비행기 타고 승무원에게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걱정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있는데 어떤 분이 다가오시더니 “컴퓨터 선교회 이영제 목사님이시죠”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저는 노보시비리스크 김선종 선교사입니다.” 하시는 겁니다. 순간 모든 걱정이 다 달아나 버렸습니다. 거기서 선교활동 하시다 들어오셨다 다시 가시는 이분만 따라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서 오신 예수님만 따라가면 우리는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1)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T 16:24, Bara 8:34, Luke 9:23) 오른손이 하는 것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어떻게 왼손이 모르게 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자기 자랑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 1:30절에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Rom. 4:2절에서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같은 본문이 누가복음에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Luke 9:23) “날마다”가 더 있습니다. 십자가는 지고 싶을 때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과 관계없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Classical 15:31)고 고백했습니다.

3) 다른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John 8:15) 영적인 분별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육체를 따라” 즉 외모로 판단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넘어트리려고 자기 제자들을 보냈습니다.“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T 22:16)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것을 바리새인도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꾸만 외모로서 사람을 판단하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려고 들면 끊임없이 싸움이 일어납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하도 싸우니까 이런 말이 다 있습니다. 술집에서 사람들이 술 먹다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싸우고 있는데 주인이 하는 말이 “여기가 교회인줄 알아!”그랬다는 겁니다. 저는 치아가 좋지 않아 지난번 기둥을 세우고 해 넣을 때 이런 생각이 나는 겁니다.

4)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John 10:4)Var kallaður. Þinn! 만일 예수님의 음성으로 알고 갔는데 만일 그것이 사람의 음성이었다면 모든 것이 잘못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9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
이번에 갔던 선교대회 장소는 노보시비리스크인데 그 시에서 한 1시간 정도 들어가면 ‘시비락’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서 선교대회를 했습니다. 말이 러시아를 갔다 왔지 그곳에 갇혀서 진짜 러시아를 다녀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아주 외딴 곳으로 주변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숲 속에는 벼룩 같은 벌래(시크락?)가 있는데 사람 몸에 붙으면 거머리처럼 살을 파고 들어간답니다. 실제로 이 벌레에 물린 선교사님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멋있다는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도 한번 못 걸어 다녔습니다.

제가 선교대회에 참석하면 네 가지 정도의 유익이 있습니다.
① 선교사님들을 만나 교재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고생하면서 갔다해도 저는 별 것 아니었습니다. 모스크바, 빼째르부르그에서 만났던 분 그리고 이 노보시비리스크에 제가 두 번째 가는데 10년만에 만난 분, 그리고 기태 형제 먼저 신앙 생활하던 교회에서 보낸 선교사님이 이번 대회 총무를 맡아 일하고 있었고 이분도 우리 사무실을 다녀간 분입니다. 그리고 저희 집사람이 전돌이 성경여행을 주었는데 지금 얼마나 아이들이 열심히 보는지 고맙다고 전달해 달라는 분, 몽골에서, 우즈벡에서, 하바롭스크에서 오신 분들하고 교재를 나누고 이분들을 저를 그곳에 꼭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교재가 있었습니다.
② 영적 충전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인도만 하지 예배 드리는 자로 있기가 쉽지 않은데 예배를 드리며 함께 충전하며 지낸다는 것입니다.
③ 세계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④ 또 하나는 유명 강사님들을 한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입니다. 선교사 대회가 보통 대회입니까? 아무나 안 부릅니다. 고신의대 양리학 교수님이셨다가 한 달 전에 은퇴하신 강 교수님이 계십니다. 장로님이신 데 같은 방을 사용하면서 정말 많은 교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과 대화 나눌 때 저를 “이 어르신이”그렇게 부르시는 겁니다. 장로님의 고백가운데 “지금도 이런 목사님이 계시네” 저에게 그러시는 겁니다. 제가 다른 이야기 안 했습니다. 예수님의 방법대로 예수님만 보고 따라가려고 설교도, 성경도 그렇게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Þinn!
성령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이유는 길 잃어버리지 않고 예수님께 오라고 인도하시는 영을 보내주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T 4:19)고 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사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방법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CIS선교사 대회에 오신 분 중에 미국 국제제자훈련원 사역을 하는 김홍장 장로님이 계십니다. 여기서 하는 사역이 ‘릭 워렌’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을 가지고 성경공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 책이 인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처럼 목적이 분명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책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것을 가지고 교육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유행 따라가 가는 교회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혹 남들은 무슨훈련을 하는데 우리 주앙교회는 아무 것도 안 한다고 우리의 신앙이, 우리 교회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Þinn! 예수님을 따라가세요.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우리의 목표입니다.
베드로는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베드로와 같이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Þinn!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선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질그릇일지라도 그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사람을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부족한 것이 많이 있지만 우리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러시아 동남쪽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과 가까운 곳에 ‘날칙’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 도시에 처음으로 선교사로 간 사람은 고려인이었습니다. 이 고려인 전도사는 한국선교사님이 훈련시켜서 보냈는데 파송한 선교사님에게 6개월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고려인 선교사님에게 한 달에 2백불 정도를 지원해 드리는데 이 돈을 노리고 이 선교사님을 죽였습니다. 선교사님이 4일이 넘어서 도착해서 보니까 시체가 그냥 천으로 덮여져있는데, 확인하기 위해서 천을 열었을 때는 시체에 구데기가 득실거렸습니다. 그런데 이 고려인 선교사의 순교의 피가 흐르는 ‘날칙’에 실버 선교사님 한 분이 1년 전부터 사역하고 계십니다. 이분은 4박 5일을 걸려서 기차를 타고 선교대회에 도착하셨습니다. 여성 선교사님 한 분은 100만 명이 있는 도시에서 혼자 사역하고 계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계속 선교사님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Þinn! 우리가 다 나갈 수 없지만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도 죽음을 무릎 쓰고 선교하는 선교사님들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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