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영광을 보라!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사 60:1-4)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가?, 어떤 계기가 주어졌기에 변화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서 사람은 만들어지고 다듬어 진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 많은 교육과 가르침을 주었는데도 도무지 변화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느 설문조사에 보니까 목사님들이 제일 무력감을 느낄 때가 어느 때냐고 물었습니다. 첫 번째가 “수많은 설교를 통해서도 꿈쩍도 안 하는 사람들을 볼 때”라고 대답했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교육을 통해서 알기는 아는 것 같은데 그것 가지고는 변화가 안됩니다. 사람이 움직여지지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사람은 180도 달라집니다. 새로운 감동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사무엘상 4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우다가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며느리 비느하스가 임신하여 아기를 낳게 되는데 그 때 시아버지와 남ㅍ편이 죽었다는(19)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게서 떠났다고 한탄하면서 아기의 이름을 ‘아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꿰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 하였더라”(삼상 5:22)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궤와 하나님이 함께 했습니다. 성전 제일 안쪽에 바로 이 하나님의 궤가 놓여 있었습니다(대하 6:11). 여기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 비느하스는 믿음이 좋은 여자입니다. 자기가 지금 아들을 낳았지만 하나님의 궤를 생각하면서 자기가 아들을 낳은 것에 대해서는 20절에 관념하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아이(아가봇)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대제사장이 될 아들입니다. 그러나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니 자기 아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궤 없는 제사장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전 총신대 총장을 지내신 김의환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일제 시대 때 초등학교를 다니셨습니다. 4학년 때 일본 선생님이 교실마다 걸려있는 일본 신사의 검이라고 하면서 신사의 실제 검이 있는데 그것은 2300년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김의환 4학년 학생은 그 검이 2300년 되었다면 녹슬어서 칼이 부러져 지금까지 있을 수 있겠느냐고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순전히 과학적 호기심으로 질문한 것인데 담임 선생님은 자기 집으로 끌고 가더니 칼을 뽑아들고 흥분을 해서 목에 겨누었다 떼었다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신사의 검이 부러졌다”고 말한 것은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는 너를 지금 죽일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분을 못 참고 한참을 칼을 가지고 목을 겨누었다고 합니다. 한참을 그러더니 분이 누그러졌는지 그만두고 다음날 선생님들을 다 소집하고 이 학생을 당장 퇴학시켜야 된다고 했답니다. 그 때 부 교장이 한국선생님이었는데 이 학생을 퇴학시키려면 먼저 나를 해고하고 이 학생을 퇴학시키라고 하면서 만일 퇴학시킨다면 나는 일본 고등법원에 이 사건을 상고하겠다고 하여 그냥 없던 일로 마쳤답니다. 일본 신사도는 상징이지요. 무슨 그 검이 일본을 지켜주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궤가 없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궤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에게 예수가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예수 없는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없습니다.

김의환 목사님은 그 때부터 반일감정에 사로잡혀 꼭 일본을 원수로 갑아 주리라는 생각 속에 공부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 믿고 보니 일본사람이 그렇게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그래 일본에 선교사로 가기로 생각하고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OMF 국제 선교단체에서 싱가포르에서 훈련을 받고 일본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비자를 주지 않고 입국을 거부하여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를 하실 수밖에 없었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모를 때는 ‘이브람’(큰 아버지) 였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의 이름은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너는 더 이상 ‘아브람’ 큰 아버지가 아닌 ‘아브라함’ 열국의 아버지라고 고쳐 주셨습니다. 큰 아버지는 유대인만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열국의 아버지는 온 나라의 아버지입니다(창 17: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두면 안됩니다. 물은 가두면 썩습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움직여야 됩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일단은 편안한 같지요. 그러나 실상은 죽어 가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움직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이 우리가 복된 것 8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8가지 복이지만 제일 중요한 한가지가 있습니다. 9절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화평케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잖아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다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부분적인 복으로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다릅니다. 화평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요 화평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영광입니다. 이 세상에 더 이상의 영광은 없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용서와 회개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베풀기 위해서 주십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라고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 19절에 나옵니다.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거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혼자 잘먹고 잘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은 베풀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려고 합니다.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주면서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에스겔이 과학적 증거들을 들이대면서 “절대 안됩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 37:3)라고 대답했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한국의 축복은 하나님이 선교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2007년 여름 사태 이후 한국인들은 모두 철수하라는 정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5년 간 사역한 C선교사 부부는 철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문화사역을 하는데 그들의 언어 문화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TV방송국의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곳 방송국과 우리나라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그곳에 계속 있을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자 대장금을 방영하고자 지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대장금이 방영된 후에 한국을 예의 바른 나라, 음식이 발전한 나라로 다시 보는 것입니다. 한류 열풍은 한국선교의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입니다. 동시에 그 메시야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본문 4절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고 하십니다. 사방을 보세요. 넓게 보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세요. 사람들이 빛 가운데로 나아옵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로 나아옵니다.

선교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열심히 돈 벌어서 헌금하는 것도 선교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선교학적 용어로 멤버케어, 토탈케어 라는 말이 요즘 등장했습니다. 한마디로 선교사를 잘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쉽게 풀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보니 항상 마음의 무거움이 그분들에게 존재합니다. 어떤 선교사는 필리핀에서 빠찡꼬에 빠져서 패인이 되다 시피한 분도 있습니다.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쟁을 하다보면 사상자가 나오게 됩니다. 그분들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
캐나다에서 오신 분이 이야기하는데 “수다 선교회”가 있답니다. 참 좋은 선교회입니다. 우리는 정신과 상담 받으라고 하면 꼭 무슨 병자처럼 취급되고 또 그것도 부담이 됩니다. 그런데 수다 선교회는 너무 좋습니다. 부담 없이 수다만 떨면 됩니다. 수다 떨다보면 스트레스 다 날아가고 회복이 됩니다.
지난번에 한 선교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오전에 오셨는데 그분하고 저녁까지 함께 지냈습니다. 처음에 그 선교사님은 힘이 하나도 없이 축 처져서 들어오셨고 저는 쌩쌩한 체 오전에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선교사님은 살아나고 저는 축 쳐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선교를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나누어야 합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북한에서 태어나 미국 가서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어차피 고향을 떠난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미국까지 가게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분들 중에 한00라는 분이 계십니다. 미국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면서 집도 있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진이 일어나 집이 부서지고 보험도 들지 못해 한푼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망한 것은 물론이지만 정신적 충격이 더 컸습니다. 그 때 북한의 굶어죽는 어린이들이 생각났습니다. 두만 강변을 다녀온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부인에게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고 하면서 나 북한 사람들 위해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짐 싸주면서 가라고 해서 현재 12년째 사역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북한에 들어가서 김일성 초상 앞에 데리고 가더랍니다. 그 앞에서 고개 안 쑥이면 큰일입니다. 그런데 절 안 하니까 남자 몇 명이 오더니 끌고 가더랍니다. 그러더니 당신이 진짜 예수쟁이라고 하면서 북한에 빵공장 만드는 것을 허락해서 현재 매일 3만 명에게 빵을 무료로 급식해 주고 있습니다.

내년 2010년이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선교대회가 열린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10년 6월 14일(화)에 열렸습니다. 한국에서도 15명이 참석했습니다. 이중에는 게일 선교사, 마펫 선교사, 언더우드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윤치호 선생이 포함되었습니다. 그 때 보고한 내용에 보면 당시 한국은 960만 명의 인구 가운데 20만 명의 성도로 급성장했다고 했습니다. 또 예배당을 짓기 위해 자신의 소를 파는 이들이 있었다고 보고합니다.

지금 한국처럼 축복 받은 나라가 없습니다. 제사장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종엽이가 어제 총신대학원 시험 치렀는데 경쟁률이 5대 1입니다. 장신대원도 다른 신대원도 비슷합니다. 4명은 그냥 집에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 가면 기가 막히게 잘 지어진 캠퍼스 학교가 있습니다. 고베신학교입니다. 미국의 어떤 대학교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역사도 100년이 넘습니다. 그런데 학생이 5년 전에 12명이었는데, 그 중에 한국 학생이 3명입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현재 한국학생이 6명, 일본 학생이 1명 있답니다. 유럽 신학교의 고민도 다르지 않습니다. 신학생이 오질 않는 답니다. 독일은 목사만 되면 국가에서 목사에게 필요한 것은 다 지원해 줍니다. 1년 4차례 양복과 안경 등은 다 해 줍니다.
그런데 독일 교회를 빌려서 한인교회하던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꽤 큰 교회라 그 교회는 독일 목사가 3명 있는데 돌아가면서 일한답니다. 주일에 한국 목사님이 필요한 일이 있어 담임 목사님을 만나야 되는데 그 목사가 없어서 다른 목사님에게 물어 보았더니 교회에 안 나왔답니다. 주일날 목사가 교회에 안 나온 겁니다. 그것도 담임 목사가 말입니다. 그래서 물어 보았답니다. 왜 교회에 안 나왔냐고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이웃교회는 이혼해서 목사가 그 교회에서 쫓겨났답니다. 이혼 당하는 것보다, 집에서 아이들하고 놀아주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하더랍니다.
짐 싸서 북한에 보내준 집사님이 잘하시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경찰서에서 나온 아들을 다시 어머니가 돌려보냈습니다. 너 혼자 나와서 잘 살아서 뭐하냐고 다시 가라고 해서 가서 순교하셨습니다. 한국 여자들 좀 독한데 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위해서 잘하는 것입니다.

한국인에게는 뜨거움이 있습니다. 정이 있습니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면 안됩니다. 머리에 열 받으면 안됩니다. 머리는 서양 사람들이 발전했습니다. 시스템을 잘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가슴이 없습니다. 뜨거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뜨거움이 있습니다. 정이 있습니다. 밥 먹다가 한사람이 더 오면 국에다 물 좀 더 붓고 숟가락만 올려놓으면 몇 명이 더 와서 먹어도 문제없습니다. 침대도 그렇습니다. 이부자리 하나 더 피면 됩니다. 좀 끼어서 자면 다 잡니다. 한국인은 융통성이 있습니다. 긍휼이 있습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따뜻한 가슴이 있습니다. 정이 있습니다. 눈물이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만 모시면 됩니다. 바탕이 좋습니다. 옥토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외국 선교사님들도 한국사람처럼 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 보았습니다. “오늘은 코리안 스타일로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울고불고 뜨겁게 기도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코리안 스타일은 열정입니다.
우리에게 힘이 있다면, 우리에게 물질이 있다면, 우리에게 지혜가 있다면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축복이 우리 주앙교회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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