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찾는 사람들

کشیش yiyoungje خطبه MP3 گوش دادن 오전예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T 2:2)

말라기 예언자 이후 약 400년 동안 하나님은 선지자로도, 제사장으로도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빛이 없었습니다. 영적 암흑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부모 잃은 아이처럼 고아가 되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릅니다. 이 시기에 철학자들이 모두 태어났습니다. 소크라테스, 공자 이 사람들이 모두 이 때에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세상 철학에 기대를 해보고, 종교에 기대를 해 보지만 그곳에도 답은 없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마음에 약간 위로를 얻거나 스스로를 위안을 삼고자 하는 방편으로 기대는 정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절기로 지키지 못하다가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에나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교회가 생긴 이후 처음 300년 간은 성탄절도 지키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 예수님을 찾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나오는 사람이 동방의 박사들입니다. 마태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T 2:2)است که به نام. 이 동방의 박사들을 이해하려면 뭐 별들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그것이 사실이냐, 이런 이야기들은 본문의 핵심이 아닙니다.

마태가 왜? 유대인이 아닌 멀리 이방(동방)의 박사들을 소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태는 이 복음서를 유대인에게 보내고자 쓰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편지를 받아보고 무엇을 느끼겠습니까? 생각이 있는 유대인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받았던 민족이 아니냐? 우리가 어떤 민족이었는데 왜? 우리가 예수를 못 찾고 저 이방의 사람들이 예수를 찾는가? 그리고 마태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유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요나서를 배웠습니다. 요나서의 메시지가 무엇입니다. ? 하나님이 엘리야, 엘리사 다음에 요나 선지자를 보냈습니까? 그 회개치 않을 것 같던 이방의 니느웨가 요나가 반나절 외쳤는데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고 그 성읍이 멸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마태의 입장에서 유대인에게 그와 같이 이방인은 예수를 영접하러 오는데 너희 유대인은 무엇이냐? 하는 반문을 마태는 하는 것입니다. 바로 동방박사들이 떠난 나라들이 바로 이 니느웨 가까운 지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한가지는 동방의 박사들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주일학교 설교하듯 이만 배워왔습니다. 솔직히 이 이방의 사람들이 뭐 하려고 예수께 예물을 드리고 그럽니까? 여러분들은 진정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솔직히 이들은 나라의 관례상, 또 미래의 관계를 위하여 정치적인 목적으로 예수께 예물을 드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가다가 또 인도하던 별을 잊어버렸습니다. 별을 잃어버린 박사들은 왕이 탄생하시니까 당연히 예루살렘 헤롯궁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하고 물었기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야 하는데 집중을 안 하니까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방해꾼이 끼어 듭니다. 헤롯왕도 예수의 나심을 알고자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식구들 말고 그 누구도 유대에서 왕이 나온다는 것은 자기들의 정치적인 위협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를 찾아 헤롯은 죽이기 위해서 찾았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생각하고 영접하는 세력이 아니라 경쟁자로 보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인 제사장이나 서기관 심지어는 바리새인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도 잘못하면 예수가 구세주가 아니라 경쟁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하고 경쟁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세례요한의 고백처럼 우리는 그분의 신발 끈 풀기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비교할 수 없는 분입니다.
예수를 찾았던 사람 중에 누가가 잘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는 이방인(헬라)들에게 전하는 복음이니까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이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이런 이야기는 누가가 아니면 정말 찾아내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왕실에서 찾은 것이 아닙니다. 대제사장이나 산헤드린공의회에서 찾은 것이 아닙니다. 추운 들판에서 밤에 조용히 양떼를 치던 목자에게서 찾았습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Jer. 2:8)می گوید.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를 발견하였는가 보면,

1) 박사들은 철학과 별의 인도를 따라서 발견하였고

2) 목자들은 천사의 인도하심과 가르침에 발견하였습니다.

3) 헤롯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고 무지하였습니다.

박사들은 왕으로 나신 예수님을 권력의 힘으로 이용하고자 찾았고, 목자들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습니다. 헤롯은 자기의 지위를 탐한다고 생각하여 예수를 죽이려고 찾았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찾는 이들은 자기가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뜻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یوحنا 1:9-13)

شما!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들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뜻도 있어야 합니다. 또한 앉아서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만납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신 것인지, 늘 질문을 하며 찾아야 합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고,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지를 끝없이 찾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پادشاهان 2:14) 엘리사는 엘리야와 함께 하시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پنجره 13:4) 아브라함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 제사 드리기 위해서 출애굽 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려고 출애굽 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남북통일 왜 하려고 합니까? 합해서 뭐하려고요? 경제권이 넓어져 내수 경제를 일으키고 잘 살려고요. 무엇이 제대로 사는 것입니까? 잘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رفتن 2:20)

그들은 어디서 예수를 발견하였습니까? 별이 인도한 곳이 어디입니까? 천사들이 인도한 곳은 놀랍게도 말구유에 뉘인 아기 예수였습니다. 그곳은 크고 화려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편안과 안락이 보장된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는 말구유에서 시작한 종교입니다. 제일 아래에서 시작하는 종교입니다. 왕궁에서 왕을 찾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자기 욕심으로 예물이나 드리고 가서 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그 베들레헴은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ساموئل 16:1).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ساموئل 16:4)

바로 베들레헴은 다윗이 사무엘에 의해서 기름부음을 받았던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그 베들레헴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계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겉만 보면 안됩니다, 속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로 하여금 바로 그 속을 보게 만들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곳에 오히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희망이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 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혀 필요 없는 것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잘 알려진 훌륭한 한국교회 목사님이 자신을 학교성적, , 집안으로 등급을 메긴다면 자신은 D정도, 아무리 잘 줘도 C+라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제가 그분의 이력과 양력과 학력, 집안을 조금 압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분이 C+이면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F이하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하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은 세상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상을 버리고 영원을 택하려고 하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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