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으로 기도하라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어느 날 농부가 호박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연약한 줄기에 큰 호박을 달아 줬을까? 그리고 왜 두꺼운 상수리나무에는 보잘것없는 도토리를 줬을까?” 며칠 뒤 농부가 상수리 나무아래에서 낮잠을 자는데 무언가 이마에 떨어져 잠을 깼습니다. 그 때 농부는 “호박이면 어쩔 뻔했을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화요일에 전화가 왔습니다. 한국컴퓨터선교회(KCM)에 인터넷으로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해서 적는 사항들이 있는데 너무 많다는 겁니다. 경찰서 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뭐 그렇게 많으냐고 계속 따져 물으시는 겁니다. 저는 컴퓨터선교회에 23년 이상 사역을 하다보니까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다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누가 불만이 제일 많으냐하면 집사님이요? 아닙니다. 예수님 제자들이 순교하기 이전에 제일 먼저 순교하신 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스데반 집사님 이십니다. 장로님도 아닙니다. 누구이겠습니까? 불만이 많습니다. 순종 제일 안 합니다. 자기 생각만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사항이 그런데요?” 물었습니다. “홈페이지 주소, 집 전화번호, 핸드폰 번호, 주소, 교회직분, 심지어는 구좌번호, 이게 다 뭡니까?” 그래서 제가 “이것이 다 나름대로 필요합니다. 홈페이지를 알리기 위한 분은 홈페이지 주소를 요구하시고 선교사들은 선교헌금 후원 받기 위해서 구좌번호가 필요합니다.” 그랬더니 계속 당신 이야기만 하십니다. 뭐 경찰서 조사 받는 것이냐 구요. 그래서 필요한 것만 적으세요. 그랬습니다만 가입만 하면 제가 밤낮으로 20여 년 간 모아온 자료를 공짜로 쓰는 것입니다. 감사는 없습니다. 몇 가지 적는 것만 불만입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시작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버지가 말합니다.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점을 명심해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입장도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했다고 만일 하나님이 아무 때나 물 막고, 또 물을 흘려보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은 이로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피해가 가는 겁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불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일관되게 말씀하시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는 공평입니다. 억울해 하지 마세요. 나만 왜 이렇게 못났을까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복음성가 작사도 하고 시를 쓰는 송명희 시인이 있습니다. 이분은 태어날 때부터 소뇌를 다쳐 뇌성마비 장애를 얻었습니다. 몸의 성장발육이 느리고 연약하여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도 못 다녔습니다. 거기에 찢어지게 가난하여 계속 이사를 다녀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불평을 늘어놓는 송명희씨에게 ‘말하는 대로 써라’하는 음성을 들었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 가진 제물 없으나, 나 가진 지식 없으나’ 왼손에 토막연필을 쥐고서 울먹이며 받아 적었습니다. 여기 까지는 자신의 입장과 같았습니다. 정말 제물 없고, 지식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갑자기 ‘공평하신 하나님이-’ 너무나 엉뚱한 말씀이 떨어졌습니다. 울면서 하나님께 ‘못쓰겠어요!, 하나님 공평하지가 않아요. 내겐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물러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시키는 대로 써라 하셨고 결국은 공방속에 하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나’라는 시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시로 그녀는 세상에 알려졌고 노래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하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데 까지만 이라면 불공평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보는데 까지면 불공평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고,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다음 세상이 있습니다. 절대로 불공평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기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는 전적인 믿음으로 출발합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순종입니다. 순종 없는 기도 또한 무의미합니다. 기도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놀고 먹으라는 명령을 하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하라고 하십니다. 네 달란트를 활용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볼 때 기도는 믿음으로 출발해서 우리의 행함으로 끝을 맺게됩니다. 기도는 우리가 선을 행하도록 힘을 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열매를 주십니다.(창은교회 목사님, 강아지에게 세탁기 타와라 그랬더니 재롱으로 TV에 나가서 컴퓨터 탔습니다.)
믿음 없이 보세요? 바보 중의 바보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 같습니다. 시간 들여야 되지요. 물질 드리지요. 봉사하지요.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의 힘으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살려고 합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능력에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역사적으로 기도에 대한 교과서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때에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도우려고 35만 명이 도버해협을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독일이 2주만에 프랑스를 완전히 점령해 버렸습니다. 프랑스가 독일군대에게 패해 버리자, 영국에서 도와 주려고 건너갔던 35만 대군이 갇혀버렸습니다. 자기들만의 힘으론 독일군과 싸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영국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도버해협으로 도망하기에 이릅니다. 히틀러는 베를린에서 도망하는 영국 군인들을 아주 전멸시켜 버릴 것을 명령하고는 태연히 있었습니다.
그 때에 영국왕 조지 6세는 온 영국에 “어떻게 하든지 영국 군대를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기도의 날”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영국의 젊은 군인들을 구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전 국민이 기도했습니다. 기도 후 이상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 독일군 쪽에는 큰 폭풍우가 일어서 비행기 한 대도 뜰 수가 없었고 너무 비가 많이 와서 탱크 한 대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국군이 있는 도버해협은 어찌나 잔잔하고 고요한지 수많은 배가 35만의 영국 군대를 무사히 날랐습니다. 독일은 전쟁을 통해서 얻은 것이 없지만 영국은 달랐습니다. 전쟁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배운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
이런 영국에서 세월이 지났습니다. 템플 목사가 켐브리지 대학에서 설교 부탁을 받아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석학들이 모인 그 곳에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다가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담담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와서 따져 물었습니다. “목사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기도가 응답된다고 말씀하십니까?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우연입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연의 일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는 응답되는 게 아니고 우연히 그저 그렇게 요행으로 된 것입니다.” 템플 목사님은 그 청년의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래, 청년의 말도 일리가 있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하면 우연이 생기고 기도를 안 하면 우연이 안 생긴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기도하는 거라네. 기도가 응답되는 것이 우연이든 아니든, 기도하면 응답이 오기 때문에 기도가 중요하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은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돈은 휴지조작보다 못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건강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건강은 아무도 자신할 수 없으며 또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지혜나 지식도 사탄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사탄이란 원래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하고는 게임이 안됩니다. 우리가 사탄을 이길 수 방법은 기도뿐입니다.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너무 바빠졌습니다. 행사가 너무 많습니다. 쓸데없는 모임들이 너무 많습니다. 가장 힘있는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능력 있는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기도와 간구로 … 아뢰라
기도(proseuch’/:프로슈케)는 “기도함, 교회당, 예배당”을 뜻하는 ‘proseuvcomai:프로슈코마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프로슈코마이’는 “기도하다, 간청하다, 예배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기도와 예배를 포함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곧 예배가 기도가 되는 것이며 기도가 예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없는 예배는 없습니다. 기도가 예배의 핵심임을 말해줍니다. 두 번 째 단어 간구(devhsi”:데시스)는 “청원, 기도, 간청”을 말합니다. “이 단어는 ‘devomai:데오마이’로 “원하다, 바라다”의 동사에서 온 말입니다. 그리고 기도에 대한 한가지 단어가 더 나옵니다. “하나님께 아뢰라”입니다. 아뢰라(ai[thma:아이테마)로 "요청, 요구"입니다. 이 단어는 "aijtevw:아이테오"로 "구하다, 묻다, 청구하다"에서 온 단어입니다. 기도는 이 세 가지 형태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세 단어가 모두 기도를 뜻하지만 약간씩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기도'는 예배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구하되 함부로 구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우롱하거나 시험하는 기도는 안됩니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예배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둘째, '간구'는 탄원입니다. 간청입니다. 간절해야 합니다. 셋째, 아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입니다. 청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시작할 때 몇 년 전에 계셨던 장은숙 전도사님 간증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청구아파트를 청구합니다." 그래서 아파트 당첨돼서 샀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기도는 감사함으로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 없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가인 제사는 반려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다시 마음을 모아 제사를 드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에만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화요일에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블랙]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헬런 켈러’ 인 것 같았습니다. 실화하고는 약간 다른 것 중의 하나가 ‘앤 설리번’(영화에서 T라고 말하는) 선생님입니다. 앤 설리번은 실제로는 여자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블랙에서는 남자로 나옵니다. 그리고 인도에서 만들어져서 그런지 배경이 미국이 아니라 인도였습니다.
앤 설리번은 헬렌 켈러에게 손바닥 위에 알파벳을 쓰는 방법으로 영어를 가르쳤으며, 1888년 앤 설리번과 헬렌 켈러는 퍼킨스 시각장애학교에 함께 등교하였으며, 래드클리프 대학에 함께 진학하였습니다. 영화에서는 대학 총장을 만나서 헬런 켈러를 입학시킬 것을 권유하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면서 입학을 결정하게 만듭니다. 헬렌 켈러는 1904년 래드클리프 대학(대학은 하버드 대학교 부속)을 졸업하였습니다. 헬렌 켈러도 위대하지만 앤 설리번이 없었다면 헬렌 켈러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한 사람을 위하여 강한 집념으로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앤 설리번’ 선생은 불행한 환경 가운데서 자란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학대하며 자주 때렸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결핵을 앓고 있었으며 그녀가 여덟 살 때 죽었습니다. 그 후 앤 설리번은 친척에게 맡겨졌는데, 나중에 그녀의 친척들은 그녀와 남동생을 매사추세츠 주립 병원에 내다 버렸습니다. 앤 설리번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결핵에 걸린 남동생을 간호하였으나, 남동생 지미는 죽고 말았습니다. 시설에 맡겨진 아이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헬렌 켈러를 시설로 보내지 않기 위해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우리를 그곳에 보내시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나를 믿으라고 하시는 겁니다.
헬렌 켈러가 졸업하던 날에 기자가 물었습니다.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이 물음에 “시력은 있되 비전이 없다면,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 보다 더 불행한 일이죠.” 라고 대답했습니다.
비슷한 대사가 나오는 영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빠삐용(스티븐 멕퀸)입니다. 빠삐용이 감옥의 섬에서 탈출할 때에 드가(더스틴 호프만)가 옆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네가 아무리 이 섬에서 탈출한다고 해도 네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너는 여전히 감옥 속에 갇혀 사는 거야.”라고 합니다. 이 영화는 프랑스의 앙리 샤르에르의 실제 인물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그 책에 보면 ‘방코(Banco): 빠삐용’이 탈출한 이유가 나옵니다. 1930년 20살 나이에 파리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때 실적이 눈이 어두웠던 검사가 앙리 샤르에르를 범인으로 지목하여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때부터 샤르에르는 자기 인생을 망친 그 검사를 죽이기 위해 악마의 섬을 탈출합니다. 영화는 여기서 끝납니다. 그러나 실화는 계속됩니다.
그는 남미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돈을 번 후 파리로 갑니다. 그는 먼저 젊었을 때 자기가 다니던 거리,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함께 다니던 고향의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 말씀이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수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주여, 제가 복수를 포기하겠사오니 이 땅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기도를 마친 그는 스스로 속삭입니다. “샤로에르야, 네가 바로 진짜 승자다. 그는 과거의 인물일 뿐이다.” 이렇게 다짐하고 자기를 30년 동안 가두고 있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진리가 승리한 것입니다. 주님이 승리하신 것입니다.
기도는 감사를 동반하고 감사는 기도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우리는 이미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개미의 배 속에는 ‘사회 위(社會 胃)’라는 제2의 위장이 있는데 그 속에는 먹이를 소화시키지 않고 보관만 합니다. 그랬다가 굶주린 동료 개미가 와서 입을 벌리면, 요구를 받은 개미는 망설임 없이 그 개미에게 입을 맞추고 자신의 사회 위에 보관한 먹이를 올려 먹여줍니다. 개미의 입맞춤은 생명을 살리는 행위입니다.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전 16:20, 고후 13:11)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입맞춤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그 입맞춤은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개미의 ‘사회 위’와 같습니다. 기도로 살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