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이름으로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5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5-12)

아브라함이 벧엘에 이르러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13:4) 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아브라함만 무슨 제단을 쌓은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입니다. 노아 홍수 전에 사람들은 바벨탑을 세우고도 여호와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름을 내는데 열심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만드는 세상은 바벨탑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별것 다해도 다 소용없습니다. 영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영(0)만 잔뜩 모아놓으면 뭐합니까 0이 아무리 많아도 0만 모아 놓은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1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제일 잘 사용한 예가 사무엘상 17:45에 나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고 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은 상대가 안됩니다. 다윗은 아직 너무 어려서 군인이 될 자격도, 전쟁터에 나와서는 안되는 연약한 소년입니다. 그러나 골리앗은 거인으로 최고의 장수입니다. 골리앗의 위세에 이스라엘의 장수들은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돌멩이 다섯과 물매만 들고 거인 골리앗에게로 달려갔습니다. 다윗의 용맹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하나님의 이름’ 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들고 있는 무기보다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을 신뢰했던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면 승리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에게 제재를 당하는 장면입니다. 무슨 말을 했기에 베드로와 제자들이 전하는 것을 막고 섰냐하면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행 2:14) 고 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그러셨으니까 지금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소리를 높여서 전합니다. 이 예루살렘 장소가 어디입니까 얼마 전에 예수님이 이곳에서 유대인들에게 붙잡히고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신 바로 그 장소입니다. 살기가 아직 가시지도 않은 그 예루살렘 광장입니다. 예수님이 제판을 받으실 때 도망간 제자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먼저 죽은 가룟유다 위에 열 한 제자가 함께 예루살렘 광장에 모여서 큰 소리로 전합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이 이야기를 듣고 가슴을 치며 회개한 사람이 하루에 3천명씩(행 2:41) 늘어나는 것입니다. 온 백성이 찬양하고 백성들은 제자들을 칭송하고 구원받는 성도는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바로 사도행전 3장으로 넘어가서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는데 나면서부터 못 걷는 이를 사람들이 메어다가 성전 미문에 두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합니다.” 이 때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 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향해 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

앉아있지 마세요.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의학이 상당히 발전을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죽어야 하는 어지간한 병은 요즘은 약만 먹어도 됩니다. 잘못된 것은 잘라내고 꼬매면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 못하는 것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 큰 병원 보세요. 장례식장이 있습니다. 아니 왜 병원에 장례식장이 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죽으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살려서 내보내야 하는 것이 병원 아닙니까 최집사님 나가시는 병원에는 장례식장이 없습니다. 그런 병원이 좋은 겁니다.

본문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제자들의 권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요한과 베드로는 자기에게 없는 것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물질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그에게 돈은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 안에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많은 돈도, 가문도, 지식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는 가장 부요한 자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행복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부자입니다. 우리는 가난할 때가 한 번도 없습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어린 나이에도 우리 집이 왜 그렇게 가난한지요. 그래서 제 소망은 돈을 많이 버는 겁니다. 부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돈버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붙어는 한번도 저 자신이 가난하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부자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이 없었습니다. 없어서도 줄 수 없었지만 베드로는 그보다는 더 큰 선물을 그에게 주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돈보다 가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것이며 소중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은 우리의 길, 생명, 구원, 선한 목자가 되셔서 항상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가 일어나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소식이 예루살렘 산헤드린공의회에 전달되었습니다. 지금 힘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대적 자들과 사탄은 예수 이름에 능력이 있음을 더 잘 압니다.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행 4:17-18) 고 했습니다.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행 5:40) 라고 했습니다. 예수 이름을 부르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렇다고 안 부릅니까 능력이 일어나는데요.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 4:41) 고 했습니다. 예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예수 이름이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렀다고 효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예수 이름이 능력입니다. 예전에는 ‘예수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별로 들리지 않습니다. ‘쟁이’는 요즘말로 하면 전문가라는 말입니다. ‘예수에 미쳤다’ 라는 말입니다. ‘올인’ 했다는 말입니다. ‘오직 예수뿐인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같은 사건을 놓고 두 가지 반응을 합니다. 참 잘했다. 정말 기뻐할 일이다.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을 예수가 해 주었으니 감사하다.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과 누가 시켜서 했느냐 그렇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데 누가 시켜서 합니까 또 누가 시켜서 했으면 무슨 상관입니까 그런데 사람은 이요 갑자기 반응이 나오는 것이 아니랍니다. 평소에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있었기 때문에 같은 사건을 놓고도 반응이 다른 겁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쳐주니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의 질문이 뭐냐하면 본문 7절에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가 많이 들어본 질문 같습니다. 바로 적대자들이 예수님께 했던 질문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마 21:23) 고 합니다. 누구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가르치느냐 그런 이야기입니다. 권세, 권위를 너무 좋아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자기들의 권세만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온통 도적의 소굴로 만들어 놓고, 허세와 남에게 보이려는 외식으로 가득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가 이런 모습이 되면 안됩니다. 교회의 모든 권세와 권위는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13) 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 사회가 왜 자꾸만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 이 문제를 분명히 안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문제가 없습니다. 권세와 영광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서민입니다, 우리는 작은 교회입니다.” 하고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아무 힘이 없는 백성들이 무슨 권세가 있겠습니까 언제부터 권세가 서서히 생깁니까 돈이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입니다. 사람들이 따르기 시작할 때부터입니다. 자리가 높아지기 시작할 때부터입니다. 만나기가 쉽지 않을 때부터입니다. 이런 분은 권세가 생기기 시작하는 겁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권세와 영광은 아버지께만 있습니다. 우리 같은 죄인이 무슨 영광을 받습니까 무슨 권세를 말합니까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행 8:12) 라고 말합니다. 전도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천국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들이 다른 것을 많이 말하지만 사실 별로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예수의 이름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이름으로 힘입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우리 영의 119입니다. 언제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부르면 예수께서 언제든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 잃어버려도 예수님의 이름을 기억하시어 구원을 받으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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