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일에 본을 보이라(디도서)

Rev yiyoungje Predikimi MP3 Dëgjimi Adhurimi AM

“7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서신은 바울이 로마에서 첫번 옥에 갇혔다가 풀려 나온 뒤 마게도냐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디도는 이방인의 한 사람 이었으며 바울과 함께 역사 한 청년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형편이 낙담적입니다. 새로이 설립된 교회로 교인들은 품행이 경솔한 것을 2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짧은 서신 가운데서 여섯 번이나(딛1:16, 딛2:7,14, 딛3:1, 8, 14)선한 일에 대해 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는 윤리적 해석(딛1:12,13)과 특히 할례당의 논쟁(딛1:10)이 두드러집니다. 이러한 교회에서 디도는 목회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바울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른바 이신칭의 교리만을 주장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수가 있습니다. 구원은 분명히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에는 행동이 뒤 따라 갑니다. 당연히 믿음이 있는 자는 선한 행실을 할 것에 대해서 디도서에서 6번이나 지적합니다.

그레데라는 말은 ‘거짓말하다’는 말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하도 거짓말을 잘하니까 거짓말을 변형시켜 ‘그레데’라고 불렀습니다.
옛날부터 섬은 우상과 거짓이 육지보다 더 많았습니다.

제가 이번주에 울릉도와 독도를 다녀왔습니다. 울릉도에 교회가 40개가 있습니다.
울릉군이 동쪽의 섬임에도 불구하고 31.7% 라는 높은 복음화율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1889년에 불필요한 경쟁을 막고 선교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선교연합공의회를 조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선교연합공의회 초대회장인 아눌서 선교사가 제안한 선교지역 분할안(네비우스 선교방법)의 영향이 컸습니다. 한편 1889년 한국에 온 캐나다의 독립선교사 M.C. 펜윅은 최초의 침례교 선교사였는데 함경남도 원산에 자리잡고 다른 선교회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지역(만주·간도·시베리아·몽골 등)에 복음전도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한국 선교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 당시 장로교가 선교대상 지역으로 정하지 않은 지역을 들어가려다 보니 침례교가 장로교보다 먼저 울릉도에 도착하여 선교한 것입니다. 현재 울릉군에는 40개의 교회가 있는데 이 중에 감리교가 2개, 침례교가 17개, 장로교(통합, 합동, 고신 등 합계)가 17개 교회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Titi 1:1-3)Thotë. 바울은 분명하게 인사말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말합니다. 전도의 사명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일을 다해야 합니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Titi 1:5), 디모데가 해야될 일이 분명합니다. 장로를 세우는 일입니다. 장로는 청지기로서 감독의 역할도 해야 했습니다. Kamarier(:오이코노모스) 집을 다스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인을 대신하여 집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교회를 관리하고 다스리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계승은 디도서(목회서신)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계승이 디도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삶을 몇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있습니다. 바울 자신의 삶에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특권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권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특권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편지를 보낼 당시는 로마가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로마의 식민지가 많이 있었고 특별히 노예가 많았습니다. 많은 노예 중에 누구의 노예인가를 따지면 노예의 신분이 결정됩니다. 평범한 시민의 노예와 시이저의 노예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같은 노예이지만 시이저의 노예는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만왕의 왕이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권세는 대단한 권세입니다.
왕의 노예도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데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특권입니다. 종이라는 말은 좋은 뜻은 거의 없습니다. 자유가 없고 주인의 손에 조종당하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종이라고 밝히면서 주저하는 것이 없습니다. 비하하는 것도 없습니다. 아주 자랑스럽게 종이라고 밝히고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귀한 자랑거리요 재산인 동시에 디도에게 전해주고 싶은 삶의 특권이었습니다.

두 번째 특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것입니다. 사도란 보냄을 받아서 보내신 그 분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냄을 받아 예수님을 대표하는 사신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특권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특권을 가진 자신의 삶을 디도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디도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울이 자신의 삶을 전승해주고 싶어했습니까?

1) 디도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레데섬에 있는 교회를 디도에게 맡겼습니다. 자신의 후임자로 인정할 만큼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갈라디아 2:1에 보면 바울이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에 갈 때 두 사람을 데리고 간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사람은 바나바요 다른 한사람이 디도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간 이유는 사도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핍박하던 시절(회심전)의 사울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종 된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이때 디도가 동행자가 되었다는 것은 디도를 어느 정도 신뢰했는가 잘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디도는 위로와 기쁨을 선물하는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에 보면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맡은 사람이 디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을 중재한 사람이 디도였습니다. 디도는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 화해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Corinthians 7:6,7을 보면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3절도 보면 위로와 기쁨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디도는 위로의 사신인 동시에 기쁨의 사신이었습니다. 이것은 디도가 어떤 사람인가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입니다.

3) 디도는 어려운 일도 자원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헌금을 걷는 일을 위해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냈습니다. 이일을 디도가 잘 완수했습니다. 헌금을 맡길 만큼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헌금을 걷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목회자의 사역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역이 헌금에 대한 사역입니다. 디도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잘 완수했습니다. 남이 피하는 일을 자원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바울은 헌금에 관한 일을 디도에게 맡겼습니다.

1:5-9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디도가 이어받을 신앙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디도는 그레데를 방문할 때 동행했습니다. 떠날 때는 바울만 가고 디도는 남아서 교회를 돌보는 일을 맡았습니다. 디도가 그레데 교회를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디도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중 제일 먼저 장로에 관한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장로는수염이 난 사람이란 뜻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를 인격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된 말입니다. 수염을 기를 만큼 나이가 들었고 수염을 길러도 천박하지 않을 만큼 인격적 성숙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감독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장로의 직무는 감독하는 것입니다. 장로나 감독은 동일한 말인데 감독은 직무를 나타내는 말이고, 장로는 인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인격과 직임을 감당할 능력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6절부터 지도자의 자격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도자는 순결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순결은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대인관계에서 순결해야 합니다. 대인관계에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대인관계라 함은 먼저 불신자가 포함됩니다. Timothy 3:7에도 외인에게서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외인이란 바로 교회 밖의 불신자를 말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교회뿐 아니라 불신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딤전 3장에서도 자기 집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 교회를 다스릴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있습니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순결입니다. 개인적인 순결은 모두 11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깨끗한 사람입니다.
고집대로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Titi 1:7)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아우다데) ‘스스로’와 ‘즐겁게 하다’의 (:헤도마이)의 합성어입니다. 즉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8절 마지막에절제하며”(:엥크라테)는 문자 적으로는 ‘능력 안에’, ‘권능 가운데’의 뜻으로 성도가 육체의 욕심을 자제하는 일은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1:10-16
교회의 생명은 순결에 있습니다. 순결은 말씀을 지키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순결을 보호하는 말씀을 바른 교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순결은 교리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얻어집니다.
디도가 섬기는 그레데 교회에는 교회의 순결을 무너뜨리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할례당이었습니다.

3:1-8
디도서는 그레데 교회에서 목회하는 디도를 위해 기록한 편지입니다. 디도를 통해 그레데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자리 매김을 할 것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레데는 전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거짓말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레데가 어떤 지역인가를 알려 주는 것이고 그레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거짓과 위선이 가득한 그레데 사람들에게 그레데 교회라는 이름이 어떻게 자리 매김을 할 것인가는 교회의 생명과 관계된 것입니다. 순결한 교회로서 계속 유지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입니다. 이런 그레데에서 디도는 하나님의 교훈을 통해 성도들을 교훈하고 디도를 통해 교훈 받은 성도들은 그레데를 변화시키는 것이 바울의 바램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디도서를 기록한 목적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신앙의 전승입니다. 신앙의 전승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순결한 교회를 유지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임이 있습니다. 순결한 교회를 유지한다는 말에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어떻게 불순한 교회인가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순결함을 유지하는 교회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사회에서 어떤 인정을 받는가의 문제로 결론이 내려집니다. 이것은 사회에서 해결할 문제라는 말입니다. 우리끼리 있을때는 신자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회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들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디도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주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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