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옛날에 어느 성문 곁에 지혜로운 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한 청년이 와서 묻습니다.
“할아버지! 이곳 살기 좋습니까? 한번 정착해 볼까 해서 와 봤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묻습니다. “자네! 전에 살던 곳은 살기 괜찮았는가?”
“네. 괜찮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노인이 말합니다. “이곳도 살기 괜찮은 곳이네.”

얼마 후에 다른 청년이 와서 묻습니다. “할아버지! 이곳 살기 좋습니까?”
노인이 역시 묻습니다. “자네가 전에 살던 곳은 어땠는가? 살기가 괜찮았는가?”
“아주 지옥 같은 곳이었죠.”
그 말을 듣고 노인이 말합니다. “이곳도 아주 지옥 같은 곳이네.”

같은 환경에서 어떤 사람은 행복하지만 어떤 사람은 불행을 느낍니다. 행복은 환경이 결정하지 않고 감사하는 태도가 결정합니다.
죤밀러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남아메리카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끊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릅니다. 그러니까 그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어 가지고 깨끗한 옷을 집으로 가져갑니다. 그 모습을 본 외국 관광객이 멕시코 안내원에게 물었습니다.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습니다.” “왜요?”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거저 쓸 수 있으니까요. 이곳 사람들에게는 온천과 냉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군요?” 그랬습니다.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 “천만에요.” 그럽니다. “왜요?” “이곳 아낙네들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왜 그렇지요” “비누가 나오지 않으니까요” 그랬습니다. 우리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까 보따리 내놓아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받은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의 힘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충북 음성의 ‘꽃동네’ 입구,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글귀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받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날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받은 것입니다. 6절에 “받았으니” 라고 말합니다. 건강을 받기도 하고 물질을 받기도 하였으며 부모도 자녀도 귀한 달란트도 모두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 성경은 여러 가지로 감사에 대한 교훈을 주십니다. 골 3:15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만사가 불만입니다. 부모님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자녀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직장 동료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정치에 불만이 많습니다. 사람에게만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도 불만이 많습니다. 여러분 내가 원하는 세상 만들어 놓고 감사하려고 하면 죽을 때까지 감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본문 6절을 봅니다.
“호스(@W”) 어떤 방법으로 / 운(ou+’n) 따라서, 그러면 / 파랄람비티(parelavbete) 받아들이다, 교재하다” 이어서 “그 그리스도 예수 그 주”라고 나옵니다. “그(투)”(관사)가 두 번 나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투) 그분이 곧 메시야이고 그분이 곧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이며 그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을 알면 됩니다.

누구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골 3:17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분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다른 신에게 비는 분들이요 감사하려고 가는 것 아닙니다. 복 달라고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분들이요. 복만 달라고 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복 달라고 하기 이전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 감사해야 됩니까? 고후 9: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은사가 없다 구요. 무엇을 원하십니까? 박태환 같이 수영을 잘하기 원하십니까? 제 이름이 이영제(李泳濟)입니다. 한자로 보면 길 영 자에 삼수변이 있는 영자이고 제자는 건늘 제 또는 이룰 제 입니다. 이 글자에도 삼수변이 있습니다. 저는 이름대로 하면 물에서 놀아야 합니다. 수영선수가 되어서 이루어야 하는데 저는 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 속에서 뜨지도 못합니다. 이발소에 가서 머리 감겨주는 것 어려서부터 싫어했습니다. 코에 물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이요 다른 한쪽이 부족하거나 못하면 다른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제주가 많은 사람이요 목회를 잘 못합니다. 그냥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목회만 해야 됩니다. 제가요 학벌이 좋으면 교수하라고 해서 컴퓨터선교회 잘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러줘도 가지 못하니까 컴퓨터 앞에 매달려서 선교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따라합시다. “부족한 것이 장점이다.”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은사(달란트)는 무엇입니까? 롬 6:18 “죄에게서 해방”을 받은 은사라고 말합니다. 이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7절을 봅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뿌리를 박으세요. 요한계시록 5:5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가 승리자입니다. 이제 마음을 확정하세요. 이러 저리 보아도 우리가 진정 따를 것은 예수뿐입니다. 이제 방황 그만하실 때 되었잖아요. 사춘기도 아니잖아요. 예수께 뿌리를 박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6절 “그 안에서 행하되”라고 했습니다. 어려서 사방치기 놀이 한 것 생각나시지요? 밖에 나가거나 금을 밟으면 죽는 것이고 금 안에 들어가면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 잘 믿는 것인가? 주 안에서 행하면 됩니다. 일을 하는 것도, 결혼 생활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먹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주 안에서 해야합니다. 운동 열심히 하구요 주 밖에서 살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분은 주 안에서 입니다.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찬송가 316장과 같이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예수 안에서만 보장되고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뿌리를 박지 않으면 죽습니다. 말씀에도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도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도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뿌리가 깊이 박혀 있을 때 폭풍우가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신앙생활은 주 안에서 세워져 가는 역사입니다. 마치 건축물이 하나 하나 세워져 가듯이 세워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배우지 못하면 세워지지 않습니다.
골 1:7 “에바브로에게 너희가 배웠나니”라고 나옵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에바브로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통하여 복음을 받았습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을 통해서 받았고 시몬은 형제 안드레를 통해서 받았습니다. 저에게 복음을 전한 분은 자매입니다. 성만 말씀드리면 “강”입니다. 이 자매가 세 남자를 전도했습니다. 저보다 일년 선배인 이영표를 그리고 저 이영제를 그리고 1년 후배인 이영도를 전도했습니다. 모두가 “이영..”으로 시작합니다. 경기도 남양주군 화도면 마석의 화도교회 출신입니다. 그런데 3명 모두 신학을 했습니다. 1년 후배인 이영도는 화곡동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전도한 “이..”는 본인이 데리고 삽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어야 됩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라고 합니다. 이 전하는 교훈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의 친구요 구주이신 것을 전해야 합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주 안에 뿌리를 박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골 3:16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 감사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자굴속에 던져지면서도 감사했습니다. 일제시대 때는 신사참배 거절로 순교하면서 감사했습니다. 6.25 때는 총에 맞아 죽으면서 감사했습니다. 재산을 많이 물려받은 자식이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 아닙니다. 건강하다고만 감사하는 것 아닙니다.

일본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질이라는 질병으로 뇌성마비를 얻어 듣는 것과 보는 것과 눈꺼풀 움직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된 사람, 우찌무라 간조가 있었습니다. 그의 몸은 머리만 크게 발달하고 나머지는 어린아이의 것 그대로인 채 흐느적거리는 그야말로 볼품 없는 몰골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어머니 한 분밖에는 없었는데 어머니가 밖에 나가실 때 성경책을 머리맡에 펴두고 머리를 받혀놓고 나면 돌아오실 때 까지 그 장만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린도후서 12장을 펴놓고 나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린도후서 12장만 읽는 것이지요. 고린도후서 12장을 읽어 내려가던 중이었습니다.

고후 12:9-10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주님이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하신 말씀을 자기에 대한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바울은 자기처럼 눈에 박힌 가시를 제하여 주시기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고 한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는 어떤 사람을 찾아가도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뒤늦게 책과 방송을 통하여 완악한 일본인을 회개시키는 사도로 쓰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선택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변모되기까지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자신을 회개시키려 찾아온 목사님 덕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지은 시 “괴롭지 않았더라면” 입니다.

만일 내가 외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을

만일 모든 형제 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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