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주이신 예수님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은 누구 신가?(41.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 /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흔히 약장수들이 약을 선전할 때 그 약이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합니다. 우리 나라에 제일처럼 대일밴드가 나왔을 때 이것을 가지고 시골을 다니면서 판 약장수가 있는데 이것을 아픈 곳에 부치기만 하면 심지어 배아픈 것까지 낫는 것으로 선전했습니다. 우리 성도에게도 만병통치약 같은 것이 있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만병통치약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으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 없는 자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교만하면 그것은 도리어 믿음이 없는 것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믿음은 겸손입니다.
어느 목사가 대중들 앞에서 설교를 한 뒤 무척 우쭐해 졌습니다. 아마 저와 비슷한 목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듣기에도 자기의 설교가 꽤 근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목사는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서 넌지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이 세상에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 것 같소?” 그러자 아내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당신이 생각하는 숫자보다 한 사람이 적을 것 같아요”
저는 먼저 교만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전재하고 믿음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합니다.
주님은 믿음 없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언제가 한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어린아이가 엄마와 함께 탔습니다. 그리고 엄마 이거 “엘리베이터지”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내리지도 않는 여러 층을 누른 것입니다. 그때 옆에 있는 엄마가 “너 그러지 말랬지!”하고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 혼을 내 줘야지!”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하는 말. “엘리베이터가 뭐야 다시 해봐! (혀를 둘려가며)엘리베이러”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영어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이 아이가 바르게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교육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근본을 위해서 교육하시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단순히 히브리어, 아람어 발음이 좋지 않다고 꾸짖으신 것 아닙니다. 그런 것을 교육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핵심 교육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30, 눅 12:28)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실제의 생활 전체를 주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마 16:8)고 하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당연히 염려할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제자들은 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축사하시고 5천명을 먹이신 일과 떡 일곱 개로 4천명을 먹이신 일을 경험한 후였습니다. 그런데도 갈릴리 바다건너(마가단 지경)로 예수님과 함께 간 제자들은 떡이 없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간질들린 아이를 제자들 앞에 데리고 왔는데 고치지 못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마 17:17, 막9:19)하시고 고쳐 주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마17:20에서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부활 후에도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 16:14)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제일 많이 그리고 자주 꾸짖으셨던 것은 이빨 안 닦는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운동 안 한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믿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것을 책망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일 좋은 교육의 효과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칭찬이라는 것을 예수님을 잘 알고 계셨으며 바로 그러한 일을 만나자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마8:5절에 보시면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때 한 백부장이 나왔습니다. 백부장이란 자기가 거느린 군병이 100명입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이 자기 하인의 중풍병 때문에 주님께 나아와 고쳐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7절에 “가서 고쳐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내 집에 주님이 오시는 것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하면서 “말씀만 하시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내 부하들도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간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명령 한마디면 하인의 병은 고쳐질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눅 7:9)고 하셨습니다.
믿음을 보시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 병을 고침 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모두가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믿음입니다.
믿음은 누가 만듭니까? 자신입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 믿음입니다. 물론 부모님이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면 교육적인 효과로 자녀에게 믿음을 가르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본입니다.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가고있었습니다. 너무 좋은 차라 시골에 가면 번쩍번쩍 빛이 나던 그런 시절입니다. 길을 물어보려고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던 노인과 아이가 섰습니다. 그런데 차에 타고 있던 젊은 부인은 왜 심통이 났는지 “진주로 가려면 어디로 가요.”라고 반말 투로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노인과 소년은 “저리로 고개를 돌아 좌측으로 가면 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젊은 부인은 “진짜 그리로 가면 진주 나와요”라고 물었습니다. “예 그리로 가면 진주가 나옵니다.” 거짓말 아니지요. “예 아닙니다” 그리고 젊은 부인은 “당신들 거짓말시키는 거지”하면서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그러더니 가르쳐준 방향대로 안가고 자기들 마음대로 뒤돌아 갔습니다. 그곳은 삼천포가는 길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렇게 됩니다. 화는 자신이 내고 자신이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주 찾아가는 길이야 가다 잘못가서 삼천포면 다시 돌아가면 되겠지요. 하지만 천국가는 길은 그럴 수 없습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있으면…
1) 믿음은 곧 능력입니다.
(마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 21: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것이요”
(눅 17: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이 말씀들은 믿음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막 2: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환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 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눅 5: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눅 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눅 8: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예수님께 병을 가지고 나왔던 사람들은 병만 고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가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데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는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너를 구원하였으니”라는 말씀입니다. 병은 잠이 나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병 고침과 구원의 문제는 별개입니다. 오늘날에는 병원에 가면 어지간한 병은 다 낫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 사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냥 육체의 병만 일시적으로 나은 것뿐입니다.
예수님이 “죄 사함, 구원”해 주신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치유는 완벽한 것을 의미합니다. 일시적인 치유가 아님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 주앙교회 성도님들도 이와 같은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을 가지려면
주님께 부탁하십시오. 그분에게 먼저 구해야 합니다. 제자들도 주님께 구했습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눅 17:5)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물론 주님이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믿어주셨습니다. 즉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믿어주신 것입니다. 믿음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해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믿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성도들간에 용서와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인디언 마을에 ‘너구리 잭’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항상 불평과 불만이 많이 너구리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디언 마을 계곡에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너구리 잭도 이 교회에 다녔습니다. 이 교회에는 신앙고백 시간이 있었는데, 말하자면 성령이 강림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일어나 일종의 짧은 간증(고백)을 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 시간에 너구리 잭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몇이 내 등뒤에서 나를 놓고 쑤군거린다는걸 알고 있어. 난 그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다구. 당신들이 뭣 땜에 그러는지 알아. 교회 임원 모임에서 내게 찬송가 상자 열쇠를 맡긴 게 샘나서 그렇지? 좋아 그렇다면 모두들 잘 들어.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 나오라구. 내가 가진 걸로 해결해 줄테니.”
너구리 잭은 미친 듯이 발을 쾅쾅 구르면서 사슴가죽 셔츠를 확 저치더니 권총 손잡이를 두들겼습니다. 금방 교회안에서 총을 쏘지는 않겠지만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때 할아버지 한 분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너구리 잭에게 말했습니다. “잭 자네가 찬송가 열쇠를 어찌나 잘 간수하는지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감탄하고 있어. 행여 자네 기분에 거슬리는 이상한 소문이 떠도는 일이 있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맹세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슬퍼할 걸세.” 너구리 잭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풀리는지 자리에 앉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제야 휴! 하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할아버지 손자가 물어보았습니다. “너구리 잭이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너도 알다시피 체로키족(인디언 부족 이름)이 고향에서 쫓겨나 오클라호마 주로 강제이주당할 때 너구리 잭은 혈기 왕성한 젊은 이었다. 잭은 산속으로 달아나며 열심히 싸웠지. 그러는 동안에 남북전쟁이 터졌는데, 잭은 이번에 연방군(북군을 말함)을 물리치면 땅과 집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고 열심히 싸웠는데 결과는 패배로 끝났지. 전쟁이 끝나자 이제는 정치가들이 들어와서 남아있던 얼마 안 되는 것 가지고 또다시 싸웠지… 너도 알다시피 너구리 잭은 평생 싸운 것 밖에 없어. 이제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이 찬송가 열쇠란 말이다. 이제 잭은 그것 밖에 남은 것이 없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소년은 너구리 잭 아저씨가 좋아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지난 15일에 했습니다. 투표 결과에 대해서 마음에 드시는 분, 안 드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반목만 하고 상대편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됩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을 넓게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다 그분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그런 성향이 생긴 것 아닙니까?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갈 5:5)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고 칭찬해 주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