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방해하는 사탄의 제안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26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출 8:25-28)

출애굽의 목적은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함입니다(출 5:1, 3, 8, 17).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애굽의 삶이 단순히 고생스러워서 그것을 탈출시키고자 함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께 축복 받는 데만 머물러 있다면 축복 받고 예배를 떠난 유럽의 교회들처럼 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신앙의 목적이 축복만이 아니라 예배에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려고 할 때 바로는 집요하게 모세를 통해서 설득합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탄은 같은 말을 합니다. 사실 사탄의 말은 믿을 것도 못되고 그렇게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일시적으로 방해하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잘 지키려면 이러한 사탄의 속임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첫 번째 제안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출 8:25)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우리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예수를 믿으라! 그러나 세상에서 굳이 떠날 필요가 있겠느냐? “네가 좋아하던 일을 계속 하면서 믿으라!”고 말합니다. “제사도 그냥 지내면서 믿어라!”고 합니다.
이 땅에서 믿으면 안되냐는 것입니다. 뭐라 해야 합니까? “안 된다 나는 가야한다”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의 고행을 떠납니다. 불 신앙의 고향을 떠납니다. 떠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왜 떠나야 합니까?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떠나야 합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중심은 곧 하나님 중심이요, 예배 중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당신을 중심으로 예배하며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복 주시지 않겠습니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두 번째 제안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출 8:28) 아주 너그럽고 인심을 써 주는 것처럼 말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좋다 그러나 너무 믿지는 말라. 지나치게 새벽기도까지는 가지 말라. 적당히 믿어라” 그런 말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뭐라 하십니까? ‘전심’입니다. 모든 마음입니다.
다윗은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시 119:10)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적당히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온전히 입니다. 적당히 구원이 가능하다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이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엄격합니다. 미지근하면 토해 버리십니다.

세 번째 제안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출 10:11) 너만 믿으면 되었지 아내와 자녀는 왜 데리고 가려고 하느냐 이겁니다. 사탄은 가정을 파탄시킵니다. 제 생각에는 정말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가족이 떨어져 지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기러기 하기 마세요. 얼마나 외롭습니까? 가족이 무엇입니까? 사탄은 지금도 말합니다. “너희 자녀는 좋은 학교 가야한다.” 그 말은 맡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서 좋은 학교 가면 뭐 합니까? 사탄이 보내주고 사탄이 키워 주는 것 아닙니다. 그렇다 해도 사탄에게 주시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사역하시는 것에서 의문점을 갖는 것 중의 하나가 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는가 하는 것입니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혼자 다 하시면 되지 왜 굳이 나를 부르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하나님)와 아들(예수) 자녀(우리들-성령)가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네 번째 제안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출 10:24)
사탄이 마지막까지 유혹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래 믿어라. 어린아이까지 다 데리고 가라. 그러나 돈까지 다 바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사탄의 소리입니다. 결국 마지막 유혹은 자기 헌신 없이, 물질의 헌신 없이 입으로만 헌신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기 제일 쉬운 것이 물질입니다. 물질로 헌신할 수 없는 사람은 몸으로 헌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아무 일도 안 하시고 이런 요구를 하신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믿는다면 오늘날 우리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헌금 없이 예배드리겠다는 것은 마치 제물 없이 제사 드리겠다는 것하고 같은 이치입니다. 제물이 없으면 제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감사 있으면 반드시 감사의 헌금이 있는 겁니다. 입으로만 예배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다 가지고 가야 합니다. 양과 소도 다 가지고 가야 합니다.

요즘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는 “졸면 죽는다”는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의 표현처럼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올 초에 스마트폰용으로 윈도우 7을 탑재하여 시장을 공략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아이폰과 구글로 양강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무료인터넷전화업체인 스카이프를 전격 인수했는데 이것은 많은 글로벌 경영자들의 머리 속에는 존재하지 않던 변수였습니다. 또한 구글의 운영체제(OS)통합과 크롬 노트북 출시 또한 전 세계 전자업체들의 판도변화에 중요한 요인들입니다.
세상의 경제적인 여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과 영적인 문제도 비상체제입니다. 스마트폰이 가져다준 문화가 무엇입니까? 즐기는 문화, 개인 문화를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이런 사회가 우리의 심성을 망가트리고 있습니다. 지켜 내야 합니다. 영혼을 보호해야 합니다.

OECD국가 중에서 청소년 자살율이 제일 높은 나라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뉴질랜드입니다(10만 명당 19.5) . 그 다음이 아일랜드, 핀란드, 폴란드, 캐나다 순입니다.
상위에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선진국입니다. 세계최고의 복지국가입니다. 청소년들이 자기 정체감을 잃고 있습니다. 목적이 없습니다. 삶이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일이 있습니다. 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사탄의 그럴듯한 제안을 끊어버릴 때 온전히 하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사탄의 제안은 언제나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합니다. 그럴듯한 제언을 합니다.
우리가 유혹에 넘어가는, 시험을 받는 요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교만입니다. 하나는 욕심입니다. 옛 성인들도 하나같이 무를 강조했습니다. 욕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교만입니다. 소유하고 있되 교만하지 않다면 그 사람은 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사람의 병폐가 무엇입니까? 잘못된 유교문화로 생긴 교만 아닙니까? 심지어는 신앙도 그 교만 위에 세워지는 경우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서울 강남에 있는 한 교회에서 장로님이 교회주변에 나무를 갖다 심었습니다. 직접 나무를 심으시니까 작업복 차림으로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러다 삽 자루가 길가에 조금 내려가 있었습니다. 그 길을 들어서던 그 교회 집사님이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시더니 장로님을 째려보면서 막 노동하는 사람 취급을 하면서 뭐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때 저 쪽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성도님이 장로님이신 줄 알고 ‘장로님’ 이라고 큰 소리로 아무 이유 없이 불렀습니다. 그 때서야 이 집사님은 장로님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장로님이 이 일대의 5000평이 넘는 땅을 가지고 계시고 대기업회장님이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그런 이유를 떠나서도 삽 한 자루 때문에 교회에 오시다 그렇게 신경질 내고 하시면 안되잖아요. 막노동하시는 분이면 어떻습니까? 돈이 없는 분이면 어떻습니까? 무슨 문제가 됩니까? 내려서 삽 자루 치우고 가면 되잖아요. 겸손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하나님을 믿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마음의 평안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5)고 했습니다.
바울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엡 4:22)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막 4:19)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욕심을 버리고 사탄의 시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까?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고 말합니다. 모세가 자기 생각으로 바로에게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자기 능력을 바로에게 보여준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출 9:29).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벗어나 세상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