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변화

도스토예프스키는 16세 때 자신의 아버지가 농노들로부터 살해되는 것을 보았다.그는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사형수들을 싣고 가는 열차가 간이역에 멈췄을 때 그는 어느 부인으로부터 작은 책 한 권을 받았다.그것은 신약성경이었다.

사형을 기다리면서 그는 감옥에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작은 성경책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를 만났다.도스토예프스키는 “누가 내게 ‘그리스도는 진리가 아니다’라고 증명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다.나는 진리보다도 차라리 예수와 함께 있고 싶다”는 신앙고백을 했다.그는 사형 직전 기적적으로 사면돼 고향으로 돌아온 후 세계 최대의 문학가가 되었다.성경은 인간을 변화시킨다.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영혼의 눈을 뜨게 될 때 기적은 일어난다.

영웅, 신격화와 성경의 진실

흔히 나라를 세운 사람을 건국의 아버지라고 하여 영웅시합니다. 영웅도 모자라 신격화시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조선의 첫 왕인 단군을 신격화 시켜 신으로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를 세운 사람은 밀양 박씨의 조상이 되는 박혁거세입니다. 박혁거세 역시 그를 신격화하기 위하여 그의 출생을 신비스럽게 미화시켰습니다. 하늘에서 백마가 내려와서 박 만한 큰 알 하나를 두고 갔는데 그 알에서 깨어난 인물이 신라의 첫 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박처럼 큰 알에서 나왔다 하여 성은 “박”이라 하였고, 이름은 나라를 밝게 비추어 준다고 하여 ‘불구내’라고 하였습니다. 이름을 ‘혁거세’로 고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혁’은 빛난다는 뜻이며, ‘거세’는 세상에 있다는 뜻입니다. 혁거세는 13살이 되던 기원전 57년에 왕으로 봉해졌다고 합니다. 

사울 왕이 기원전 1100년 전 사람이고 보니 신화적인 인물로 소개할 만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은 미화시키거나 신격화시키는 것은커녕 있는 모습 그대로 소박한 면을 가감 없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의 잘못된 행실에 대해서 숨김없이 소개해 줌으로 인해서 후세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과 구절이 짝이 있다고 오해한 본문

* 우리가 성경의 모든 내용과 구절이 짝이 있다는 것으로 본문을 오해한 부분입니다.
본문은 에돔과 열국이 멸망당하게 될 것을 예언한 부분에서 그 땅이 황패하여져서 새들이 깃들게 될 것이라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진멸하시기로 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사 34:15) 
“부엉이가 거기에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각각 제 짝과 함께 거기에 모이리라”(사 34:15)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사 34:16) 

“이것들 가운데서”는 새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문에 “제 짝”에 해당하는 단어는 친구를 뜻하는 레우트(tW[r])입니다. 15절과 16절이 같은 단어입니다. 그리고 15절의 본문의 중심은 동사 ‘모으다’, 카바쯔($b’q;)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새들은 다 제 친구 짝이 있고 모은다는 말입니다. 
이 본문을 마치 모든 성경의 본문들이 짝이 있다는 것으로 오해하여 해석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저도 몰랐을 때는 그렇게 배웠고 그런 줄 알았습니다.
성경에 짝이라는 단어는 본문 위에 “문 짝”(겔 41:24, 잠 26:14)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말 2:14)라고 나옵니다. 제가 이것까지 이야기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국어 왜 배웠습니까? 이 정도의 문법은 중학교만 나왔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인데 이상하게 성경은 마음대로 봅니다. 제일 신경 써서 봐야될 책이 성경입니다.

구약성경 연대기 분류표

한눈에 보는 신약성경(분류표)

성경에 나타난 여러 직종들

연대순 성경 읽기표

연대순 성경 읽기표

구 약
먼저 구약을 말씀 드릴께요.
구약을 연대순으로 읽습니다. 구약 성경을 연대기 순으로 읽는 순서를 정리하였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서 열왕기 상서까지는 그대로 읽으면 됩니다.
열왕기 하서 13장까지 읽으신 후에 요나서를 읽습니다. 요나가 그 때에 니느웨를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상으로는 얼른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세하게 보고 연구하면 거의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다시 열왕기 상서 13장부터 14장까지 읽으시고 아모스서 호세아 요엘서를 읽어야합니다.(요엘서는 불분명합니다)
그 때는 북 왕국 여로보암 2세 때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열왕기 하서 15장부터 16장까지 읽으시고,
그 다음에 읽을 수 있는 책은 이사야서, 미가서, 나훔서, 오바댜서를 읽어야 합니다.(나훔서 오바다서 역시 연대가 불분명합니다).
다시 열왕기 하서 17장부터 23장까지 읽으시고, 하박국서 스바냐서 예레미야서를 읽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열왕기 하서 24장으로 돌아와 25장까지 읽으신 후에, 예레미야 애가를 읽으시면 구약의 한 부분이 일단락 됩니다.
그 다음은 다니엘서와 에스겔서를 읽으시고, 에스라서를 읽어야 합니다. 이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이야기가 됩니다.
에스라서 4장까지 읽으신 후에 학개서와 스가랴서를 읽어야 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에스라서 5장부터 6장까지 읽으신 후에 에스더서를 읽고, 역대상 하서를 읽으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 에스라서 7장부터 느헤미야서까지 읽으시고, 다음은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읽으시고,
마지막으로 말라기서를 읽으시면 대체로 연대기 순으로 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나서는 신구약 중간사를 읽으시고,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신약 성경을 읽고 이해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신 약
다음으로 신약입니다.
신약 성경을 바르게 읽기 위하여 복음서는 지금의 배열된 순서대로 읽어도 무난하지만,
사도행전과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들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기록하게 되었는지를 알고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순서만 안다고 다 이해 되는 것은 아니고 사도행전 12장까지는 그냥 읽어도 되지만,
13장부터는 바나바와 바울의 제 1차 전도 여행이 나오기 때문에, 반드시 지도를 펴 놓고 그 행로를 짚어 가면서 읽어야 합니다.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 와서, 바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됩니다. 주님을 믿은 후 두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그 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안디옥 교회의 할례 문제와, 바울에 대한, 사도적인 권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어떤 사람들 때문에
사도들과 장로들이 일치 가결된 결론을 얻어 가지고, 다시 안디옥으로 와서 제 2차 전도 여행에 오르게 됩니다.
제 2차 전도 여행에서 주목할 사실은, 일생을 동역하게 될 사람들을 만난 일들입니다.
바울이 만난 사람들을 대략 정리하면,
랍비 가말리엘, 스테반 집사, 아나니아, 바나바, 베드로, 요한, 야고보, 마가, 실루아노, 디모데, 누가, 디도, 루디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오네시보로, 두기고, 아볼로 등의 인물들과 교제하면서 동역하였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편지를 쓰게 된 것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학자들의 견해는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체류하면서 데살로니가에 전서와 후서를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11절까지 읽은 후에, 살전, 살후, 갈라디아서 등을 읽을 수 있다.
그 다음에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왔지만, 거기 아굴라 부부를 남기고
자신은 안디옥으로 돌아왔다가 제 3차 전도 여행을 출발했습니다.
제 3차 전도 여행은 이미 개척된 갈라디아 교회들의 형편을 살피면서 서쪽으로 나아가 에베소에서 약 3년 정도 체류하게 되는데,
바울의 사역을 자세하게 살펴 보면 처음에는 복음을 전파하는 정도의 사역을 했지만, 선포하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점점 가르치는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갈수록 사역 기간이 길어지는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 사역기간 동안에, 바울은 고린도 전서와 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9장 20절까지 읽은 후에,
고린도 전서, 그리고 후서를 읽어야 합니다.그리고 바울은 에베소 사역을 마치고는 마게도니아를 거쳐서 다시 고린도에 와서,
3개월간 체류하면서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행전 20장 3절까지 읽은 후에 로마서를 읽어보고,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이었던 뵈뵈라는 자매에,게 들려서 로마로 보내고,
다시 바울이 마케도니아로 올라가서, 마침내 아시아의 관문이었던 드로아에서 한 주간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여 가르치고는,,
밀레토스에 와서 에베소 지방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작별하고 그 길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환영은 고사하고 체포되어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바울은 가이사랴 감옥에 약 2년 동안 체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누가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만나고, 그 외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누가 복음서를 쓸 자료를 철저하게 수집하였고,
마침내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이용하여 가이사의 재판을 받겠다고 주장함으로써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로마로 가는 길도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항해 도중에 있었던 고난들이 바울의 사역을 돕게 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감옥으로 보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셋집에 2년간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짐작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바울의 호송을 맡았던 백부장 율리유스의 배려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결수라도 일단 구치소나 감옥으로 보내지는 것이 상식인데,
바울은 감옥이 아니라 자신의 셋집에 머물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었습니다.(행28장 3절)
이때 기록한 서신들이 그 유명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그리고 빌립보서 등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를 가리켜 옥중서신이라고들 하지만, 감옥은 아니고 가택연금상태에서 편지를 쓴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연이어 4년 이상을 옥살이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2년, 로마에서 2년, 로마로 오는 길에서 약 6개월,
이렇게 되면 약 4년 반 내지 5년이라는 기간동안 활동이 제한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무죄로 석방되었습니다.
바울이 처음에는 로마를 본 후에는 스페인까지 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에서 머물고 있는 동안,
세상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크고 넓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스페인이 아니라
오히려 에베소· 골로새 그리고 마게도니아의 아가야 지방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미 개척해 놓은 교회들을 굳게 세우는 것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바울은 그레데로 왔고, 거기에 디도를 떨어뜨려 두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일행과 함께 에베소에 왔습니다.
에베소는 이미 아시아의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번 여행이 마지막 여행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베소에 와서는 디모데를 거기 머물게 하고, 자신은 골로새, 히에라볼리스 그리고 드로아를 거쳐서 마게도니아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마게도니아 교회들과 그 외 여러 교회들을 만나, 이런 저런 시험과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어,
각 지방 각 교회마다 교회를 다스릴 장로들과 집사들을 세우면서, 교회를 조직화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는데, 이 편지가 디모데전서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레데에 있는 디도에게도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후에 바울은 디모데를 제외한 모든 동역자들을 니고볼리로 모이게 했고, 거기서 회동하면서 큰 집회를 시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후의 바울은 다시 체포되어 로마에 두 번째로 투옥되었습니다.
그 때에 쓴 편지가 디모데 후서입니다. 이 디모데 후서는 바울의 유언과 같은 서신입니다.
그 후에 바울은 네로 황제에 의하여 참수되었는데,
그 때는 주후 67년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울서신을 다 읽은 후에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 일,이,삼서 유다서 , 그리고 요한 계시록을 읽으면 됩니다.


* 출처미상 퍼온 글입니다.

101일 성경 일독표

성경은 어떤 책인가?(권별 강해 서론)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말한 페트릭 헨리 아시지요?
영국의 식민지인 아메리카가 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기 1년 2개월여 전인 1775년 4월 23일 패트릭 헨리가 버지니아 식민지 의회에서 연설한 것입니다(당시 헨리는 39세의 변호사). 영국은 식민지 주민들의 불만을 무력으로 다스리려 하였고, 견디다 못한 식민지는 마침내 혁명을 꿈꾸게 됩니다. 이 혁명의 폭탄에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패트릭 헨리의 이 연설입니다. 바로 패트릭 헨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경은 지구상에 출판된 모든 책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구글이 전자 책으로 만든 천만권의 책을 보지 않았어도, 아마존의 그 방대한 책을 보지 않았지만, 애플의 아이패드용 e-book을 보지 않았지만 성경은 보시기를 바랍니다. 패트릭 헨리의 말을 바꾸어 말하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보아도 성경책을 보지 않았다면 책을 보지 않은 것이라는 겁니다.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