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제자 요한
Rev. yiyoungje MP3 sermon Pakikinig
Ang Buhay ni Jesus(47. 사랑하는 제자 요한) / John 21:20-23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덴마크의 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저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왕자가 말을 타고 시골로 사냥을 가면서 빈민촌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시골길에서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습니다. 천사같이 아름답고 깨끗한 여인이었습니다. 왕궁에 돌아와서도 그는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끝없이 생각나고, 그리웠습니다. 그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여인에게 내 사랑의 진실을 믿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첫째 고민이었습니다. 둘째는 신분의 격차가 엄청납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합니다. 신분의 격차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알릴 수 있을까? 배우고 못 배우고, 가난하고 부하고가 문제 안됩니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의 위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겠는데….. 그리고 세 째로, 잘되고 못되고, 행복하고 불행하고….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문제가 있든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것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제 네 째로, 어떻게 하면 그녀도 내가 저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내 사랑을 받아들이게 하고, 저도 나를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그는 이것을 고민했습니다. 물론 연구도 했습니다. 주변의 의견도 구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그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왕궁에서 입던 화려한 옷을 벗어버리고 그녀가 사는 시골 마을로 가서 조그마한 방을 하나 세 얻고 목수가 됩니다. 일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풍습을 배우고,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깊이 사귀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순박한 생활 속에 엄청난 행복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동네 사람들과 부지런히 사귀었습니다. 마침내는 그 여인하고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듯 모든 넋을 버리고 당신을 찾아왔다,라고. 비로소 이 여인은 왕자의 엄청난 사랑을 알고, Maniwala, 깨닫고 받아들여 왕궁으로 들어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1. 요한의 이름
레오날도 다빈치(Leonardd da Vinci)는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소녀처럼 미소지으며 부드럽게 흰 손을 겹치고 있는 요한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십대의 말기에 주 예수를 만났을 때에는 비록 사도들 가운데서 나이가 가장 어리며 나약한 사람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요한과 그 형제 야고보를 “보아너게”(우뢰의 아들)이라고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Lamang 3:17). 이 형제들은 베드로 못지 않은 과격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다빈치가 그린 그림에서 나타난 것처럼 예수님은 요한을 완전히 변화 시키셨습니다. 오늘 우리 또한 요한과 같이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요한의 초기 생활
형제인 야고보와 함께 요한은 가버나움에서 베드로, 안드레와 고기를 잡으며 살았습니다. 요한의 아버지는 세베대였습니다(T 10:2). 고기잡이는 근육을 발달시키는 힘든 노동입니다. 거센 파도를 헤치면서 노를 저어야하고 그물을 힘들게 털어 내야 합니다. 때문에 손바닥에는 못이 박힙니다. 뙤약볕 아래서 그물을 수선하는 일은 구리 빛 얼굴로 만듭니다.
안드레와 함께 요한은 세례 요한에 의해서 예수님께 인도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몇 말씀을 나눈 요한은 그가 구세주임을 확신하였습니다. 요한은 육십년이 지난 뒤에도 처음으로 예수님과 대화한 감격적인 시간인 시간을 회상했습니다. 이 순간부터 예수님은 요한의 생애에 빛이 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의 가장 사랑 받는 사람”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처음 만난 후 요한은 고기잡이하러 돌아왔으나 나중에는 예수님과 동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기잡이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요한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James, Peter, 안드레와 함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하여 큰마음을 먹고 아버지와 배와 고기와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3. 요한의 성품
1)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믿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을 불사를 것을 요구한 요한
Luke 9:53-55Seksyon(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고로 저희가 받아 들이지 아니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데 유대인과 오랜 반목사이에 있는 사마라인들이 그 길을 막고 나섰습니다. 사마리아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 유대인은 그보다 더 사마리아인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 또한 유대인인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가는 길을 막은 것입니다. 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구원주이신 예수님의 길을 막는 사마리아인에 대해서 분개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있는 누구를 멸하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심판주가 아닌 구원주로 오신 것입니다. 바로 이 말을 할 때 앞장선 사람이 야고보와 요한 형제였습니다.
2) 예수님의 좌 우편에 앉아 권세를 누리기 원한 야고보와 요한
Lamang 10:35-38Seksyon(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 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좌 우편에 앉기를 주님께 부탁한 제자 역시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3)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에게 그 일을 중단하도록 요구한 요한
어느 마을로 복음을 전하러 가던 중에 요한은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동요하는가 보려고 요한은 앞으로 다가갔다. 귀신들린 한 소년이 땅 위를 뒹굴면서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 받은 권세로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미처 손도 쓰기 전에 낮선 사람이 귀신을 쫓아낸 것입니다. 그 소년은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뒤틀다가 조용해지더니 고침을 받았습니다.
Ang iyong! 선한 일도 내가 하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와서 이렇게 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요한은 “내가 해야 되는데 알지도 모르는 사람이, 예수님 제자도 아니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사람에게 “감히 어떻게 당신이 주님의 이름을 쓸 수 있단 말이오? 도대체 당신은 무슨 권능이 있길래 이런 일을 하오? 당신은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권세도 받지 못한 사람이요. 나는 주님의 가까운 사람 중에 한 사람이요. 이전에 나는 당신을 본 일이 없오. 결코 주님의 이름을 쓰지 마시오”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말할 수도 없으며 예수의 이름으로는 일도 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요한은 몰아쳤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라고 여쭈었습니다(Lamang 9:38). 예수께서는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한자니라”(Luke 9:50)고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위의 세 가지 사항만 보아도 요한은 우리가 아는 데로 결코 성격이 온순하다든가 남을 포용할 만한 인물이 못됩니다. 자신만 알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예수님을 쫓아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요한의 변화
어느 정원사가 정원의 흙을 보고 “너는 어떻게 그처럼 좋은 향기를 풍기느냐?”고 물었더니 진흙은 “사람들이나를 장미꽃 옆에 두었기 때문이랍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항상 주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성급하고 이기적인 청년 요한은 성인이 되어 온유한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요한의 잘못된 야망은 없어졌습니다. 편협한 외곬수적 성격도 사라졌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격렬한 성격의 청년에서 남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요한이 복음서뿐만 아니라 서신과 계시록도 썼다고 봅니다. 약 일 세기 전에 일부 학들이 “요한서신을 쓴 사람이 과연 사도 요한이냐”하는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복음서의 요한과 서신의 요한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네 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요한을 야망으로 가득 차 있고 화를 잘 내며 도량이 좁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비하여 요한서신의 기록자인 요한은 사랑의 정수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주 예수에 의하여 우뢰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도로 변한 것입니다.
요한이 이렇게 변하는 데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의 인격 속에는 타고난 성격이 항상 깃들어 있기 때문에 폭발적인 잠재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함께 해주시는 권능과 근엄한 용모는 여러 갈래로 찢어진 요한의 옳지 못한 정력을 온유한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5. 요한이 보여준 사랑
우뢰와 같은 요한의 성격이 온유하게 변한 것은 십자가와 초대교회에의 성심과 용감성도 설명해 줍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다가 어느 사도보다도 먼저 예수님에게로 다시 돌아온 사람이 요한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멀리 떨어져서 뒤따르고 있을 때 요한은 용감하게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갔습니다(John 18:15-16).
예수님이 심문을 받던 그곳에서 요한은 베드로도 뜰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종을 해쳤기 때문에 겁에 질려 베드로가 숯불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을 때 요한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재판장에게로 곧장 들어갔습니다.
모든 사도 가운데서 오직 요한 만이 십자가 옆에 서서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적들이 악의에 찬 독설을 내뿜을 때에도 요한은 도망치지 않고 적들의 한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들은 제자도 유일하게 요한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바라보시면서 자기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고 하시고 요한에게 그 어머니를 가리키며 “보라, 네 어머니라”하셨습니다(John 19:26-27).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마리아를 모셔온 후 요한은 다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려고 서둘러 되돌아갔습니다. 오직 요한 만이 “내가 목이 마르다” 또 “다 이루었다”는 최후의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께서 고개를 떨구시고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가시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를 때 피와 물이 나온 것과 요셉과 니고데모가 장사한 사실을 말한 것도 요한 뿐입니다(John 19:38-42). 요한은 용감했으며 최후까지 예수님께 헌신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살인마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어린양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 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요3:16) 유명한 말씀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요한은 책임감으로서의 사랑뿐만 아니라 사도직의 징표로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가”(요 13:34-35)하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상기시켜 주었다. 요한은 그의 저술에서 오십 번 이상이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사랑 받는 요한은 예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믿었으며 밤을 새워 고리를 잡은 후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아본 제자였습니다(요 20:8, 21:7).
요한의 사랑은 무조건 온유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직설적이며 강한 성품으로, 거짓을 행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서슴치 않고 경고했습니다(Araw 1:6, 2:4).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당부했습니다.(요2 10). 또 디오레베는 교만하여 사악한 말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세상에 공개했습니다(요삼 9:10). 요한의 우뢰 같은 성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그의 강경한 어조도 사랑과 겸손으로 변화되어 나타납니다.
은혜 속에 살고 성장하는 것에 관하여 요한의 생애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요한은 불같은 성급한 성격을 서서히 가라앉히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권세에 순종했습니다. 여든 살이 되어서라도 사랑하며 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요한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성도들에게 그의 삶을 통해서 어떤 문제와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를 보면, 한 마디로 말한다면 “사랑의 훈련”입니다.
요한 처럼 주님의 가슴에 기대어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3:1절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라고 말한 것처럼 주님의 가슴에 깊이 기대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면서 그 주님의 호흡을 느낄 때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부부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남편에 대한 아내의 불만은 커져갔고 가정의 화평이 깨지자 부부는 고민 끝에 각자 종이상자를 하나씩 준비하여 서로에게 불만이 생길 때마다 불만 내용을 글로 써서 그곳에 집어넣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달 후 상자를 서로 바꾸어 보기로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