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라(스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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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21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슥 8:20-22)

스가랴의 명칭
본서의 명칭은 레위 지파를 인도한 제사장 잇도(느 12:4)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인 스가랴 선지자의 이름을 따라 ‘제카르야’로 정하였습니다. 이 이름은 ‘기억한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자카르’와 ‘여호와’의 축약형인 ‘야’가 결합된 명사로 ‘여호와께서 계약하심’ 또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는 자’란 뜻입니다. 한편 이 명칭은 70인 역에서 ‘자카리아스’로 음역하였습니다.
이 잇도는 바벨론으로부터 팔레스틴으로 돌아온 레위인 잇도(느 12:4)일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본서의 스가랴는 느 12:16에 기록되어 있는 잇도 족속의 제사장 스가랴와 동일인이 됩니다.
스가랴는 학개 보다 두 달 후부터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였고 다리오 제4년(516년)까 지 일한 예언자입니다.

스가랴는 이스라엘 민족을 격려하는 책임을 다한 예언자입니다.
그는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면 자기 민족은 영광된 미래를 가지게 되리라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메시야를 통해서 오는 미래의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북쪽의 사마리아, 서쪽의 아스돗, 남쪽의 이두메등 여러 족속이 새로이 재건되려고 하는 유다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그 부흥을 방해하였습니다.
이렇게 안과 밖으로 가난과 역경 속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격려하며 종교를 부흥시키고 국민을 결속시켜 국가를 재건하려고 노력한 학개와 스가랴는 위대한 예언자들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B.C. 520년에 포로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동시대인인 학개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신정 정치를 부활시키고(출애굽 전승의 계승자인 두 예언자는 고대적 이상주의를 실현하려고 하였음), 마지막 때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포로 귀환으로 돌아온 유다인들은 고향에 돌아오긴 하였으나, 냉대와 부지, 그리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때문에 스가랴 선지자는 비록 그가 이상주의적인 예언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자기 민족, 엄밀히 말해서 새로운 유다 공동체를 도탄에서 구하고 소망을 갖게 하려는 마음으로 불타게 되었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 도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을 요청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학개 선지자가 이미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학개와 더불어 새로운 유다 공동체의 재건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위로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다 사회의 지도자들은 정치 지도자든 종교 지도자든 다같이 미지근한 태도로 성전 재건 문제를 보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개와 스가랴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역사적 자리 확보를 위해서도 성전 재건은 필수적인 것이었으며, 성전 정치의 토대가 되는 것도 성전 재건과 결부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가랴는 해방 전승의 계승자답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에 있음을 간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예언은 비록 위로의 예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인 도탄에서 헤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는 것이 급선무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만연된 계약에 대한 무관심, 더욱 심각하게는 모세 율법에 대한 무관심과 멸시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복종과 신뢰, 그리고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따라서 본서의 기록 목적이라며, 근본적으로는 신정 정치의 도래를 선포하는 것이 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착각하고 있는 도덕적 무지, 종교적 타락이 척결되는 때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한편 학자들은 스가랴서도 학개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유다 공동체의 탄생에 기여하였다는 점을 본서의 가치로 삼습니다.

환상의 구조
스가랴가 밤에 본 환상들은 모두 여덟 가지인데, 모두 1인칭으로 되어 있고, 각 환상의 문학적인 양식도 거의 비슷합니다. 그것은 특히 환상의 구조를 살펴볼 때 명확해집니다. 각 환상은 ① 머리말, ② 환상의 내용, ③ 환상의 내용에 대한 질문, ④ 그에 대한 응답으로 되었습니다. 이처럼 환상의 문학 양식상 구조는 단순하며, 문장 구조조차 별다르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서 저자의 문학적인 표현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단순한 양식을 통한 폭넓은 사상의 표출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8가지 환상들은 메시아 왕국에 대한 예언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각 환상이 내포하는 표상들이 메시아 왕국의 도래에 대한 순차적인 예시를 보여줍니다. 또한 질의와 응답을 통하여 기독론과 구원론, 그리고 종말론에 대한 교리적 설명들도 나타납니다. 학자들은 이 점을 본서의 손꼽히는 특징으로 삼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환상의 구조적인 특징으로서 교리 적인 설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기독론 적인 면을 설명하는 환상은
네 번째 환상(슥 3:1-10)과 다섯 번째 환상(슥 4;1-6, 10-14)입니다. 이 환상들은 여호수아를 구현된 메시아로 지칭하지만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봄이 타당합니다.

두 번째로 구원론 적인 면을 제시하는 환상은 첫째 환상(슥 1:7-17)과 둘째, 셋째 환상(슥 1:18-21; 2:1-5)인데, 이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과 하나님께로 모이는 선민들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로 종말론적인 면을 드러내는 환상은 여섯째, 일곱째, 여덟째 환상(슥 5:1-4 ; 5:5-11 ; 6:1-8)인데 이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정화시키고, 이방을 멸하며, 끝내는 승리하실 여호와의 왕권에 대하여 예시하였습니다.

이처럼 스가랴가 본 환상은 그 구조면에서도 메시아 왕국과 선민들이 살아가야 할 교리 적인 교훈과 그들에 대한 위로를 적절하고도 간결한 문장과 양식을 통하여 보여주었습니다.

답글
  • 윤요셉말하길

    = 십자가의 고난은 곧 주님의 부활을 예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준비된 모든 분들이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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