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은 누구 신가?(32. 나의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 / 본문 : 롬 3:23-28, 요일 2:2

히틀러가 자국민을 선동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한 방법은 바로 유언비어 였다고 합니다. 유언비어는 똑같은 내용을 계속하는 것보다 조금씩 바꿔가며 유포시키면 폭발적인 효과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진실이 어떤 것인지 나중에는 혼돈이 일어납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서 이런 간교한 수작을 계속해서 벌입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을 방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간절히 우리와 화목을 원하고 계십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십니다.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모세는 가시떨기 나무에 불붙은 것 같이 환한 광채가 나며 우뢰와 같은 하나님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모습을 산 아래에 있는 백성들도 목격했는데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연기를 보았습니다(출 20:24). 이 광경을 본 백성들은 멀리서 떨고 서 있었습니다.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곧 이어서 백성에게 화목제를 드리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 20:24). 하나님이 십계명을 왜 주셨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과 화목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레위기’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방법들이 나와있는데 화목제에 관한 것이 29번이나 나옵니다. 모든 제사보다도 중요한 것이 화목제라는 것입니다. 속죄제나 번제도 알고 보면 화목제사의 일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잘못한 것을 속죄해야 화목이 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1천 번제를 드렸는데 그 제사도 화목제였습니다.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이만이라”(왕상 8:63)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의 사람들은 십계명을 지키고 화목제를 드려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완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화목케하는 제사는 드렸지만 근본적으로 죄인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롬 3:23). 즉 의인이 되어야 하는데 구약의 화목제사로는 의인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합니다.
롬3: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라고 말합니다. 어떤 분은 자신처럼 깨끗한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는 법이 없어도 산다는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셜록 홈즈’라는 명탐정을 만들어낸 추리소설 작가 코난 도일은 유명한 장난꾼이었습니다. 한번은 자신의 친구 국회의원, 사업가, 변호사, 경찰 등에 똑 같은 내용으로 전보를 보내놓고 키득키득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웃고있는 남편에게 아내는 “이번에는 또 무슨 장난을 치시고 웃고 계신가요?” 물었습니다. “내 친구들이 정말 죄를 짓지 않고 사는지 시험 삼아 전보를 쳐 본 거요” 아내가 물었다. “뭐라고 전보를 쳤나요?” 코난 도일은 깔깔대며 대답했습니다. “간단한 내용이요. ‘당신의 죄가 탄로 났으니 빨리 몸을 숨기시오’ 라는 것이었소.” 그리고 전보를 받은 친구의 집을 차례차례 방문했는데 모두 집을 나가 소식이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저주할 때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희망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없었다면 인류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말씀 롬 3:24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1천번제를 드리면서 소 이만 이천마리 양 십이만 마리를 드렸지만 의인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값 없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전혀 드려진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롬 3:25절은 함께 읽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하나님과 화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소의 피로도 안됩니다. 양의 피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동물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대신하는 상징은 될 수 있지만 나는 아닙니다. 그리면 내 피로는 됩니까? 안됩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의 피로는 제사가 드려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의롭게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씻어주며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길을 여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사람하고도 원수가 되거나 화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물며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고 되는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많은 문제가 있고 시급한 것이 있지만 하나님과 화목하는 일보다 급하고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일이 모든 일에 급선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길고 긴 죄의 문제에 종지부를 찍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입장에서 답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흔히 정치를 할 때 한쪽에서 할 일을 다하고 상대편의 응답을 기다릴 때 ‘공은 넘어갔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문제 하나님은 하실 일을 다 하셨습니다. 공은 이제 우리에게 넘어왔습니다.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주저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울은 롬 5:10-11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고후 5:20절에서도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고 부탁합니다.

형제와 화목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형제와 화목하는 일도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일보다 더 선행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4)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세상에서 화목하지 않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화목은 이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소금비유를 말씀하신 것도 화목 때문이었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50)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하나같이 용서하고 산 사람은 모두가 위대한 인물들입니다. 요셉 그랬고 다윗이 그랬습니다. 지금도 용서하고 사는 사람은 모두가 축복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속어에도 ‘때린 놈은 오무리고 자도 맞은 사람은 다리 뻗고 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잠언 17: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육선’은 진수성찬을 말하는 것인데 제사상의 음식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화목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모님도 형제들끼리 화목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가끔 장례식장에서 형제들끼리 재산 싸움하는 경우를 봅니다. 부모의 시신을 앞에 놓고도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잠언 15: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요즘 보는 책 하나가 있는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미국의 작은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입니다. 저자인 포리스트 카터는 인디언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산에서 칠면조를 사냥했습니다. 너무 많이 잡아서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놓아주었습니다. 인디언은 자연에서 필요이상으로 가지지를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두지…
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한테도 뺏기고… 우리 체로키한테도 뺏기기도 하지.
그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
그러고도 또 남의 것 빼앗아오고 싶어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더 늘리려고 말이다.
그들은 자기가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지… 그러니 사람들은 그놈의 말과 깃발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 셈이야… 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 없어.”

욕심을 가지지 않으면 화목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욕심 때문에 화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오히려 또 하나의 축복을 받으려는 단순한 욕심이 아니시기를 바랍니다.

온 세상과 화목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하나님과 화목하고 형제와 화목 한다는 것은 온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보혈도 우리만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가끔 답답한 분들을 봅니다. 교회에 잘 다니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이웃과 나누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더 나아가 선교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말할 때 보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제일 받았고 권능을 제일 많이 받아서 하나님은 꼭 자신만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보혈이 나를 위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만 위한 것은 아닙니다. 제일 위험한 신앙이 바로 이기적인 믿음입니다. 나만, 우리교회만 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나에게 계시는 주님은 여러분에게도 계십니다. 오늘 우리교회에 계신 주님은 중국의 용지교회와 아프리카의 김형주선교사님이 계시는 남아공의 잉까겡 잉카라펭(IKALAFENG)지역에 세워지는 교회와 흑인 성도님들에게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고 했습니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에 따르면 동료가 화장실을 좀 오래 쓰거나 청소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등 아주 사소한 일들이 우주비행사의 신경을 건드린다고 합니다. 기지국에서는 우주선 내에 갈등의 기미가 보이면, 일부러 선체 고장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고장난 부분을 수리하기 위해 협동하다 보면 모두가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우고 다투는 것도 비슷합니다. 사실 알고 보면 사소한 문제들입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하나의 반짝이는 아름다운 별일뿐입니다. 사람들은 여기에 줄을 그어놓고 반목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자국의 이익만을 챙기고자 할 때 전쟁이 일어납니다. 온 지구촌이 하나의 형제 자매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린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마18: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는 ‘아멘 레고 휘민(!Amh;n levgw uJmi’n)’으로 직역하면 “너희들에게 진리를 말한다”는 뜻입니다.
“매면”은 헬라어 ‘데오(devw)’로 실의 매듭을 말합니다. 사람사이에 꼬여있는 실의 매듭을 푸는 것을 말합니다.
풀다 ‘뤼오(luvw)’인데 ‘매면 매일 것이요와 풀면 풀리리라’의 문법이 같습니다. 앞에 나온 매면과 풀면은 모두 가정법, 부정과거 완료를 나타납니다. 그리고 뒤의 매일 것이요와 풀리리라는 현재완료형으로 과거에 있었던 일이 현재에 계속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이 땅에서 묶고 푸는 것이 모두 하늘에서도 연장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하나님도 하늘에서 여러분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값 없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믿음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이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도 자랑할 수 없는 오직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엡 2:8).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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