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건축하라(학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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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학 1:8)

학개의 명칭
히브리어 성경은 본서의 명칭을 학 1:1의 표제에 나타난 선지자의 이름을 따라 ‘하까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등의 순례절들과 연결되는 히브리어 ‘하그’에서 온 것으로 축제, 축일, 혹은 잔치를 의미합니다. 70인역(LXX)은 이 책을 ‘항가이오스’라고 불렀습니다.
본서의 정경상의 위치는 포로기 이후에 쓰여진 세 권의 책, 학개, 스가랴, 말라기의 첫 권으로 분류되었고, 히브리어 정경에서는 소선지서의 10번째 책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귀환하기 시작한 것은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B.C. 538)으로 인해서 B.C. 536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귀환 후 스룹바벨을 위시하여 귀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제단을 쌓고 재물을 드렸습니다(스 3:2-6 학 2:14). 그리고 성전을 재건하려고 하였습니다(스 3:7-13).
그러나 성전 재건의 시도는 초기부터 벽에 부딪혔는데, 그것은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재건에 동참하지 못함을 분히 여겨 바사 왕에게 고발장을 내는 등의 방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사 제국도 사마리아인들의 고발에 대해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뿐 적극적인 중재를 하지 않았습니다(Archer). 그러던 중, B.C. 521 년에 ‘다리오 Ⅰ세’가 집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국의 반란 사건 등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 쓸 수 없었습니다. 본서의 예언은 바로 이러한 배경 하에서 성전 재건을 촉구하는 메시지였습니다.
‘다리오 Ⅰ세’는 B.C. 521-485 년에 걸쳐 바사 제국을 통치하였는데, 에스라의 보고에 의하면 성전 공사는 새롭게 시작한 후 4년 반만에 완성되었다고 전합니다(스 6:15). 따라서 ‘다리오Ⅰ세’의 통치 기간 중에 성전은 재건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역은 역시 학개와 스가랴, 그리고 예수아, 스룹바벨입니다.

스룹바벨 성전
바사왕 ‘고레스Ⅱ세’는 B.C. 539년에 바벨론을 정복하고, 메소보다미아, 시리아, 팔레스틴을 바사 제국에 병합하였습니다. 그는 이전의 앗수르나 바벨론의 포로민에 대한 압제와는 달리 관용적인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그는 정복하거나 병합한 나라의 종교적인 감정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공포감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그의 비문에 의하면 그는 바벨론 사람들로부터도 해방 자로 환영받았고, 또한 그는 그들에게 최대한의 아량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고레스 왕의 그 유명한 포로 귀환령도 그 자신의 관용적인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B.C. 538). 이러한 포로 귀환령으로 인해 유배되었던 민족들은 모두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들이 바사 제국에 반란을 기도하지 않는 한 자신들의 종교 의식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유다도 포로 귀환령으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또한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이 바사 제국의 한 자치권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을 다스렸습니다. 이들은 유다를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과 더불어 옛 성전(솔로몬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여 약 B.C. 516, 5년 경에 준공하였습니다. 이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이라 불리는데, 그것은 성전 재건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유다 공동체의 지도자로 있었던 것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그리고 이 성전은 유다 작가들을 통해서 제 2성전이라고 불렸으며, 그 존속 기간은 약 500년에 이릅니다. 따라서 스룹바벨 성전에 대한 자료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높이 평가되었던 성전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들이 유배 이후 유다 공동체를 탄생시키면서 이루어 놓은 업적이란 면에서 솔로몬 성전이나 제3의 성전인 헤롯 성전에 비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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