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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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palabras de Xesús(16. 한 마리의 양) / Texto : Mateo 18:12-14
“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한 마리의 양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다른 많은 양이 있다고 해서 한 마리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나와는 다른 것입니다. 내가 있어야 됩니다. 내가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다른 사람이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소중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시오. 심지어는 단점까지도 인정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초라하게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배용준과 닮았으면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남자 분들은 별로 그런 생각 안 하는데 여자들은 많이 하나 봅니다.
해외 갈 때마다 입국심사 대에 서게됩니다. 별 것 아닌데도 약간은 긴장이 됩니다. 천국에도 이런 입국심사대가 있는데 유난히 시간이 걸리는 줄이 생기더랍니다. 가만히 보니까 특히 한국 여자들이 길게 서 있더랍니다. 왜 길게 서있나 보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원본하고 달라서 대조하느라고 시간이 걸린답니다.
우리는 다른 누구와 비교하기 위해서 창조된 사람이 아닙니다. 항상 누군가를 모방만 하고 흉내내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만 비참해질 뿐입니다. 또한 자신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제인간의 집단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창조성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양성을 좋아하십니다. 제가 늘 주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다양성입니다. 누가 큰 교회에서 지성 전을 자꾸만 짓는데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봅니다. 제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저는 다양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획일적인 모습으로 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생태계가 얼마나 건전하냐는 시내로 비유를 들자면 얼마나 다양한 물고기가 살고있느냐로 그 생태계가 얼마나 좋은 상황인지 나쁜 상황인지 평가하는 것입니다.
남을 모방하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창조의 모습을 찾는데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소중한 조언을 듣지 말고 고집을 부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자아도취에 빠져 자신만이 제일인줄 아는 안하무인에 빠지라는 뜻도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잣대로 획일적인 평가는 부분적으로는 필요하고 옳은 것인지는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들이 만든 잣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내가 만든 상자에 넣고 평가하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은 내 스타일로 억지로 꿰어 맞추려고 하면 안됩니다. 많은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기분 좋게 출근했는데 직장 동료가 좋은 새 차를 몰고 오는 것을 보고 기분이 확 잡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갑자기 힘이 빠집니다. “나는 뭔가?” 자기 재능이나 능력, 교육 수준을 남과 비교하는 것은 자기 배우자를 남과 비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보실 때도 비슷합니다. 다른 목사님들과 비교해서 우리 목사님은 목소리가 쉰 음성으로 기도해서 거룩하게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기도도 안 하시나 봐!”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제가 제일 웃기 다고 생각하는 것은 목사님들 중에 다른 분 목소리 따라하려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주신 이 어눌한 목소리 얼마나 창조적입니까? 제 발음이 시원치 않아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답니다. 만일 사람의 목소리가 다 같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르기 때문에 소리로만 듣고도 누군지 알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개성을 주셨습니다.
우리 나라의 교육열은 대단합니다. 아마 세계의 어떤 엄마들 보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교육열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가지는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 아이를 누구와 똑같이 키우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저 다른 사람이 하니까 따라서 우리 아이도 해야 된다는 식의 교육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경주를 하며 독특한 존재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소명을 주셨습니다. 누구를 따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14-20 “14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 뿐이면 몸은 어디뇨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태국 갈 때 타이항공을 타고 갔습니다. 비행기에서 음료수 가져다주잖아요. 그 때 무엇을 먹을 것인지를 물어봅니다. 그래서 제가 “물 주세요.”그래 보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저를 처다 보는 것 같았고 태국 여 승무원은 약간 당황해 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의도적으로 “물 주세요.”를 다시 했습니다. Vostede!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의 여 승무원은 간단한 한국말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알아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국을 안 하니까 승무원들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한국 사람이 한국말 하는 게 창피한 것입니까? 한국 사람이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말 다 잊어버리고 영어만 하면 자기 자신은 잃어버리기 때문에 이것은 실패입니다. 앞으로 비행기 타시면 자신 있게 한번 해 보세요. “물 주세요.”
이제 한국인의 의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금번에 역사적인 인물을 많이 만났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최찬영 선교사입니다. 이 분은 인도차이나 지역의 최초의 한국 선교사입니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계시며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중국에서 성경을 찍어서 보급하는 일을 하십니다. 일년에 천만 권이 넘는 성경을 찍어 중국 전역에 보급한답니다. 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미국 시민권을 가지시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베트남에 가셨을 때 한국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빨리 들어가더랍니다. 그래서 자기도 그 쪽 줄에 서서 들어가려고 하니까 여권을 보더니 저 쪽으로 사라고 하더랍니다. 여기는 한국여권이니까 빨리 들어가는 것이고 당신은 미국여권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랍니다.
우리는 최고의 엄마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되시기 바랍니다. 저도 최고의 목사는 아닌지 모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목사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때 남과 비교해서 평가하시면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를 선택하실 때 “여호수아야 네가 모세와 똑같이 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15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Casar 1:15-16)Descubriu que.
최고의 칭찬을 하십시오.
자녀에게 이렇게 말해 보세요.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이 절대로 못한단다.” 그래요 안 그래요. 반드시 그렇습니다. 저는 피카소가 그린 그림보다는 예지가 그린 그림이 더 마음에 들더라구요.
이번에 제가 인도차이나 대회에 가서 무슨 이야기하고 다녔겠습니까? “미션 매거진”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태국 촌부리에서 사역하는 김정웅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지역별로 선임선교사님을 자문위원으로 하려고 하는데 김정웅 선교사님에게 자문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몇 일을 이야기 하니까 선교사님이 웃으시면서 아무 말도 못하시더라구요. 캄보디아에서 오신 정병대 선교사님은 목사님에게 여기 오면서 지금까지 이 이야기만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시간이 없어서 못 뵌 강승삼 목사님은 식당에서 차에서 완전히 넉 다운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진경 목사님이 헤어지면서 저에게 별도로 하신 말씀은 “아까 그거 말한 것 한 번 잘해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얼마나 힘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숭실대 이사장님으로 계시는 이원설 박사님도 서울에 비서실에 연락해서 도울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콕의 이정익 장로님(전 전주대 총장)도 흔쾌히 허락하시고 또 미국에서 케냐로 들어가는 동아프리카 최초의 선교사 임종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이분은 금년에 연세대에서 주는 언더우드선교상을 시상한 부부입니다. 어분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태국 행사장에서 비행장으로 가는 동안 완전히 녹였습니다. 그래서 가실 때 “제 이름이 필요하시면 목사님 필요한 곳에 사용하세요.”하고 가셨습니다.
다른 교회들은 그분들의 방법으로 전도하며 선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방법으로 전도하고 선교하고 교회를 부흥시켜야 합니다. 어떤 교회를 따라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방법이 있습니다.
주님이 오늘 본문에서 왜 그렇게 우리를 찾습니까? 그저 우리가 많은 것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귀한 존재이기에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주십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당당할 권리가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