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분
Rev yiyoungje Predikimi MP3 Dëgjimi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Unë 12:13-14)
구원은 우리에게서 남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은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느냐, 하나님을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한 제가 오늘 설교를 해야 하는 궁극적 목적 또한 성경을 여러분들이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John 8:47)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잘 사느냐 망하느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했느냐, 사업에 성공했느냐, 가정생활을 얼마나 잘 했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행복의 척도에는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영혼을 구원할 수 는 없습니다. 전도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해 아래서 수고하는(진저리나게 고생하는) 모든 것은 헛되다는 것입니다(Unë 1:3). 하나님 없는 인생은 보잘것없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마지막을 보아야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들어가면 변화가 생깁니다. 모든 죽어있고 생명력이 없는 일들에 생명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Fjalët e urta 1:7)Ka të lartë.
미국은 어려울 때에 전 국민이 성경을 읽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복을 받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축복을 받을 때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대화가 통해야 합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에스겔이 본 마른 뼈들에 대한 환상이 나옵니다.
주전 587년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왕이 군데를 거느리고 내려와서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솔로몬 왕이 세운 하나님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백성이 사는 예루살렘거리는 무자비하게 불로 태워 버렸습니다. 또 항복하지 않는 백성에게는 학살을 감행하였고, 왕과 제사장, 서기관등 예루살렘의 중심인물들을 결박하여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Kings 24:13). 이에 대한 기록이 예레미야 39장, 열왕기하 25장, 역대기하 1장, 시편137편 등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보다 11년 앞선 598년에 여호와긴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온 사람들 중의 제사장 이었습니다. 여호와긴 왕과 신하들, 몇몇 귀족들만이 바벨론도성에 포로로 붙잡혀 있었던데 반해서(Kings 25:27절 이하) 나머지 포로 민들은 바벨론 남쪽지역의 점점이 흩어져 식민 개척자들로서 황폐한 국가농장 마을에 정착시켰습니다. 그들은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던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산악기후에 길들여져 있었던 이스라엘의 포로 민들은 바벨론 저지대에 위치한 뜨거운 늪지대에서의 중노동은 거의 견뎌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이때 포로 민들의 심정이 시편 137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애가3:4참조)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Qytet 137:1-2)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까지는 노래도 못 불렀습니다. 모든 것이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저는 태국, 미얀마 산을 떠돌아다니는 카렌족에 대장에게 목사 안수를 할 때 설교를 하고 다녀왔었습니다. 카렌족은 대다수가 기독교인입니다. 미얀마는 북한정권과 비슷하게 군부가 장악하고 독재정치를 합니다. 수도도 랑군에서 네비도로 옮겼습니다. 미얀마는 카렌족을 지속적으로 학살하고 있습니다. 산족의 모든 마을을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있습니다. 3,300개의 마을이 불타 집들이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고, 곳곳에 셀 수도 없는 양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미 5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고통과 자포자기의 체념이 강하게 포로 민들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의 상황을 잘 표현한 것이 애가 3장에 나옵니다.
“3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5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6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애 3:3-6)
고생고생 이런 고생이 없습니다. 죽은목숨과 진배없다는 자포자기의 절망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그 암울한 시기에 남의 나라 땅에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활동을 계속합니다.
에스겔의 대표적인 예언은 ‘마른 뼈들의 환상’입니다. 에스겔이 본 것은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널려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환상 속에서 본 골짜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의 해골로 가득하였습니다.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Xhel 37:3-4) 약간 미친 짓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늘 그렇습니다. 사람이 가능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불가능한 말씀을 하십니다. 순종하고 돌면 여리고 성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백세에도 이삭을 날수가 있는 것입니다. 풀무 불에서도 살아남는 것입니다. 태양이 뒤로 물러가기도 합니다. 처녀가 잉태를 하는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들어있습니다.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25장 27-34절에 보면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파는 장면이 나옵니다.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Dritare 25:32-34)Ka të lartë. 에서는 두 가지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첫째는 32절에서 “내가 죽게 되었으니”Quhet. 실제로 바로 죽었습니까? 죽지 않았습니다. 살 생각을 해야 됩니다. 왜 죽을 생각을 합니까? 너무 급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고비만 넘기면 되는데 그 때 그만 일을 망치는 것입니다. 에서만 장자의 명분을 판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에서처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마음이 급하여 파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특히 구약시대는 장자를 통해서 축복이 내려가는데 이것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Dritare 19:14)Ka të lartë. 다른 책 다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사람의 말 다 우습게 생각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습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Jezu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요 10:35) Kam. 성경은 철저하게 예언된 대로 이루어져 가는 책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Qytet 21:1)라고 예언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외치셨습니다(T 27:46). 또한 시편 22편에서 고난 받는 주께서 갈증을 느끼실 것이라고 했는데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요 19:28)고 외치셨습니다.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T 19:3-5)Ai gjeti.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약 1,800개의 구절을 말씀하셨는데 이중에 10%인 180개가 구약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Qëllim 3:16)Duhet të. 시험이 어디서 오기 시작 하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질 때 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평생 소비하는 양식을 추산한 바에 의하면(서양 사람 기준), 소 150마리, 닭 2,400마리, 새끼 양 225마리, 양 26마리, 돼지 310마리, 3만평의 농토에서 소출 되는 곡식, 그리고 6만평에서 소출 되는 과일 채소 등이라고 합니다. 엄청난 양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렇게 많이 먹고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먹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미국 메사추세츠 주 퀸시에 있는 어떤 교회 게시판에 이런 내용이 붙어있었다고 합니다. “낡고 헤어진 성경을 소유한 사람은 낡은 사람이 아니”며 하늘 보화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사람들의 말은 믿지 못해도 성경에서 하나님 자신이 증거 하는 진실 된 말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사야 65장 16절에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가리켜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10장 10절에도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증거는 “하나님은 참되시다”(요 3:33)A është kjo. 뿐만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요 17:3),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Dita e javës 5:20)Gjetur se. 이 말씀에 관하여 하나님은 또 다시 하나님은 거짓 말 하실 수 없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Njerëz 23:19)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Titi 1:2)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Hi 6:17-18)E kanë quajtur.
아직도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성적으로 믿지 못할 말씀을 어떻게 믿느냐고? Juaj!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보다 크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다 이해한다면 내가 하나님이거나 오히려 내가 미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모르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Klasik 2:11)
성경은 놀라운 책입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책입니다. 성경 외에 살아 있는 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책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본성을 변화시키는 책은 오직 성경뿐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책입니다. 이에 대해서 시편 19편이 잘 증거 합니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Qytet 19:7-10)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제외하고서, 우리가 아는 범위 안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서 살아 있다 불리는 것들은 실제로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음이 이 세상의 통치자인 샘입니다. 죄로 물든 이 세상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한줄기 빛처럼 쏟아진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에 대해서 이사야 40:6-8절을 인용하여 잘 표현했습니다.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Peter 1:24-25)
Predikim : Rev juanggyohoe yiyoung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