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히 좋았더라(창세기 2)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 1:31)

하나님을 믿은 믿음은 성경의 첫 장인 창세기에서 결정 납니다. 창세기를 믿을 수 있다면 나머지 성경을 못 믿을 것이 없고, 반대로 창세기를 믿지 못한다면 믿음은 없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성경도 없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이러한 아름다운 세상을 분명히 창조하신 분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바울도 증거 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자연계시’라고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다 일반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누리고 살아가는 자연세계입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생각했습니다. “이런 세상이 우연히 존재할 리가 만무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겁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나 당신을 찾는 사람에게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하고는 가까이 하면 안됩니다. 이런 사람은 발전이 없고, 과학도 철학도 없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저 ‘세월이 약이겠지요!’ 하면서 삽니다. 세월이 약 아닙니다. 그냥 시간이 흘러서 잊혀진 것입니다. 잊혀진 것하고 고쳐진 것하고 구분을 해야 합니다. 사탄은 언제나 그럴듯하게 말합니다. 그 그럴듯하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자 하나 정리하고 넘어갑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한 롬 1:20에도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연 좋아하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마세요? 이런 사람은 복권이나 사고 경마장에 갑니다.

모든 문제는 반듯이 원인이 있고 그에 따른 결과가 있습니다.
원인을 찾아 올라가는 것을 형이상학이라고 합니다. 철학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쪽을 분석해 나가는 것이 과학입니다. 이것이 바른 학문입니다. 그런데 그냥 우연으로 다 취급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오늘날 철학이 없다는 것은 근원에 대한 관심이 없고, 그냥 오늘날 먹고사는 문제에 자기 욕심 적인 것에 가득하여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우리 소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창세기를 알아야 우리의 방향설정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것은 내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복 받는 것 자기 소원과 자기 복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어렵습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여야 합니다.

사람이 바르게 살려면 먼저 모든 관계설정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엉망이 됩니다. 철학과 윤리가 서지를 않습니다.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를 부르는 것부터 바로 불러야 합니다. 어떤 부부는 남편을 부를 때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옆집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은 ‘오빠’입니다. 관계설정이 잘못되면 안됩니다.
‘여보’는 ‘여기 보세요?’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보’는 ‘같을 如(여)자와 보배 보(寶)’로 보배와 같이 소중하고 귀중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남자가 여자를 부를 때 하는 말이며 여자가 남자를 보고 부를 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남자를 보배롭고 아름답다고 한다면 이상하지요. 그래서 당신(當身)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마땅할 당(當)자와 몸 신(身)’을 사용합니다. 당신은 곧 내 몸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 시집 안간 자매님들 누구를 찾아야 합니까? ‘당신’을 만나야 되는 겁니다.

자 우리 결혼한 부부들 한번 해 봅시다.
남자가 여자에게 ‘여보’ (보배와 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남자에게 ‘당신’ (내 몸과 같은)입니다. 용어하나 하나 제대로 사용해가야 합니다. 요즘은 다 뒤죽박죽 되었습니다. 자기 멋 대로입니다. 기본이 없고 율도 없습니다. 성경은 기본을 가르쳐 줍니다. 특히 창세기는 사람의 모든 근본을 알려줍니다.

창세기 3:1에 처음으로 사탄(뱀)이 하와에게 접근하여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말합니다. 하와가 3절에 제대로 대답을 합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3)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뱀이 4절에서 바로 이 대답을 뒤엎는 말을 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고 말합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거짓말입니다. 아직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한 것입니다. 거짓의 시작이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은 하고 있었지만 믿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탄하고는 말을 섞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탄은 그냥 나타나면 쫓아버려야 합니다. 그 말을 앉아서 듣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왜 듣고 앉아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사탄에게 하고 나서 바로 하와가 했어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사탄아 물러가라!”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고 했습니다.

이후에 인간은 책임을 지지 아니하고 모든 문제에 핑계를 대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결과를 기대하고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하셨습니다.

창조를 부정하는 진화론자들이 다 달려와도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증거를 가져와 봐라’ 그러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현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은 진화가 멈췄다고 말합니다. 증거가 없으니까 꼬리를 내린 것이지요.
그리고 ‘소 진화’는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환경적 변화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말을 바로 해야 됩니다. ‘소 진화’가 아니라 ‘변화’입니다. 그리고 환경적으로 적응하며 자라나는 것은 ‘적응,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처음부터 생명체에 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화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창세기 1장의 마지막 절입니다. 하나님은 뭐하나 만드실 때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토브)”고 말씀하십니다.
1) 4절 “빛이”
2) 10절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3) 12절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4) 18절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니”
5) 21절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6) 25절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7) 31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이렇게 일곱 번 하나님은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심히 좋았더라”는 창조 때의 하나 하나의 기쁨을 모두 포함하는 기쁨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함께 결론에 해당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얼마나 보기 좋으냐 정말 이쁩니다. 저는 미안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아름다운 여자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러시아 북쪽 빼째르부르그를 넘어서 에스토니아 이쪽에 가면은이요 사람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머리카락도 하얀색도 아니고요 금빛도 아닙니다. 그 머리카락이 가늘고요 빛이 납니다. 아이들은 이요 정말 훕쳐가고 싶습니다. 거기서 한 열흘 있다 한국에 오면 눈을 둘 곳이 없습니다. 눈 버립니다. 정말 옛날에 이 사람들이 전쟁 할 때요 무슨 조국을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라 이런 이쁜 가족 지키기 위해서 전쟁하겠다 싶더라구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첫 차람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죄로 인하여 수명이 단축되고 어린 나이에(100살)도 불구하고 피부가 다 썩어 가지고 힘도 못씁니다. 죄의 결과 입니다.

사람은 만물의 맨 마지막에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창조물을 사람을 위해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다른 창조물의 창조 때 나타나지 않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27절의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입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두 번 째는 28절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입니다. 그 복의 내용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모든 식물 먹을 것으로 준 것(29, 30)”입니다.

오늘날에도 제대로 된 사람들은 자기가 만드는 물건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사람이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비싼 돈주고 샀는데 자꾸 고장이 나는 겁니다. 그것도 알고 보면 무슨 심각한 결함이 아니라 사실 사소한 것 하나가 제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참 짜증납니다.
그런데 만드는 사람의 생각대로 잘 만들어졌고 잘 작동하고 오류가 없으면 참 기쁩니다. 뭘 만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이 기쁨을 잘 모릅니다.
저도 요즘 이북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들면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는 도구로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최소한 그것이 잘 안 된다 할지라도 악하게 사용되지는 안기를 바랍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음란물이나 전달되는 도구로 전락한다면 만든 사람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사이트를 계속 운영해야 합니까? 저는 폐쇄 할겁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창조하실 때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사람을 통해서 기쁨을 얻으시며 만물을 다스리고 사람이 하나님과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창조하신 분의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타락한 세상에서는요 정직하고 거룩하고 바르게 살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정직하여도 고난을 당합니다. 오히려 대충 적당히 살면 다 넘어가는데 바르게 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고 적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다 바르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 옆에 십자가에 못 박힌 한 강도도 알았습니다. 이분이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타락해서 그럽니다.

카톨릭뉴스(2009.8.18)에 [아무리 '개독교'라 불러도 한국개신교는 망하지 않는다!]는 씁쓸한 제목의 내용이 실렸습니다.
“지난 몇 년간 한국교회는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비리와 세습, 물신주의와 성장주의, 수구 보수적 행태,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상징되는 패권적 선교방식으로 ‘개독교’라고 불리며 신뢰도가 급락했다. 지난 8월 15일자(100호 특집) 시사인 여론조사결과(실시기관: 미디어리서치, 전국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 개신교의 신뢰도는 26.9%로 천주교(66.6%)와 불교 (59.8%)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신교 인구가 천주교에 두 배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국민들이 개신교에 가지는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아울러 “천주교와 불교에 비해 신뢰도는 많이 떨어졌지만 그들의 선교방식과 교회운영은 효과를 발휘했다. 이에 타종교인들은 한국교회의 배타성과 공격성을 비판하면서도 포교나 집회방식을 따라하고 서울 강남과 수도권 신도시에 대규모 종교시절을 지으면서 한국교회와 경쟁하고 있다. 비판하면서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교회는 쉽게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목회자와 교인 간에 이해가 일치하고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와 물신주의에 벗어나지 않는 한 말이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한국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물신주의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말을 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를 천주교가 염려하고 불교까지 교회를 염려하고 교회 다니지 않는 분들까지 교회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교회만 모릅니다. 목사들만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요 무슨 사람이나 쓰러뜨리고 은사가 임했다고 하니까 우습게 보는 겁니다. 성령이 어디 할 일이 없어서 사람이나 쓰러뜨립니까? 그렇게 잘 쓰러뜨리면 저기 K1에 나가면 되지요. 최홍만이는 이제 그만 들어 오라 하고요. 저는 혼자 매일 쓰러집니다. 그냥 가만있어도 요즘은 쓰러지려고 합니다. 그분들의 말대로라면 저는 엄청 은혜를 받은 겁니다. 정신차려야 합니다. 뭐가 하나님의 은혜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 배우겠다고 미국에 한국 목사들이 몇 천명씩 갑니다. 이러니 타락했지요.

이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섬겨 하나님께서 내가 그 자식 때문에 ‘기쁨이 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함입니다. 제가 처음에 서울에서 건대입구로 이사를 갔는데 그쪽으로 처음 이사를 가서 집도 못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몇 년 살다보니까 큰 길 뿐만 아니라 샛길까지 다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성경을 볼 때 큰길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많이 보면 샛길도 보입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도 들을 수 있습니다.

비록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하는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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