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더럽히지 말라(다니엘)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오전예배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8-9)

다니엘의 명칭
다니엘은 ‘하나님은 재판관이시다 또는 하나님은 심판자’라는 뜻입니다.
성경명칭 중에 사사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사기는 ‘샤파트‘재판하다’라는 말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표현하는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비록 포로로 끌려갔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기억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역사까지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신다는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성격
한글 성경에는 다니엘서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같이 예언서에 넣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전에는 성문서 집에 포함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예언자의 성품은 가지고 있었으나 예언자의 업무를 수행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벧론 제국의 120방백을 다스리는 정치가( 2:48)였고 세 총리중 한 사람 이었습니다( 6:1-2). 다른 예언자들이 즐겨 사용한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하는 말씀을 본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본서의 저자와 저작 연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견은 다니엘이 저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서의 주요사상(교훈)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구약 성경의 어느 책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분명하고 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사상은 신약과 깊이 관련되게 됩니다. 지상의 왕국의 불완전  함과 취약함을 말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의 영존성과 지상 왕국을 심판할 것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2:44, 4:34, 7:14). 특히 다니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은 더욱 종말론 적이라는 데에서 다른 예언자 보다 특이합니다.
둘째는 부활사상입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12:2)를 밝히 말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활동한 시대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왕족과 귀족들을 포로로 잡아다가 바벨론 왕국에서 일하게 하였습니다. 그들 중에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라고 하는 영리하고 잘생긴 네 소년이 있었습니다. 한 관리가 그들의 이름을 벨드사살(다니엘), 사드락(하나냐), 메삭(미사엘), 아뱃느고(아사랴) 라고 자기네 식으로 이름을 고쳐서 불렀습니다. 그들은 채식을 하며 공부하고 몸과 마음을 닦아 바벨론의 모든 자보다 지혜와 총명이 10배나 뛰어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서는 1-6장과 7-12장의 두 부분으로 내용을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제 1부(1-6)의 내용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어떻게 귀한 몸들이 되었으며 또 질투 속에서 박해를 받고도 신앙의 절개를 지켜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 2부(7-12)는 묵시 문학의 대표적인 것으로 네 개의 환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환상을 통하여 땅위의 인간들의 왕국들은 한때는 흥하나 끝내는 멸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존속할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기록 목적은 이방의 우상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우월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비록 바벨론이 이스라엘에 대한 형벌의 수단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들도 역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며, 반면에 연단 받은 이스라엘은 메시아의 사역이 시작되고 하나님께서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실 때에 메시아의 운명과 결합되어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 위함입니다. 특히 다니엘서의 기록 연대가 환란과 박해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할 때 그 기록 목적은 ‘담대하라, 충성하라.그리하면 하나님이 너희를 건지시리라는 것이 됩니다.

바벨론은 히브리인들의 특수한 관습들을 뿌리째 없애려 하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유대인들의 율법에 위배되는 음식을 먹도록 강요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율법에 어긋나는 음식으로 자신들을 더럽히기를 거절하였습니다. 또한 우상의 제단에 예배할 것을 강요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거절하여 그들은 불구덩이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그들은 온전하게 보전되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급기야 자신을 신으로 섬길 것을 요구하였지만 다니엘은 그 명령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사자 굴에 던져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의해서 안전하게 보호받았습니다.

이 모든 박해의 사실들은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만 닥친 일이 아니며, 많은 히브리인들에게 자행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선지자는 묵시 사상으로 그들을 권면해야 했습니다. 다니엘서의 기록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기록 목적에서 다른 하나는 묵시적 교훈을 담은 내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곧 다니엘서의 묵시적 교훈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역사가 하나님에 의해 지배된다는 예언자들의 사상적 결론을 다니엘서의 묵시 사상이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악의 세력에게 주어지는 일정한 허용의 양이 있는데, 그때를 설명하는 이는 언제 그때가 성취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비밀에 붙였습니다. 다니엘서 저자는 이러한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으며, 그 마지막 때를 예언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본 환상을 통해서 오래지 않은 때에 종말이 오리라고 확신하여 성전 제사가 중지된 날로부터 3년 6개월만에 종말의 때가 온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예언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새로운 확신과 소망을 주었으며, 이러한 기록 목적은 영감이 끊어져 있던 시대에 권위를 가지고 선포된 예언이라는 위로를 주었습니다. 묵시 사상이 유대인들에게 준 또 다른 위로는 무시무시한 음부의 교리에서 성장한 사람들에게 내세에 대한 삶의 상급을 주장함으로써 큰 소망을 갖게 한 점입니다. 곧 박해에 직면해 있던 유다인들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묵시 사상은 용기와 승리에 대한 소망을 줌으로써 순교까지도 감당해 낼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다니엘서는 당시의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의 우월하심과 돌보심, 그리고 장래의 승리를 확신케 하고자 한 기록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서는 당시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 시대를 위해서도 적절한 위로와 소망을 갖게 합니다. 곧 사람들이 최종적인 도전, 즉 죽음 같은 것에 직면할 때마다 다니엘서는 인간들이 망각한 용기와 덕을 지니도록 고귀하게 일깨워 줍니다. 그러나 참된 용기와 덕은 삶의 작은 부분에서조차도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에게 가능한 것입니다. 다니엘서는 위기에서뿐만 아니라 인격 도야에도 유용한 책입니다. 더 나아가서 시간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며, 모든 역사가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뜻 안에 있다는 다니엘서의 주장은 모든 세대, 시대에 결코 잊혀질 수 없는 하나님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나라 사상
다니엘서는 구약성경의 어느 책에서보다 하나님의 나라 사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전하고 있는데, 지상의 왕국들이 불법과 불의를 행하다가 결국에는 패망하게 되고, 이에 비하여 하나님의 왕국은 영존하여 지상의 왕국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한다(참조, 2:44). 곧 다니엘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이다(참조, 4:26). 하나님은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그 권세를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주고 싶은 자에게 주며(참조, 4:25),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른다(참조, 4:34). 곧 하나님의 주권적인 권세는 영원한 권세, 옮기지 않는 권세이며, 그 나라는 폐하지도 아니한다(참조, 7:14).
다음은 영원한 권세를 지닌 나라를 누가 상속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그 성격상 그 위치를 땅에서 옮기워질 것이며, 지상의 왕국과 인간들이 멸망한 다음에 세워질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적 개념이 아니라 묵시적 개념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점이 신약성경의 하나님 나라 사상과 구별되는 점이다. 곧 묵시적 개념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의 세계에서 초월한 어떤 세계이며, 그 세계의 주인은 시련을 견딘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의 세계에서 초월한 어떤 세계이며, 그 세계의 주인은 시련을 견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유다인)이다. 여기에는 포로기의 유다인들이 우주적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의 백성이라고 하는 유다인들은 실제적인 상황 속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태였으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왕권 안에 종속되어 있다는 유다인들의 신념과 자신들의 처지는 서로 융화되기 어려웠다. 곧 그들은 하나님을 영원한 왕이라고 고백했지만, 완전하고 절대적인 주권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없는 여건 때문에, 또는 다른 제약들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 사상은 묵시문학적 표현이 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상속자인 유다인은 자신들의 처지를 연단으로 보았던 예언자들의 선포와 달리 마지막 날의 완전한 심판과 멸망, 그리고 부활과 영원한 왕권에 의해 지배되는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 유다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예언자들도 이와 비슷한 사상을 선포한 바 있다. 곧 B.C. 8세기와 6세기의 예언자들은 이 세상의 환란과 절망적인 사태가 끝난 다음에는 반드시 어떤 회복의 때가 올 것 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리고 그 날은 인간의 죄악성과 유혹에 대한 연약성으로 인해 이 땅의 행복과 평화를 파괴하는 모든 행위가 멈추어지게 되고, 또한 이스라엘은 대외적으로 자유함을 얻게 되고, 대내적으로는 공평과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서는 이들 예언자들의 전통에서 유래했다고 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즉 다니엘의 사상은 예언적이라기보다는 묵시적이며, 예언자들의 사상이 현세적 종말론이었다면 다니엘서의 사상은 미래적, 초월적 종말론이라 할 수 있다.
예언자들의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은 ‘이새의 줄기곧 다윗의 자손이 성취할 이스라엘의 개인적 국가적 회복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 사회의 죄악과 고난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묵시문학에 의해 확대된 인식으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옮기워질 천상이나 초월적인 어떤 권세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미 율법과 구약의 여러 문헌에서 보여 준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 사상과 결부되어 주권의 대망 사상으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한편 다니엘서의 하나님 나라 사상은 신약 시대의 메시아 대망과 구별된다. 즉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이 땅에 오시었고 그 사역을 거쳐 부활하신 후에 다시 오시겠다는 재림의 약속으로 인해 설정된 종말론이지만 다니엘서는 현실을 초월하여 설정된 하나님 나라였다. 때문에 다니엘서의 하나님 나라 사상은 예언자 전승의 보다 나은 사회나 신약성경의 메시아 왕국과 구별되는 묵시문학의 독특한 하나님 나라 사상, 곧 현실을 초극하여 이루어질 영원한 왕권의 통치를 의미한다.

2. 부활 사상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단12:2). 이 구절에서 다니엘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다니엘의 부활에 대한 사상은 선조들의 오랜 신앙의 결과이자 히브리적인 통찰의 결과이다. 곧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죽은 다음의 세계도 반드시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막연한 신앙의 소산으로 부활 사상이 나타났다.
한편 지혜 전승을 살펴보면 스올(Sheol)이라는 특정한 곳이 있어서 모든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은 죽기 전, 생활의 선과 악의 차별 없이 일단 죽으면 다 모이는 지하 세계였다(참조, 30:23). 물론 이 지하 세계도 하나님의 간섭이 미치는 곳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 섭리를 기대할 수 있었다.
히브리의 예언자들이나 랍비들은 이 죽음의 세계에 대해 세 가지로 생각했다. 하나는 죽음의 힘이 반드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그 불가항력적인 힘도 하나님의 간섭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고 생각했다. 예언자 이사야는 ‘백 세에 죽는 자는 아이라’( 65:20)고 했다. 이처럼 지혜 전승이나 예언자 전승이 알려 주는 바는 죽음이 불가항력적인 힘처럼 보이지만 그 힘을 제약할 수 있는 힘이 여호와께 있으며, 그를 믿는 믿음으로 이를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죽음을 반드시 절망적인 상태로 보지 않은 예언자들의 미래 관이다. 예언자들은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새로운 교제를 나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참조, 16:10; 17:15; 49:15; 73:26 욥19:26). 마지막으로 묵시문학적인 시각에서 죽음의 문제를 처리하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것이 부활 사상이다. 물론 이 사상은 교리가 아니라 확신이었다.
특히 다니엘서는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개인이 아닌 전 민족의 부활, 그중에서도 의로운 이스라엘의 부활을 기대하였다. 이 사상의 발전은 B.C. 8세기의 예언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6:2의 이스라엘 전체에 주어진 희망이나, 25:8의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간섭이 그것이다. 에스겔은 보다 적극적으로 해골들의 골짜기 환상을 통하여 부활을 설명한다. 이러한 예언자들의 확신은 히브리인들의 사고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고, 다니엘은 이를 과감히 사용하여 부활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다니엘서에 언급된 부활의 의로운 사람의 부활뿐만 아니라 악한 자도 살아날 것을 말한다. 따라서 부활은 심판에 앞선 것으로 죽음이 전혀 이겨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이라는 관념을 배제한다. 그리고 다니엘서의 부활 사상은 신약의 부활 사상에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특히 신약성경에서 부활이 신체적 부활 사상으로 발전된 것은 다니엘서의 공헌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니엘서는 부활이 영혼과 육체를 포함한 전인격의 부활을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신약 시대의 부활은 이미 ‘첫 열매’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미 죽은 모든 사람들의 신체적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참조, 8:23 ; 고전 6:13-20).

3. 다니엘서의 메시아 희망
다니엘서는 마지막 날 이스라엘의 억압자들을 심판하거나, 다윗의 자손 중에서 백성을 올바로 다스릴 하나님의 일꾼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7:13에 나오는 ‘인자 같은 이’는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께서 악한 세력을 흩어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릴 천상적인 통치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리고 ‘인자’는 신약성경에서 메시아를 뜻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었다(참조, 8:31). 그러나 단 7장에 나타난 천상적인 인물은 다니엘의 꿈을 해석하는 데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처럼 계약 공동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다니엘서의 메시아 희망은 예언 전승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한편 예언자 전승은 메시아가 다윗 가문에서 나올 것이며, 다윗 왕국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한다(참조, 9:1-7; 11:1-9). 이는 곧 정치적인 메시아 희망이며, 이 사상은 예수 시대에 고조되어 마카비 시대에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다니엘서에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가 스룹바벨 시대의 메시아 운동이 불어넣었던 것과 같은 정치적인 내용을 가리키는 말로 묘사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의 완성은 일상적인 역사의 실재들을 능가하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승리를 의미했다. 따라서 다니엘의 마지막 환상(참조, 단 12장)은 결국 셀류커스와 프톨레미의 세력 다툼이라는 정치적 국면을 떠나서 보다 높은 세계로 나아간다. 역사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이다. 이것은 어떠한 설명을 붙이더라도 인간적인 나라는 아니며, 그 어떤 진보적인 사회를 약속하는 유토피아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때에 하나님의 신비한 힘으로써만 가능한 나라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상속과 참여를 위해 이스라엘의 죽은 자들은 부활할 것이다. 이처럼 다니엘서는 예언자들의 인간적 유토피아와는 달리 천상적, 그리고 초월적인 나라를 기대하는 면에서 지혜문학의 전통을 따르는 묵시문학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묵시문학의 가장 큰 공헌은 미래 생활에 대한 희망이다. 그리고 미래 생활도 영혼 불멸에 대한 그리스의 이원론적 관념과는 달리 역사적이다. 즉 미래에 대한 이스라엘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개인은 구원된 공동체, 즉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충만한 삶을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육신의 부활은 마지막 때 역사의 드라마가 성취되는 바로 그때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때는 악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가 완성되는 때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묵시문학은 역사의 드라마가 비극적인 투쟁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나라로 나아가는 것을 제시하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이 세상의 고통이 역사의 대단원에서 완성된다고 하기 때문에 대단히 현실적인 책이라고 하겠다. 바로 다니엘서는 역사의 드라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통치 계획안에 들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현재의 고통에 직면하여 충실히 맞서 나갈 것을 호소한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메시아 희망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함께 이루어질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의미할 뿐 그 어떤 정치적인 메시아 사상도 배제한다.

 

답글
  • 윤혜숙말하길

    다니엘서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묵시적인 교훈을 깊이 있게 깨닫는데 대해, 뚜껑을 열게 한 말씀입니다. 포로로 끌려가게 하시고, 다니엘이 절대적인 느부갓네살 왕권 앞에서도 떨림없이 보인 지혜와 대담성을 배웁니다. 인간적으로 최고가 될 왕이 하사하는 상, 즉 물질적인 풍요로움의 제시에도 흔들림없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지않도록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로움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감지합니다. 열흘동안 시험해보도록 제의한 그 여유로움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행사에 순종하며 확신하는 역사적인 찰나, 이 놀라운 사실들이 다니엘을 통하여 행하게 하심을 봅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얼굴에 윤택함과 광채를 보는 변화의 가치를 확신합니다. 201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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