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을 제거하라

예수님의 말씀(30. 비만을 제거하라) / 본문 : 마태복음 13:13-17

“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덕담을 해 주기도 겁이 납니다. 혹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을 듣지나 않을까 해서입니다. 요즘 화두 중의 하나가 ‘너나 잘하세요’인 것 같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에서 방금 죄수복을 벗고 감옥을 나서는 그녀는 다시 죄짓지 말라며 두부를 주는 성직자에게 ‘너나 잘 하세요’라는 회심의 말을 던집니다.
겉으로 보기엔 깨끗한 척하지만 하루만 몰래카메라로 찍어본다면 이기적 동기와 위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투의 말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향한 냉소(冷笑)적인 말입니다.
이러한 냉소주의는 이미 대화 중에서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잘못한 사람에게 충고라도 하려고 하면,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로 맞대응을 해 버립니다.
벌써 이 유행어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됐거든’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권면하려고 해도 이 한 마디로 너도 똑같다는 식으로, 말한 사람을 오히려 무한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렇게 대화 속에 드러나고 있는 냉소주의는 사회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내가 잘해야 합니다. 이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누구나 인정하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 자신을 다시 돌이켜보면 역으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나보나 낫게 여기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 누구도 돌로 칠 수 없듯이 말입니다. 나 자신의 부족함이 많음을 인정하고 서로 배우려는 자세가 있을 때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은 사라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도 ‘너나 잘하세요’, 또는 ‘됐거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분명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납니까? 본문 15절에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그렇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완악해 지면 앞 뒤 분간이 안됩니다. 원문의 ‘완악하다’(파퀴노:pacuvnw)는 ‘살이 찌다, 비만’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상징적으로는 ‘굳게 하다, 마취시키다’의 뜻이 있습니다. 육체적 비만도 문제이지만 영적 비만이 더 문제입니다.
우리 나라 비만인은 체지방 률이 높은(남자 20%이상, 여자 30%이상) 전국민의 약 20%정도이며 이중에 약 10%(200만 명)정도는 치료를 받아야하는 고도비만 환자에 해당한답니다.
만약 우리 나라의 영적 비만인을 가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될까요? 분명한 것은 육체적 비만인구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육체적 비만은 당뇨를 비롯해 관절염 등의 각종 성인병의 주범으로 나타나 우리의 육체를 병들게 하고, 영적 비만은 육체적 비만의 문제를 뛰어넘어 영원한 사망의 주범이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신 31:20)라고 노래로 가르치면서 사역을 마감했습니다.

‘완악(파퀴노:비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마음의 비만을 제거하면 우리의 병은 고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육체적 비만을 통해서 영적 비만의 원인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저는 육체적 문제가 영적 문제와 흡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를 알려주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비만의 발생원인은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식사습관 및 운동부족 등이 상호 작용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하지만 의학적으로는 그 발생원인이 확실히 규명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집사람이 주은이 아빠(외과의사) 앞에서 자꾸 의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하게되네요. 혹 잘못된 것 있으면 나중에 짚어주세요.

1. 유전

부모가 모두 비만이면 그 자녀가 살이 찔 가능성은 70%정도이고, 부모 중 한 사람이 비만일 경우는 40%정도이며, 부모가 모두 비만이 아닌 경우에는 약 10%정도랍니다. 즉, 비만은 유전인자에 의해 크게 좌우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외에도 부모의 식습관 및 생활습관에 영향을 받아 비만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정확한 통계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신앙 역시 부모의 영향하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위의 경우를 역으로 적용하면 부모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영향을 받을 확률은 70%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교회에 다닐 경우는 40%정도 다닐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신 4:10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녀에게 전달되고 있음을 말하십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고도 하셨습니다.
부모가 비만하면 자식이 비만해 집니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만 잘 살다 가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부모님들 가운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진정 자녀를 생각하신다면 그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이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나의 생활에 따라 자녀의 운명도 결정된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2. 불규칙한 식사(과식, 간식, 야식)

규칙적으로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우리 몸은 불규칙한 식사에 대비하기 위해 한번 음식이 들어 왔을 때 영양소의 흡수를 높일 뿐만 아니라 여분의 에너지를 지방으로 더 많이 저장하려는 경향이 커져서 체지방이 자연히 증가하게 된답니다. 간단히 생각하면 비만의 원인은 섭취에너지가 소비에너지보다 높아서 생기는 것이 과식입니다. 음식을 먹으면 우리 몸에는 약 2시간 동안 인슐린이 분비되는데, 그 동안에는 지방분해가 정지되고 지방축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세끼의 식사와 더불어 그 사이 사이에 먹는 간식들은 하루 종일 인슐린을 분비시켜 지방분해의 기회를 주지 않아서 체내에 지방이 축적되게 된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가 있는데 야식입니다. 야식증후군이란 하루 섭취량의 절반 이상을 밤에 먹는 식사방식으로 뚱뚱해지기 쉬운 식사법입니다. 일반적으로도 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잠자기 3시간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다이어트에 있어서 야식은 가장 큰 적입니다. 밤에 먹으면 인체의 자율신경 중 부교감신경의 작용이 활발해져 신체활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잘 공급되도록 해주는 교감신경의 작용을 억제하면서 에너지를 축적하는 작용을 하게 되어 체지방이 축적되기 쉽습니다. 이렇게 굳이 어렵게 말하지 않더라도 활동이 많은 낮보다는 활동이 적은 밤에 먹은 음식은 사용이 되지 못하니 더 쉽게 체내 지방으로 저장되는 것입니다.

육체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절한 음식이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가 너무 먹어서 걱정을 하지만 70년도 전만 해도 우리가 먹는 문제 때문에 비만을 고민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참 행복한 고민을 하는 시대에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먹어야할 지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식이 과잉(과식)상태라는데 있습니다. 옛날에 비해서 우리는 무엇인가 더 많이 알아야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찬 상태가 아니라 세상의 지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필요한 지식이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식이 비만의 원인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편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분명 영적 교만, 과식입니다.
1912년 E.J 스미스 선장이 타이타닉호의 출항을 앞두고 “타이타닉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하나님도 이 배는 침몰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배는 얼마 가지 못해 침몰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지식을 의지하는 것은 바보 같은 것입니다.
시편에서 두 가지 경우를 모두 소개하고 있습니다. 비만인 자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시 73:11)라고 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자는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시 139:6)라고 합니다. 잠언서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라고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흡수해야할 영양분은 우리의 주식이 밥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3. 운동부족

먹기만 하고 운동을 안 하면 소비에너지에서 기초대사에너지, 식이동적대사에너지, 활동대사에너지 중 활동대사에너지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근육의 감소로 기초대사에너지도 함께 줄어 전체적인 소비에너지가 감소할 수밖에 없어 쉽게 살이 찌개 됩니다.

영적으로도 먹기만 하고 운동을 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비만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알고 있는 것에서 마치면 그야말로 비만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잖아요. 신앙생활 잘하는 방법이 있다구요.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구요. 신약성경부분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씀을 따라서 명령형만 지키면 되는 것이라구요. 그런데 명령형을 지키지 위해서는 아는 것으로 안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있어야 됩니다. 말씀을 듣는 다는 것도, 귀로 듣고 행동을 옮기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상당히 조심스럽지만 유럽교회가 오늘날처럼 뜨겁지 못한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그래서 쇠퇴한 것은 운동부족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한국교회, 우리 주앙교회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운동하지 않으면 비만이 되는 것입니다.
컴퓨터에 스크린세이버라는 것이 있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나타나도록 설정된 화면이 나옵니다. 이 화면은 아름다운 그림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일은 하지 않으면서 그럴듯한 그림만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지 않고 그럴듯한 모습만 보인다면 이 스크린세이버처럼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통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통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구테타를 일으키면 별 하나가 별 넷을 잡아 가둡니다. 죄인이 의인을 죽입니다. 이것이 십자가형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에서는 십자가형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질서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미 어떻게 운동해야 하는지 주님은 우리들에게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만 이야기할까요. 하나님은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출 22:22) 고하셨습니다. 야고보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따라 삽시다. 해 봅시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운동을 하십시다.

조용히 기도하고 나온 테레사 수녀에게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무슨 기도를 하셨습니까?” 테레사 수녀는 빙그레 웃으며 “그냥 듣지요.”라고 했습니다. 짓궂은 질문자는 “그래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는데요?”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하나님도 들으신답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본문 16절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비만을 걷어내고 함께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어봅시다. 스바댜 3장 17절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천천히 함께 읽어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가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는 듣기만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우리 때문에 노래를 부르십니다. 우리에게 들려주시려고 노래를 부르십니다. 노래하시기 전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비만을 걷어내고 하나님이 불러 주시는 노래 소리를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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