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던지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누구 신가?(34. 불을 던지러 오신 예수님) / 본문 : 눅 12:49-50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 12:49-50)

오늘 본문의 ‘불’이 어떤 불을 의미하느냐에 성경학자들은 오랜 토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본문의 불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정확하게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불은 심판하는 불과 성령의 불이 있는데 여기서 어느 것을 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주석서나 대개의 학자들은 ‘심판하는 불’ 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이유는 오늘 본문 말씀 이후의 내용들이 심판하러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자들은 ‘성령의 불’ 쪽에 무게를 두고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심판을 원하시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3:11에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세례요한이 증거 했는데 바로 예수님이 성령의 세례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둘 중에 어느 것을 택해야 하겠습니까? 제게 있어서도 이것은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중에 이 둘을 구분하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시의 예수님 입장에서는 불이 붙지 않아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미 이 불은 붙은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즉 성령의 불과 심판의 불이 모두 붙은 것입니다.
사람들을 보면 불붙은 것 같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어떤 불이 붙었습니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멸망으로 가는 사람들도 불붙은 것입니다. 이들에게 붙은 것은 심판의 불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으로 가는 사람들에게도 불은 붙어 있습니다. 이 불은 성령의 불입니다. 사탄에게는 심판의 불을 통해서 단죄해야 되고, 구원을 받게될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불이 붙어야 했던 것입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 12:50)하신 것은 심판과 구원 모두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심판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18절에 보면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따로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불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9:51-54절에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에 사마리아 동네로 통과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유대인과의 오랜 반목으로 인해 예수님이 이곳으로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54절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불을 명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믿고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심판을 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
하나님이 이 땅에 나타나실 때는 불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불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출 3:2). 이스라엘사람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 생활을 할 때로 하나님은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출 13:21-22 40:38).

제사를 받으신 증거
아브라함이 제사를 드릴 때에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 15:17-18)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받으신 표시로 쪼갠 고기 사이로 불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모세가 제사를 드릴 때도 그런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레 9:24) 제사를 받으신 증거로 불이 그 제물들을 살랐습니다.

심판하시는 불
1) 잘못된 제사로 심판하셨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 10:1-2)
2) 의인이 없는 타락한 도시를 심판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25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 19:24-25)
3) 영원한 형벌로 심판하십니다.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10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9-10)
마지막 때의 심판에 대해서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 말라기서에서 예언했으며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서 동일하게 불로 심판하실 것을 예언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심판을 받습니까?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해 주신 것을 보면 열매 없는 나무(마3:10, 요15:6), 쭉정이(마3:12), 가라지들(마13:40)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포도나무 비유에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가지에 붙어만 있으면 절로 과실을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을 심판하시는데도 사용하시지만 우리를 살리는 성령의 불로도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하실 때는 아직 불이 이 땅에 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선악간의 심판하시는 이 불을 붙이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 불을 붙이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 불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붙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왜 그토록 답답해 하셨겠습니까? 바로 이 불을 속히 붙여야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고 가나한 자와 함께 하시는 일도 중요한 것이겠으나 예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일과 비교한다면 이런 일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제일 큰 우선 순위가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 율법사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과 한마디로 입씨름이나 하고 계실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현재의 상황을 생각하면 답답할 노릇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안타깝다’라고 해도 됩니다.
이 세상에 답답한 일은 많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동문서답할 때 답답함을 느낍니다. 바로 예수님 입장에서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제자들이나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지셔야 될 상황이 되어서 지신 것도 아닙니다. 바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성경 원문의 ‘답답함’은 쉬네코(sunevcw)로 “괴롭히다, 곤경에 빠뜨리다, 강요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본문을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 얼마나 더 괴롭히겠느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무지한 죄인들에 의해서 무참히 짓밟음을 당하셨고 그 괴롭고 긴 터널과 같은 공생애를 마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눅 1:1)라고 자신의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물론 누가가 이 글을 기록할 때도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뒤였습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미 이 불은 이 땅에 붙여졌다는 사실입니다.
미국해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함장은 피가 날 때까지 자기 혀를 깨문다” 한번도 배를 정박해 보지 못한 하급장교에게 배를 부두에 정박하라고 명령하고 기다릴 때 그것을 지켜보는 함장의 심정을 가리킨 말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이셨다면 그 혀가 잘라져 나갔을지도 모릅니다. 함장은 배를 대는 후배 장교를 보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믿고 계시는 것은 이보다 더하면 더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맙시다.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값아 드립시다.
나폴레옹 힐(Napoleon Hill)은 인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한 권위자입니다. 그는 연구 결과를 「성공의 법칙」이라는 책으로 발표했습니다. 성공한 사람과 위대한 지도자들 500명을 연구한 것인데 성공한 사람에게는 일률적인 공통점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성공한 사람에게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자기가 꼭 이루기를 원하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자기의 목표를 향하여 무섭도록 놀라운 열정으로 앞으로 밀고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불붙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일에도 목표를 가지고 초지일관 밀고 나가는 사람은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겠지만 저도 성령을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불붙어 있는 생활을 합니다. 주님의 일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옵니다. 흥분이 됩니다. 가슴이 벅차 오르고 뿌듯함을 느낍니다. 살아있음에 감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한없는 찬양과 기쁨 그런 것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옵니다. 세상에 대한 원한도, 미련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께서 주시는 은혜의 일과 기쁨만이 존재합니다. 우리교회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허황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는 자나깨나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이 전도와 선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앙교회가 반드시 세계선교에 열심을 내어 놀라운 결실을 맺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의 불이 붙어있습니까? 이 불이 붙어있다면 주님께서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심판의 불이 아닌 구원의 불, 성령의 불이 붙어있기를 바랍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