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사람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눅 12:35-36)

여러분이 사위 감을 구한다면 어떤 사람을 구하겠습니까?, 장인 어린이 좋아하는 사위 감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딸을 평생 책임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고 해도 그것은 별것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평생 책일 질 수 있는 그런 사람 아니겠습니까? 변치 않는 사람입니다. 한결같은 사람입니다.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햇빛이 비치나 언제나 똑같은 그런 사람입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 그곳에 찾아 같을 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욥을 왜 그렇게 좋아하셨습니까?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변치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그 점을 부각시킵니다. 지금이야 잘 먹고 잘 사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지 그에게 환난이 일어난다면 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욥 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변치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셨습니다. 욥의 믿음을 바로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욥은 자신에게 닥친 환경과 관계없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교회도 몇 분의 성도가 안되지만 저는 참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헌금을 좀 많이 내고 좀 적게 내고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안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남을 후히 대접할 정도로 복을 받기 원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결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교회를 지키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 앞에 먼저 갈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만일 제가 먼저 하나님께 먼저 간다면 여러분 부탁이 있습니다. 이 교회를 떠나지 마십시오. 이 교회를 지키십시오. 지금처럼 한결같은 믿음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왔다 같다 하는 것 별로 좋지 않습니다. 이제는 마음을 정합시다. 살아도 이 교회에서, 죽어도 이 교회에서 죽겠노라고.
그리고 또 정하세요. 우리 집은 하나님을 믿는 집니다. 사탄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집이다. 예수님이 지켜주시는 집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부르시고 이름을 다시 지어주셨습니다. 수리아어로 게바라고 하셨습니다. 게바를 번역하면 베드로입니다. 즉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반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큰 바위 같은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쉽게 요동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변함 없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마음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변함 없는 반석이 되라는 것입니다. 처음 제자를 부르시고 지어준 이름이기 때문에 사실 이 이름은 모든 제자,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베드로가 되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한결같은 사람을 좋아하시고 찾으십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바로 부모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부모님은 자식에게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하나님은 한결같은 사람을 찾으시고, 그분 또한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신 아버지입니다.

[주의 사랑을 주의 선하심]
주의 사랑을 주의 선하심을 주의 은혜를 생각 해 보라
하늘 보다도 더 높으신 아버지의 사랑 크고 놀랍네
아버지 사랑 크고 놀랍네 내 어찌 그 사랑 잊으리
내 어찌 주의 긍휼 잊으리 내 영혼의 모든 소원 만족시킨 하나님
주의 사랑을 주의 선하심을 주의 은혜를 생각 해 보라
하늘 보다도 더 높으신 아버지의 사랑 크고 놀랍네
아버지 사랑 크고 놀랍네 나 길을 잃고 헤맬때
그 사랑 날 찾아 내셨네 내 영혼의 모든 소원 만족시킨 하나님
주의 사랑을 주의 선하심을 주의 은혜를 생각 해 보라
하늘 보다도 더 높으신 아버지의 사랑 크고 놀랍네
아버지 사랑 크고 놀랍네

아버지 사랑은 크고 놀랍습니다.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한결 같으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빈손으로 왔어도, 내가 병든 몸으로 왔어도, 내가 실패하고 왔어도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는 내 편입니다.
“8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9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잠 4:8-9) 이 구절을 승미 자매가 종이 박스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만든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기억하고 그가 어디에 있든지 한결같은 마음과 믿음으로 살면 그가 높아질 것입니다.

한결같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첫째, 본문 35절에 “허리에 띠를 띠고…”라고 했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는 사람입니다. ‘띠다’의 헬라어 원문은 perizwvnnumi(페리존뉘미)는 끊을 조여 매는 것을 말합니다. 허리에 매야 합니다.
허리가 어디입니까? 몸의 중심입니다. 가운데입니다.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라”(잠 3:26) “의지”는 ‘케셀’이라는 말인데 문자적으로는 ‘허리’를 뜻합니다(레 3:4, 10:15, 욥 15:20). 우리가 씨름할 때 “허리를 붙들고 늘어지다”는 말을 합니다. 허리를 붙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캄보디아에 조성규 목사님의 큰아들 수아하고 간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어찌하다보니 다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있는데 제 다리를 두 손으로 꼭 껴안는 것입니다. 이제 이사람 까지 잊어버리면 나는 끝이다 그렇게 생각했나 봅니다.
현대 축구에 있어서도 허리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미드필드가 살아나야 공수전환이 잘 됩니다. 상대방의 공격은 허리격인 미드필드부터 막아야 합니다. 골대 앞에서만 수비하려고 하면 아무리 잘해도 골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허리에 띠를 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에 허리에 띠를 두르셨습니다(요 13:4). 우리는 놀고 먹으려고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 열심히 일하려고 예수를 믿습니다. 아버지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창 35:10-11)고 했습니다. 허리는 이스라엘의 힘입니다. 허리가 생명입니다.
유다 족속에게 축복할 때 “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신 33:11)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다가는 허리가 꺽입니다. 여러분! 감히 하나님께 도전하려고 하지 마세요. 100전 100패입니다. 어찌 사탄을 믿고, 의지하고 살려고 합니까? 사탄은 거짓의 영입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라고 합니다. 아담이 여기에 속았습니다. 죄가 이로 인하여 들어왔습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왕상 18:46)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비가 오게 한 후에 허리를 동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허리를 동이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 것입니다. 축복이 임하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때부터입니다,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5)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두 번이나 우리에게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했습니다(밷전 1:13, 5:5). 겸손이 우리의 허리띠가 되어야 합니다. 교만이 허리띠가 되면 하나님과 싸웁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대항하라고 꼬입니다. 겸손이 없습니다. 사탄에게 종노릇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공의로 허리띠를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등불을 켜고…” 등불을 켜고 있는 사람입니다.
원문의 lucno”(뤼크노스)는 옮길 수 있는 조명기구를 말합니다. 등불은 필요한 것을 비추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출 27:20, 민 8:3) 구약의 성소의 제사장의 임무 중의 하나가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등불이 꺼지면 안됩니다. 이 빛은 세상을 위하여 비추는 빛입니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 빛입니다. 등불입니다. 우리가 인도해야 합니다. 등불이 켜있지 않으면 인도할 수 없습니다. 등불을 켜시기를 바랍니다. 남을 위해 비추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기도합니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시 18: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 달라고 다윗처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잠 20:27),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잠 24:20)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빛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등불을 끄지 않았습니다. 내가 주 앞에 나아갈 수 없었지만 예수님 때문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 이름을 부르세요. 예수 이름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예수가 빛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입니다.

셋째, “서 있으라” 서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옛날 사극 드라마를 보면 왕 옆에는 늘 내시가 따라다닙니다. 그리고 왕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도 내시는 늘 왕이 부를 때 언제든지 대답을 합니다. 저는 드라마에서 한번도 왕이 “거기 누구 있느냐?” 그렇게 부를 때 대답을 안 하는 경우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언제든지 부르면 대답을 합니다. 한결같은 사람입니다. “예 전하! 부르셨습니까?”하고 대답하는 사람입니다. 서 있는 사람은 늘 준비된 사람입니다. 왕이 부를 때 그 부름에 대답할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꺼진 불을 들고 서있는 것이 아니라 불을 붙이고 대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36절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밤새도록 혼인잔치를 하는 이스라엘의 풍습 상 주인이 혼인집에 가서 언제 돌이올지 모릅니다. 주인이 언제 돌아오든 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서 있는 것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강아지를 보면 잠도 안자는 것 같습니다. 주인이 조금만 소리를 내도 금방 일어납니다. 대단합니다. 우리는 주인에게 강아지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출 17:9)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승리의 지팡이를 잡고 섰습니다.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출 33:10) 라고 했습니다. 예배도 서서 드리는 것입니다. 앉으면 눕고 싶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안주하려고 하지 마세요.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유 1:24-25)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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