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18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그 성읍을 가리키니 19 그의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들의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으로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수8:18-19)

동서양을 막론하고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옛날, 옛날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토끼는 매우 빨랐고, 거북이는 매우 느렸습니다. 어느 날 토끼가 거북이를 느림보라고 놀려대자, 거북이는 토끼에게 달리기 경주를 제안하였습니다. 경주를 시작한 토끼는 거북이가 한참 뒤진 것을 보고 안심을 하고 중간에 낮잠을 잡니다. 그런데 토끼가 잠을 길게 자자 거북이는 토끼 옆을 한참 지나가고 잠에서 문득 깬 토끼는 거북이가 어느새 경주를 마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우화는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에 살던 노예였다고 합니다. 이솝우화로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들을 17세기 라퐁텐이 책으로 출간한 뒤로 우리들은 더 쉽게 이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우화에서는 인생을 경주에 비유했고, 토끼는 나태한 인간, 거북이는 성실한 인간을 상징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반대로 거북이가 토끼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고 보고, 거북이가 더 나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태한 토끼에게서 교훈을 얻으려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서양 사람들은 정직하지 못한 거북에게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나태한 것보다 정직하지 못한 것을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거북이가 토끼를 깨워서 정정당당한 게임을 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가나안땅을 보고 죽었고 이제 이스라엘의 인도자는 여호수아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목전에 있습니다. 그러나 첫 성인 여리고성은 가나안의 제일 큰 성입니다. 구약성경에 65번이나 언급된 오래된 성입니다. 여리고 성이 창세기 28:19에는 ‘루스’라고 나옵니다. 이 성을 뚫어야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여호수아 6장에는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천사가 지시한 방식대로 언약궤를 앞세워 여리고성을 육일 동안 돌고, 제 칠일에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고함을 쳐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여리고성의 정복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리고 성의 고고학적 발굴은 1868년부터 시작되었고 1930-1936년에 John Garstang 에 의해 발굴되었습니다. 가스탕(Garstang)과 올브라이트(Albright)는 B.C. 1400년대로 추정되는 일련의 무너진 성벽들의 잔해를 발굴해냈습니다. 이는 자연적으로 풍화되거나 버려져서 무너진 성벽들이 아니라, 드라마틱하게 무너져 버린 성벽들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여호수아의 여리고성 정복을 B.C. 1400년으로 기록하고 있는 구약성서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큰 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백성의 다음 목표는 아이성입니다.
아이성은 여리고성에 비해서 보 잘 것 없는 작은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와 달리 해발 800m 산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평지 전투는 정면대결양상이지만 산지는 다릅니다. 군사가 많다고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작은 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대패합니다. 여호수아는 첫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옷을 찢으며 땅에 엎드려 흑을 뒤집어쓰고 하루종일 통곡합니다(수 7:6). 그러면서 차라리 요단 저쪽(동쪽)에 그냥 있는 것이 더 좋았을 뻔하였다고 합니다(7:7).
어마어마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별것 아닌 아이성 때문에 이 고생을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적으로는 6.25를 겪었고, 60-70년대를 이겨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국가적으로,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도 여리고성과 같은 성을 무너뜨리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그 작은 아이성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고 낙담합니다. 그러면서 어떤 때는 여호수아가 요단 저쪽에 그대로 있었을 것 괜히 여기까지 들어왔다고 하는 것처럼, 결혼하지 않고 그냥 사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괜히 교회 나왔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철저히 분석하고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우리에게 이런 실패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아이성 전투의 1차 공격의 제일 큰 실패 원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아간 때문이었습니다.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수 6:18)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수 7:11)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몰랐습니다. 왜 전투에서 졌는지 누구 물건을 빼돌렸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고 계셨습니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수 7:21)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거짓입니다,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것이 용서와 축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즉결심판이 딱 한군데 나옵니다. 그것은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다가 마음이 변한 사건입니다. 땅 팔아 절반만 바쳐도 많이 바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께는 지금 많고 적은 것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아간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빼앗아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수 7:26)

여러분! 하나님 것 내가 못 같습니다. 하나님 것 가지고 있으면 바로 드려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법궤를 가져갔다가 혼 줄이 납니다. 하나님이 주셨을 때만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은 가지고 있으면 화만 불러옵니다.

여리고 성의 것은 가나안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얻은 첫 결실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그것을 나에게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아이성의 것은 달랐습니다.
“…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수 8:2) 첫 번째 여리고 은금 동철은 하나님께 드리고(수 6:19), 성의 소와 양과 나귀는 죽이라고 했습니다(수 6:20). 그런데 아이성의 것은 다 가지라는 것입니다. 아이성 뿐만이 아닙니다. 앞으로 점령하게 될 모든 성은 아이성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다 주시는 것입니다. 다 차지하게 하시기 위해서 이 땅으로 인도하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못 참고 욕심을 내었던 것입니다. 기다리세요. 결국 우리에게 다 주십니다. 미리 하나님의 것을 탈취하지 마세요.

사람의 말을 의지했습니다.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수 7:3)
여호수아는 아이성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정탐한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정탐꾼들이 돌아와 보고하고 그들은 상대를 우습게 생각했습니다. 아이성이 작으니까 한 3천명만 보내도 넉넉히 이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얼마 전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을 본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는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매일 매일(6일 동안) 돌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 성이 크고 두려우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성은 자기들끼리 쳐서 이길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를 않습니다. 언약궤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앞세우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하나님께 먼저 기도했다면 아간의 일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의지했습니다.
우리의 가치관을 사람에게 두면 안됩니다. 부자에게 의지하면 안됩니다. 지식에 학벌에 의지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아루 아파트에 1억이 넘는 차가 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거 모릅니다. 1억 짜리인지 예지아빠가 알려줬습니다.
여러분! 큰 것, 비싼 것 만 좋아하지 마세요. 사람에게는 자기에게 맞는 것이 있습니다. 신발이 맞아야 합니다. 옷도 맞아야 합니다. 여러분 맞지 않으면 큰 신발 신고 다닐 수 있습니까?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의지하세요. 그것이 성도에게 맞는 것입니다.

전심 전력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의 정탐꾼들은 3천명만 보내면 된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먼저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수 8:3) 라고 했습니다. 있는 군사가 놀면 뭐합니까? 힘을 보태야 합니다.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 3만 명을 보내라고 합니까? 사람은 3천명만 있으면 된다는데 하나님은 3만 명을 보내라고 합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은 사람의 힘에 의지한다고 숫자에 의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유일하게 오히려 하나님이 사람을 더 많이 보내십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적게 보낸 것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교만이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아직 부족하다 늘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이만하면 되었다 그런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가야 됩니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나태함입니다. 저만큼 믿음생활하면 되었다 하는 것이 없습니다. 20번 넘게 성경 쓰신 분이 있습니다. 계속 씁니다. 시험은이요 머무는데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개인으로서는 다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나태하게 정치하고 살면 대통령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망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외국에 많이 나갔는데 외국에 가서 가능하면 밤에 잠을 안자고 한국으로 얼른 돌아온답니다. 수행원들이 많아 하루 밤 더 자면 호텔비용이 많이 나와서 비행기에서 자면 되지 하고 돌아온답니다. 두바이 왕자들은 하룻밤에 몇 천 만원 하는데서 자고 비행기도 천 만 원씩 되는 것 타고 다니지만 우리 대통령은 호텔비가 아까워서 호텔에서 안자고 돌아옵니다. 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도 가도 갈곳이 있습니다. 교만하면 안됩니다. 허리를 동여야 됩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도울 곳이 많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삼상 7:3)고 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세상과 친구가 되지 마시고, 하나님과 친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전략이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는 3천명을 아무 전략 없이 그냥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전략을 보십시오. 10배를 더 보내시고도 전략을 수립합니다. 숫자적으로만 우세하다고 그것만 믿으면 안됩니다.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너희 손에 주시리라”(수 8:7)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으로 패한 척하여 광야 길로 도망하매” 유인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9절 “그의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들의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으로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협공, 철저하게 준비된 전략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여리고 성처럼 단번에 무너뜨리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왜 이처럼 수고로운 방법을 일러주셨을까 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만 만나를 먹었습니다.
가나안땅에 들어와서는 만나가 끊어 졌습니다. 가나안땅에 토산품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 하라는 것입니다. 전쟁에서이기는 법을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도저히 우리의 힘이 한계가 있을 때 도우십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사람은 돕지 않습니다.

본문 18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그 성읍을 가리키니”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르키십시요. 우리의 전략을 통해 가리키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재능을 활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도 단창이 있습니다.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인기 여 그룹이 있습니다. 이 그룹은 시집가면 끝납니다. ‘소녀시대’입니다. 요즘 일본에서도 아이튠즈(iTunes) 뮤직비디오 차트 1위를 비롯해 일본 최대 음악 사이트 및 각종 음악 포털에서도 인기 최고입니다. 한국 욘사마만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소녀시대가 휩쓸고 있습니다.
이 그룹이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것은 일단 머리 수(멤버)가 많습니다(9명). 윤아, 수영(170), 효연, 윤아-유리(코수술만 함 167), 태연, 정수연-제시카, 태연-티파니(162), 이순규-써니(158), 서현(자연미인 168) 많다보니까 이중에 한 명만 좋아해도 인기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철저한 준비와 연습입니다. 대충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수준으로 철저히 준비합니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키가 큰 수영이와 유리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키가 제일 작은 써니(158)도 인기가 많답니다. 초등학생들이 제일 좋아한답니다.

유대인의 격언에 인정받지 못하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담보 없이 돈 빌려주는 사람, 공처가, 그리고 도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가 선교하면서 제일 많은 받는 이야기 중에 성령으로 하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입니다. 압니다. 성령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략, 노력이 필요합니다. 집중이 필요합니다.
단창(키돈)은 긴 창이나 방패가 아닙니다. 사실 그렇게 훌륭한 무기는 아닙니다. 창도 창이지만 정신력입니다.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리스 스파르타군사 훈련에서 한 병사가 부러진 짧은 칼을 가지고 연습했습니다. 칼이 작으니 불리합니다. 그래서 대장에게 가서 부러지지 않은 온전한 칼로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대장이 말하기를 ‘부러진 칼이기 때문에 남보다 한발 앞서 적을 찌르도록 연습하라’고 하고 그냥 돌려보냅니다. 단창이 문제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력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단창입니다. 뭐 그렇게 많은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큰 교회도 아니도, 물질도 부족합니다. 단창입니다. 그러나 단창을 들어 세상을 가리키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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