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좋은 병사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1-4)
 

제가 지난 목요일에 안국동 근처 교회에서 세미나가 있어서 강의하고 오는 길에 인사동에서 사진 몇 장 찍으려고 들렸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걸었는지 종로로 나왔습니다. 다시 나온 김에 광화문 들려서 세종대왕상도 찍고 변화된 광화문 거리를 보려고 갔습니다. 거기서 갑자기 청와대 쪽을 바라보고 경복궁을 가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처는 수없이 지나다녔지만 늘 그 안에는 들어가 본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면 들리는 곳 중의 하나가 왕궁인데 제나라 왕궁도 보지 않은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3,000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습니다.
경복궁은 1395년(태조 4년)에 창건하였습니다. ‘경복(景福)’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왕과 그 자손,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 광화문은 공사 중이기 때문에 옆으로 돌아 들어갔습니다. 광화문 다음에 나오는 곳이 흥례문입니다. 흥례문 앞까지는 입장료를 받지 않습니다. 그냥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바로 나오는 곳이 국보 223호로 지정되어있는 근정전입니다. 그 뒤에 왕과 신하들이 정치를 논하던 사정전이 있고 그 뒤에 침전이 있습니다. 근정전 왼쪽으로는 경희루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동궁이 있습니다.
동궁쪽으로 나가면 국립민속박물관이 있습니다. 1993년 국립중앙박물관 청사로 사용하던 건물인데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이곳에 민속박물관을 만든 것입니다.
경복궁에서도 제일 많이 눈에 띄는 관광객은 일본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을 안내하는 안내인은 열심히 설명하고 일본 사람들은 잘 듣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부끄럽지만 근정전을 가까이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근정전이 눈앞에 들어오는 순간 조선의 위엄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나치게 불필요하게 외모 중심으로 치장하지 않은 실제적이면서도 규모 있는 건축물이 꼭 조선에 맡는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왕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국립민속박물관에 들려보았습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이렇게 발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역사가 있습니다. 저는 영국 대영 박물관도 들러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것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로마에서 가져다 놓은 것이 거의 다였습니다.

우리민족을 어디에다 내 놓아도 자랑스러울 만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광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옥의 티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민속박물관을 거의 관람을 마칠 때 즈음에 너무 많이 걸어서 지쳐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광화문 옆으로 들어와서 처음 대한 흥례문 앞에 근위병들이 생각났습니다. 관광객을 위하여 조선시대 복장을 하고 교대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적지 않이 실망했습니다. 그들은 관광객들하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사진 찍어주는 것이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 만큼이나 지쳐 있었습니다. 힘이 하나도 없이 마치 조선시대 복장이 그래서 그런지 신발을 질질 끌며 힘없이 걷는 모습에서 조선의 위엄과 대한민국의 위엄이 다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합니다. 영국에 갔을 때, 영국 왕궁 앞에서 본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눈빛이 빛나고 차렷 자세로 서 있는 부동 자세는 위엄이 있었습니다. 그저 사진 찍으려면 옆에 살짝 가서 찍는 정도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쓴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해병대로 바꿔야 합니다. 해병대가 안되면 최소한 헌병으로 모두 교체해야 합니다. 어설픈 서비스는 오히려 국가에 대한 이미지만 실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자신이 어설픈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바울은 본문 3절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빌레몬서 1:1-2절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라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2:25절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좋은 병사는 누구입니까? 어떻게 해야 예수의 좋은 병사가 됩니까?
첫째, 병사는 단순합니다. 복잡한 사람은 좋은 병사가 되기 어렵습니다. 지혜롭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을 주님께 맡겨야합니다. 군대에 들어왔으면 뭐만 잘하면 좋은 군인이 됩니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군대 생활에 적응을 잘하는 사람은 모두 단순한 사람입니다.
명품을 만드는 곳은 여러 가지 취급 안 합니다. 한가지만 합니다. 음식점도 잘하는 곳은 여러 가지 하지 않습니다. 한 두 가지만 합니다.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는 사람은 단순합니다. 자기가 다 성경보고 연구한 것 아니잖아요. 그럼 누구 말 들으면 됩니까? 오래 동안 연구하고 성경보고 신앙 생활한 목사의 말을 들으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교회 다니는 성도님들을 보면 저는 복잡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 신앙 참 단순합니다. ‘오직 예수’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루터 때 종교개혁이 성공한 것도 단순함에 있습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단순한 핵심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 1절에 바울은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라고 말합니다.
찰스 스탠리의 아들로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앤디 스탠리가 있습니다. 그가 사역 중에 큰 어려움을 격게 되어 낙심과 좌절 속에 헤맬 때였습니다. 그 때 나이드신 성도님이 심방을 요청하여 그 집에 갔습니다. 그 자리는 앤디 스탠리를 위로하기 위한 심방요청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화가 루벤스가 그린 “사자 굴의 다니엘”이라는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그림에 무엇이 보이십니까?” “사자 몇 마리와 굴 안으로 들어오는 빛줄기, 그리고 다니엘이 보입니다.” 그랬습니다. “더 자세히 보십시오.” 나이든 성도가 말했지만 앤디는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나이든 성도가 말하기를 “다니엘의 눈빛을 보십시오. 그의 눈은 사자가 아닌 하나님을 향해 있습니다.” 앤디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무서운 사자를 바라봅니다. 풀리지 않는 세상일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만, 예수 그리스만 바라봅니다.

셋째,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2절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합니다. “명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선생이 되면 좋은 제자가 생깁니다. 내가 먼저 충성스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충성이라는 말 가운데서 자꾸만 어떤 일을 생각합니다. 마치 큰 일을 꾸며야 충성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 우주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죄 짓지 않고 잘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죄에 대해서 무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루터는 수도원에서 생활하면서도 죄에 대해서 민감했습니다. 그가 어려서 수도원에 있을 때 너무 자주 죄에 대해서 가져 오니까 교부가 말하기를 “루터야 죄를 한꺼번에 모아 가지고 오너라”고 했다지 않습니까. 수도원에서 뭐 죄 질 일이 있겠습니까? 다 마음으로 지는 것이지요.

구약성경에 보면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을 하고 70년 만에 돌아온 이야기가 에스라서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80년이 더 지나서 2차 귀환이 에스라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성전에 드릴 금, 은 각종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바칩니다. 여기까지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잘못을 회개하기 위한 제사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에스라서 9장에 보면 에스라가 당시에 이스라엘 땅에 살고있던 이방 민족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혼인하여 섞이게 되자 하나님 앞에 대성통곡을 하며 옷을 두 번씩이나 찢고 회개 기도를 합니다. 자기 민족을 위하여 모세도 하나님께 회개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저는 에스라 만큼 통회하며 회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자신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말을 못합니다. 말하기조차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포도(捕盜) 군사의 은동곳 물어 뽑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둑으로 잡히고 나서 옥으로 끌려가면서도 포도 군사의 상투에 꼿힌 은동곳을 뽑는다는 것입니다. 도둑의 버릇은 좀처럼 고치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말로만 회개했다고 하면 그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원래가 죄인입니다. 그만큼 죄 짓는데 익숙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시는 죄 짓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 쳐야 합니다. 죄를 그저 날름 날름 고기 잡아먹듯이 하면 언젠가는 농약 먹은 새나 물고기 먹다가 죽습니다. 반드시 죽게되어 있습니다. 죄는 처음에는 작은 것이지만 나중에 점점 커집니다. 이 죄 때문에 사람이 망하는 것이 아닙니까? 결국 충성되지 못하는 것도 이 죄로 인함입니다. 죄를 밤 먹듯 짓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명장이란 좋은 선생이란 철저하게 회개하고 다시는 죄 짓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병사들하고 참 오랫동안 지냈습니다. 자신을 포로로 고린도에서 로마까지 압송할 때 로마 병사가 맡았습니다. 사도행전 21장에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귀환 했을 때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몰매를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이 소문이 로마 군인 천부장에게 들리고 그가 와서 이 사태를 진정시켰습니다(31-32).
사실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 군사는 예수님을 처형시킨 장본인이며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자기 나라를 쳐들어와 지배하는 군인에 불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병 하나 하나를 볼 때 그 정신을 본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지키면서 집에도 가지 않고 사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마 이러한 로마 군병의 모습을 보면서 저와 같은 생각을 했니 봅니다.
훈련된 군사, 정신이 살아 있는 군사,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군사 바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이런 모습을 본 받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 연안에 있던 고대 도시 폼페이(Pompeii)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상업도시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폼페이는 베수비우스(Vesuvious)산의 화산 활동으로 그 주변은 온천으로 인해 로마 귀족들의 요양과 휴식을 위한 별장과 신전과 극장들이 지어졌습니다. 환락의 도시였습니다. A.D. 79년에 로마 황제 티투스(Titus Vespasianus Augustus)가 등극했습니다. 그 해 베수비오산은 대 폭발하였습니다. 화산재가 온 도시를 덮어버렸습니다. 삽시간에 매몰되어 그 자취가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이후 1748년 나폴리의 국왕 샤를로(Charlot)에 의해 그 흔적이 드러났으며, 1755년 독일의 고고학자인 요한 빙켈만(Winckelmann)이 로마서를 뒤지던 중 그 곳이 로마의 도시 중 하나인 폼페이임을 확인했습니다. 폼페이의 발굴 중 벽화를 포함한 초기의 발굴 품은 현재 대부분 나폴리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거의 1700년이 지나 화석이 된 채 발견된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 처참했습니다. 화산이 폭발하는 엄청난 재앙의 절박한 순간 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발굴되었습니다. 거대한 화산 폭발에 황급히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하여 각양각색 사람들의 모습이 발굴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부둥켜안은 채 숨진 것도 있었고, 어떤 여자아이는 손에 황금노리개를 그대로 움켜 쥔 채 달리다가 넘어진 자세로 숨져있었습니다. 또한 뜨거움에 견디지 못하여 웅크린 채 입을 크게 벌리고 굳어버린 안타까운 모습도 있었고, 죽음이 언제 오고 있는지 전혀 상관없이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채 굳어진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성곽을 지키는 로마병정의 모습입니다. 그는 자신의 초소에서 자리를 지키다 의연히 죽음을 맞이한 모습으로 발굴되었습니다. 그 로마병정은 다른 사람들처럼 도망가지 않았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꼼짝 않고 창을 들고 서있는 참 군인의 모습으로 발굴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화산이 폭발한다 할지라도 이 로마병정처럼 도망가지 않고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그리스도의 병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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