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은 누구 신가?(47.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 마12:1-8

“1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8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마 12:1-8)

제가 이스라엘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안식일 날(안식일은 금요일 오후 해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 해질 때까지이다) 옆집에 사는 유대인이 달려와서 가스 불을 아이가 켰는지, 켜져서 그것을 끄지 못하고 빨리 와서 그 가스 불을 꺼달라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유대인 집에 가봤더니 잘못하면 불이 날 뻔할 정도로 가스 불이 타고있어 그것을 꺼준 일이 있다고 합니다. 불을 끄지 못하는 것은 안식일 금지법 37번째에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 교수들은 안식일에 사인을 안 합니다. 안식일 금지법 32번을 어기는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 때 39가지 구체적인 안식일 금지법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유대인 속에서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배고팠던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그런데 밀 이삭을 잘라먹었던 것은 “시장하여” 먹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비록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안식일에 밀 이삭을 먹으면 안 되는 것쯤은 알고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이라면 누구든지 아는 일입니다.
제자들이라고 해서 안식일 금지법을 몰랐겠습니까? 충분히 알고 있는 사항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안식일을 어기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본문은 분명히 “시장하여”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밀 이삭을 잘라먹었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익히지 않은 밀만을 먹은 적은 없지만 밀가루를 어려서 먹어본 일은 있습니다. 익히지 않은 밀이 맛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허기진 배를 달래려고 먹었던 것입니다. 한국속담에 “배고픈데 장사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시 중, 상류층에 속해있었던 바리새인들은 배고픔을 잘 몰랐을 것입니다.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야하는 제자들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밀을 잘라먹었겠습니까? 흔히 배고프면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말합니다.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북한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너무 배가 고파서 밖을 보니 돼지가 지나가고 있어 그것을 잡아먹었는데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 자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2절에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이 자리에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고픔을 모른 척 하고 계셨을까요?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먹는 문제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이 밀 이삭을, 그것도 안식일 날 따먹는 것을 보고만 계셨습니다. 제자들만 배고픈 것은 아닙니다. 육체를 입고오신 예수님도 제자들과 똑같이 배가 고프셨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예수를 믿는데 예수님은 아무 것도 나의 일을 도와주지 않는 것 같은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들의 배고픔을 내버려두었습니까? 인간의 죄 때문에 내려오는 문제는 제자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이 받아야 하는 어려움 우리도 받습니다. 때로는 예수 믿는 사람만 예외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 모두 똑같이 태양 빛을 주십니다. 혹 기도한다고 너무 특별한 무슨 은사나 있는 것 같이 말하는 분들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제자들이 배고픔을 참으면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는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지금은 배고프지만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우편에, 좌편에 앉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중에도 이 제자들과 똑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예수 믿고 축복 받을 생각만 합니다. 예수 믿으면 축복을 확실히 받습니다. 하지만 제일 큰 축복은 영생의 축복입니다. 이 땅의 잠시 지나가는 영화에 너무 욕심 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앞장 마 11:7-8절에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7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사단이 제일 처음 한 시험이 먹는 문제였습니다.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 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3-4)고 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지금부터 제자들이 배고프면 밥 주고 아무 어려움이 없게 돌보시면 이 제자들은 온상에서 키운 풀처럼 힘없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이 되어서는 나중에 순교할 수 없습니다. 순교는커녕 배고픈 사람들의 심정을 알지도 못하고 지금 바리새인들처럼 될 것입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예전에 부모님 세대에 굶은 적이 있다고 하면 “라면 끓여먹으면 되지”라고 한다지요. 그렇게 키워 가지고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지 걱정이 됩니다. 좀 강하게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가끔 굶겨야 합니다. 그래야 배고픈 사람 심정을 알지요. 예수님은 지금 이런 배고픔 정도야 제자들이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믿고 계셨습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의 형편과 어려움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를 이 땅에서 아무 어려움 없이,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다 주시는 것 아닙니다.

맛있는 물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알프스 산록, 북극이나 남극의 얼음…
아무리 맛있어 보이는 자연수를 손에 넣은들,
당신의 마음이 좋지 않으면 결코 맛있는 물이
될 수 없습니다. 만일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아무리 맛있는 물이라도 맛이 없게 되고 맙니다.
땀을 흠뻑 흘리는 운동을 하고 나서
마시는 물은 수돗물이라도 맛있습니다.

항구에 정박한 한 상선에서 선장의 아들이 원숭이와 어울려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숭이가 소년의 모자를 낚아채 돛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소년은 모자를 빼앗기 위해 정신없이 원숭이를 뒤쫓았습니다. 소년이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발 밑을 내려다본 소년은 겁에 질려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소년은 공포에 몸을 떨며 밧줄을 잡은 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선장이 돛대 위에서 울고있는 아들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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