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신 31:13)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무서운 게 없는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아기가 울면 달래냐고 밖에 호랑이가 왔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기가 더 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곶감 줄게 울지마 그랬더니 울음을 그쳤습니다. 밖에서 듣고 있던 호랑이는 나보다 더 무서운 게 있구나 하고 도망을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범죄는 누가 저지르기 쉽습니까? 배고 푼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는 빵 때문입니다. 그러나 배부른 사람이 저지르는 죄는 유형이 다릅니다. 애굽의 바로가 하나님을 대항합니다. 자기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예수님 때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저지르기 쉬운 제일 큰 죄가 무엇입니까? 우월주의입니다. 특권의식입니다. 배고프고 못 배운 자에게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층에게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가진 자에게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고 합니다. 구약성경에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중의 하나가 ‘경외’(arey::야레)입니다. ‘야레’는 ‘두렵다, 두려워하다’입니다.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시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버릇없는 아이는 무서운 것이 없는 아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버릇없는 사람은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시 34:9)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할 줄 알면 교육이 다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으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세상에서 자기가 왕입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데 부모는 무서워하겠습니까?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잠 23:17)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 5:29).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안됩니다.

사람이 영원히 살 것 같지만 사실은 금방 죽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하루살이와도 같은 것입니다.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사 51:6)고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두고 제일 많이 표현한 단어가 있습니다. ‘반석’입니다. 쉽게 말하면 ‘바위’입니다. 이사야도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삼하 22:47) 하였습니다. 다윗의 블레셋 사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부른 노래입니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삼하 22:32, 시 18:31)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 26:4). 하나님을 왜 바위라고 가르치십니까? 왜 다윗은 그렇게 찬양했습니까? 하나님만이 흔들리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 요동치지만 하나님만이 영원하십니다. 흔들리지 아니하십니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 62:7)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반석이신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흔들립니다. 세상을 의지하면 흔들립니다. 자신의 건강을 의지하면 흔들립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반석이십니다.

모세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영원할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출 18:18에서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고 합니다. 모세는 각 부장들을 세워 일을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못합니다. 지금은 하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반드시 후계자를 세워야 합니다. 자손을 세워야 합니다. 일의 성공의 여부는 사람을 세우는데 달려 있습니다.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습니다.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크게 키워줄 수 있는 조직이나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본을 가르쳐라.
모든 원리가 기본에 있습니다. 기본이 충실하지 못하면 무너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고 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세상을 미끼로 우리를 유혹하는 사탄과 싸움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사의 삶입니다. 어떤 분이 목사도 스님이나 신부처럼 세상을 떠나서 홀가분하게 살면서 영적 수양을 하는 것이 더 성직자의 모습이 아니겠냐고 합니다. 목사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지만 성자처럼 살아야 되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누가 더 쉽겠습니까? 목사가 더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과 똑 같이 가정을 책임지면서 그 고통과 어려움을 똑같이 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교회가 점점 전원교회 비슷하게 산 속으로만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가운데 있지만 영적인 사람을 키워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도 하나님의 일도 다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고 했습니다. 영적인 것은 세상이 가르칠 수 없는 것입니다. 도덕과 정의 정도는 세상이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적인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원리를 가르쳐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시 119:33)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했는지 이 한 구절만 가지고도 충분히 설명됩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길, 그 길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 길에 성공이 있습니다. 그 길에 좋은 것이 다 있습니다. 모든 원리가 어디에 들어있겠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다 들어있습니다. 잘 살기를 원하십니까? 성경을 읽으세요.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성경을 읽으세요. 자녀교육을 잘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성경을 읽으세요. 다 들어 있습니다.
욥은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욥 26:7)라고 했습니다. 욥은 성경시대 중에서 족장시대로 제일 오래된 지금부터 3,500년 전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이 때 이미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잡은 고기를 주지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것이 유대인 교육의 핵심입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잠 16:16)
성경을 살아있는 책이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성경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분이 살아 계셔서 그것을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빌 2:16에서 “생명의 말씀”이라고 부르고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고 말합니다.

마취제를 발견한 심프슨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 2:22)라는 말씀을 읽고 마취제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1847년 마취제 클로로포름(Chloroform)을 발견했습니다.

습관을 가르쳐라
자녀에게 미치는 부모의 유전적 요인은 두 가지입니다. 생물학적인 유전자를 물려준 것도 있지만 그 다음이 습관입니다. 자녀는 부모처럼 행동하고 부모처럼 삽니다. 처음에는 잘 모르는데 나중에 보면 그렇습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습관대로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자면 사람은 다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몸에 배운 사람은 자기를 잘 다스립니다. 이것 하나만 잘해도 인생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택민이처럼 번개맨을 하든 화 푸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남을 용서하는 방법, 일찍 일어나기, 회사에 30분 출근하기, 바른 자세 등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습관입니다. 습관이 성공을 부르는 것입니다. 습관은 절대적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눅 22:39)라고 합니다. 기도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습관입니다. 아버지를 찾는 것이 예수님의 습관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5)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유럽교회가 부흥하지 못하는 것은 모이기를 패하여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성막을 만드시고 그곳에 모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원리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은 천지창조을 하실 때 운행한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입니다.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엄청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기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7)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을 다음세대에 전수하지 못하면 우리는 복음전달에 실패입니다. 멀리 가서 이방사람 구하는 것 다 중요하지만 먼저는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이 어디입니까? 우리집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꾸만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가야한다고 합니다. 거기 가고 안가는 문제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록펠러는 50대 중반에 죽을병이 걸렸습니다. 당시 록펠러는 미국 석유업의 95%까지 지배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의사는 록펠러에게 1년도 살기 힘들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맨주먹으로 독립을 하고 30대에 오하이오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설립했습니다. 40대에는 철도회사를 병합시켰으며 미국 정유능력의 90%이상을 지배하는 대기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되기까지 철저히 자신을 위해 살았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고용인과 거래처를 무자비하게 착취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공했으나 존경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남은 1년의 시간을 남을 위해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신의 생애를 원망하지 않고 늦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때부터 가는 곳마다 고아원을 세우고 도서관을 세웠습니다. 자신이 모아온 그 모든 돈을 후손들을 위해 쓰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는 선교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미국 YMCA도 그의 지원 하에 뻗어나갔습니다. 우리나라도 그의 지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살다 보니까 하나님의 일에 너무 바빠서 죽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98세에 죽었습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이런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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