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말씀(46.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본문 : 마가복음 9:14-29

“21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 기도하시고 변화된 모습이 보였을 때, 산 아래에서는 제자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남아있는 제자들 앞에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려고 제자들은 그 동안 사용했던 여러 방법을 사용해 가며 고쳐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똑 같았습니다. 고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는 똑똑한 서기관들이 질문 공세를 퍼붓습니다. 난감해 하고 있을 그 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예수님께 달려갔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려고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 남아있던 백성들이 한 행동이 출애굽기 32장 나옵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아론이 주동자가 되어서 자신들을 위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듭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백성의 이와 같은 행동을 보고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십계명을 던져 깨뜨렸습니다. 모세의 인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 행동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래도 구약의 이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병은 고치지 못했지만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하려고 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포기한 사람입니다. 지금 공부를 못하지만 공부를 하려고 하는 학생은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비록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아이의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이 개입하시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처음부터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고 있으면 주님이 도와줄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되십시오.
본문 19절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말하기를 22절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그랬습니다. 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믿음은 모든 것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열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하늘 문을 열면 그곳에 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면 다 되는 것입니다. 그 열쇠가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는 고백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것을 알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고 너는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재자들의 믿음이 없는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에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 16:14) 여기서는 믿음이 없는 것과 완악한 것이 함께 나타납니다. 바꾸어 말하면 완악한 자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온유한 마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온유함은 믿음을 얻는 좋은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의심합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예수님을 확인했습니다(요 20:27). 믿음이 없다는 것, 마음이 완악한 증거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믿음 안에 거하십시오.
영어에 인과 아웃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인은 모든 게임에서 사는 것이고 아웃은 죽은 것입니다. 원문에 영어에서 말하는 인과 같은 단어가 있습니다. 엔(ejn)이라는 전치사 단어입니다. 이 뜻은 “…안에.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나오는 모든 곳은 좋은 성구가 있습니다. 믿음과 연결된 단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몇 개의 성구만 찾아보겠습니다.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딤전 1: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모든 믿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엔(ejn), 안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만 생명이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만 소망도 사랑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간곡히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22절), 이 아버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소리를 지르며 “…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믿음을 달라고 간구 할 생각은 안하고 시험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아버지의 태도는 적극적이었습니다. “소리질러”(kravxa”:크라크사스)는 마치 반항의 고함처럼 크고도 계속적으로 소리를 지른 것을 말합니다. 후기의 사본 중에는 ‘눈물로’라는 말이 첨가된 것이 있습니다. 이 아버지는 간절했습니다. 아마 이 아이의 문제로 가정이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이 아버지의 소원이라면 아들이 이 귀신들림에서 벗어나는 것일 겁니다.
이 때 적극적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까? 아니면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입니까? 믿음을 간구한 것도 귀신들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이 아버지가 제일 이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서 제일 간절한 사람입니다. 부모님 되시는 분들은 특히 명심해야 합니다. 나의 자녀를 위해서 부르짖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아버지와 같이 주님께 간구하세요.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기도 외에는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려다 땀만 흘린 제자들은 조용할 때 예수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님의 대답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28절)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준 일이 있습니다. 지금 이 아이가 처음이 아닙니다. 막 3:14-15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여행으로 파송하시면서 이미 병 고칠 수 있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잘 되던 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당황한 것입니다. 은사는 지속적으로 기도함으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믿음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부흥한 비결에 대해서 말할 때 새벽기도와 무릎꿇고 기도한데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기도가 식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할 일 중에 제일 귀한 것 중의 하나가 기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리석은 사람, 약한 사람, 멸시받는 사람 등, ‘부정적 자질의 사람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모세가 부름을 받았을 때는 80세의 늙은 목자였습니다. 다윗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양치는 어린 소년이었고, 요셉은 노예였으며, 다니엘은 포로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중요한 인물들을 부르실 때는 부정적인 측면까지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앙교회 결코 적은 수가 아닙니다. 그리고 결코 못할 일도 없습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성장시켜주는 기도입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갑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에 화재의 불길로부터 구조되었던 경험을 회상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급격히 세속화되어 가는 영국 교회에 ‘개혁’이라는 소명을 위해 주께서 자기를 살리신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산본지역 뿐만이 아니라 선교지의 한 나라들에 대한 비전이 있습니다. 가슴이 불타오르는 믿음과 열정적인 기도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요일 5: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무디(D.L. Moody)는 “믿음은 최대의 것을 얻게 하며, 사랑은 최대의 역사를 이루게 하고, 겸손은 가장 많은 것을 보존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웁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공산주의는 사람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서로 감시하고 고자질합니다. 이런 사회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마세요.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잘 살 수 있습니다. 결코 우리의 시간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간은 가치가 있습니다. 보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상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나 자신 뿐만이 아니라 교회가 가정이 세워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다시 기도할 것은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겸손히 주님께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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