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이사야)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오전예배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사 7:13)

이사야서의 주요 내용은 심판과 구원입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이 62번, ‘영광’이 38번,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는 말이 약 27번, ‘남은 자,’라는 말이 13번나옵니다.
예수님은 13번 정도 이사야서를 인용하셨고, 사도행전 4번, 로마서 4번 합하여 21번이 신약성경에서 인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선지자이며, 다른 선지자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인용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서의 주제가 ‘하나님의 주권, 여호와의 거룩하심, 사람들의 죄악, 메시야의 영광’에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메시야의 초림에 대한 예언을 제일 구체적으로 예언한 선지자가 이사야입니다. 초림에 대한 예언만 30번 정도 나오고요, 뿐만 아니라 재림에 관한 내용까지 나옵니다(사 11:6, 32:1-8 등).

이사야서는 성경의 각 권들 중에 시편과 예레미야서에 이어 세 번째로 긴 분량입니다.

첫째,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사 1:2) ‘거역하였도다’의 원어(파솨)는 ‘배반하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사 3:8)고 합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시작하는 것은 언어가 먼저입니다. 언어를 쉽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말로 먼저 다 죽이는 것입니다. 요즘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언어 수준은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입니다. 아이들을 사랑만 한다고 하면서 매 한 대 못 때리지, 그러니 아이들이 무서운 것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자꾸 왕따가 나오고 선량한 아이들이 견디기 어려워 자살하는 일까지 생기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다른 사람에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바보, 골빈 놈)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모레:도덕적 배신)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

둘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지적을 받았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 1:3) 주인을 알지 못하는 것은 소만도 못하고 당나귀만도 못합니다.

셋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4)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배이신 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모하고 귀히 여겨야 할 보배를 버렸고 그를 만홀히 여겼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고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짠맛이 없어진 소금 버리듯 버렸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조금 더 보세요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사 1:10-14).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법을 듣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왕이 제일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일입니다. 못산다고 억울한 일이 없고, 권력이 없다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통치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고 왕이 된다는 것은 불법을 행 할 뿐입니다. 정치에 사람을 이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제물이나 안식일 등이 무거운 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보이려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한다”하고 자랑하는 것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칼빈도 좋아하고 웨슬리도 좋아하지만 “… 주의”는 싫어합니다. 심지어는 ‘복음주의’라는 말 자체도 그렇습니다. 일단 …주위에 빠지면, 다 거기다 집어넣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화가 안되고 사물을 바로 보지를 못합니다. 복음주의 그러면서 무조건 좋다 하면 큰일납니다.
파스칼, 칼 바르트 같은 분들은 “기독교의 진리는 다분히 역설적인데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를 긍정하게 되면 오히려 자기를 잃게 되고, 자기를 부정할 때 오히려 자기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인이 될 수 있고, 자기가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죄인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또한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고백했습니다.

“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12대 왕 16년 재위:히스기야의 아버지)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2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사 7:1-4)고 하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사 7:8) 나라가 서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꿰툴라X, 알마=젊은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이사야서에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간과되어지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6, 35, 40, 53장은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이지만 13-34장과 같은 부분은 익숙하지 않은 본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편식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익숙한 본문)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사 6:6-8)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6)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 40:8)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1-2)

(익숙하지 않은 본문)
13-34장까지는 익숙하지 않은 본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편식을 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부분을 좀더 세심하게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12개의 주변 나라와(13-23장), 사마리아, 유다(28, 29장)를 향한 하나님의 책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나오는 나라가 바벨론인데요(사 13:1) 바벨론은 남유다를 B.C. 586년에 멸망시킨 나라입니다. 그리고 두 번 째로 앗수르가 나오는데 북이스라엘을 B.C. 722년에 멸망시킨 나라입니다. 세 번째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날 이레로 이스라엘에게 제일 꾸준히 가시 같은 역할을 한 블레셋 멸망이 나옵니다. 그리고 모압, 다메섹, 구스, 애굽, 다시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 그리고 예루살렘과 두로에게 강한 책망과 멸망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이 CCM인지에 나오는 노래 가사인데요, “물이 바다 덮은 같이…”입니다. 이 말은 다음 구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사 17:12)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를 주민이 없는 성읍과 같이 황폐한 성읍이 되게 하고 깊은 바다가 네 위에 오르게 하며 큰 물이 너를 덮게 할 때에”(겔 26:19)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큰 물이” 가리키는 것은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이 일어나서 유다를 침몰시킨다는 것입니다.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서 패망하게 되는데 “물이 바다 덮음 같이”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지금부터 B.C. 586년에 이루어진 것이니까 약 2,500년에 끝난 일입니다. 이것을 마치 미래에 이루어질 것처럼 말하는 것은 성경을 바로 보지 못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요절 뽑기 좋아하다 보니까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겁니다. 성경을 그렇게 막 아무데나 갔다 붙여서 해석하거나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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