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오전예배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오늘은 신명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모세가 다섯 권의 책을 섰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입니다. 이 다섯권의 책이 토라입니다. 율법서입니다. 율법이란 하나님의 모르는 민족, 사람들에게 내리신 구체적인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킴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하나님의 민족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 시작을 하나님은 모세하고 같이합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 안 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모세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였습니다. 오늘 신명기는 그 마지막에 있는 책으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신세대에게 설교한 것입니다.
본문은 레위기입니다. 설교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광야 생활을 회고(1:1-4:43)
2. 율법 설명(4:44-28:68)
3. 추가로 주어진 율법(모압 평지에서)(29-34장) 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의 일생을 두고 험난했다, 파란만장했다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해도 모세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세는 죽임을 당할 뻔한 아이가 갈대상자에 실려 강물에 버려져 바로의 공주가 데려가 키웠습니다. 왕궁에서 화려하게 살았습니다. 고생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자기의 신분을 알았습니다. 자기는 바로의 자식이 아니고 저 밖에서 고역 하는 유대인이다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겠습니까? 그래서 동족의 아픔을 참지 못하고 뛰어나가 그만 살인을 하게 됩니다. 그 일로 미디안 광야로 도망 나와 40년을 살아갑니다. 아내 십보라는 그렇게 좋은 여인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살아갑니다. 왕궁에서 부러울 것이 없이 살던 사람이 광야에서 살아갑니다. 40년 동안 말을 거의 말을 안하고 산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저 양이나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모세를 찾으셨습니다. 이제 바로에게 가서 네 백성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말도 못하고 지팡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80세입니다. 힘도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바로에게 가고 출애굽을 합니다. 바로 이 기간의 이야기를 오늘 신명기에서 첫 번째로 ‘광야 생활을 회고(1:1-4:43)’을 말한 것입니다.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참 행복합니다. 그 첫 번째 이유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 자체로 행복한 것입니다.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부입니다. 모세는 그런 점에서 부러운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최초의 사람입니다. 비록 혼자 다 기록 안 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그 시대에 모두 정리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설교한 말씀입니다. 선포한 말씀이 설교이고요, 기록한 말씀은 성경입니다, 보여지고 나타난 말씀이 자연입니다. 성육신 된 말씀은 예수님입니다. 이중에서 모세는 두 가지를 했습니다. 말씀을 기록하고 설교했습니다. 나중에 두 가지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만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제일 소중한 일이 무엇이냐 설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위대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사역의 일이 네 가지인데 우리가 마지막 남은 하나를 활 수 있으니까요.

모세의 오늘 설교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설교입니다. 이것이 설교의 모델입니다. 설교는 이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도 모세처럼 따라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2-3)
40년 광야생활 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날을 기억하고 현재를 잘 살아야 합니다. 40년광야생활을 하게 하신 것은 ‘너를 낮추시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추지 않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모세는 온 땅의 모든 사람보다 더 온유하기 때문에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독하고 악하면 하나님이 사용 안 하십니다. 잘나고 똑똑해도 가진 것이 많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낮추시기를 바랍니다. 겸손해야 하나님의 말씀도 들어오고 깨닫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루에 성경 한 권을 다 설교해야 되니까 제가 모세보다 나은 것입니다. 모세는 최소한 몇 일은 했을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한 세 달쯤 한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핵심에 빨리 도착해야 합니다.

신명기의 핵심은 ‘쉐마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입니다.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입니다. 자 이게 설교입니다. 아직 제가 뭘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지요. 레위기는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율법은 거룩한 백성을 삼으시기 위하여 내리신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표면입니다. 어떤 책이 있으면 반드시 그 저자의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다 안 것입니다. 뒤에 숨겨진 것이 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거 약간 깊은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냥 가까이 가서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나 사랑해 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서은이가 하도 답답하니까 내 무릎을 때리고 나갔습니다. 내가 눈치가 없다는 것이지요. 저번 주에 은성이가 나하고 놀다가 친해지니까 다가오더니 손으로 탁 치고 가는 거예요. 이제 친해졌다는 표현입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누가 할 수 있어요. 모세는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말고는 하나님을 모세만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 34:10)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신 분입니다. 세상에 어떤 신도 쉼을 준 신은 없습니다. 성경에만 나와요, 안식일, 안식년 개념이 성경에만 나와요. 쉬라는 것이 예요.
아무리 전쟁이 터져도 나가지 말라는 사람이 성경에 나옵니다.
이것이 인생의 3대 희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녀와 약혼하고 결혼식을 못한 남자,
집을 짓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자,
과일 나무를 심고 그 첫 열매를 따지 못한 것.
이런 일은 일생에 한번이나 서너 번 있을까 말까한 일입니다. 이런 소중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라는 거입니다. 전쟁이 나도 이런 사람은 나가지 말라는 것예요. 하나님은 쉼을 주십니다. 행복을 빼앗지 않습니다. 전쟁은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계명중에 제 4계명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입니다. 우리가 이거 가리킬 때요 하나님을 위한 계명으로 1-4계명이라고 하고,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부터 사람을 위한 계명이라고 하는데 이게 잘못된 것입니다.
제1계명이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제2계명이 ‘우상을 만들지 말라’,
제3계명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입니다. 가만히 보세요. 이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잖아요. 그것을 모세가 한 것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입니다. 우리가 구약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은 율법만 있고, 온통 지키라는 것만 있고 사랑이 없다는 개념입니다. 이것을 누가 그렇게 만들었느냐 유대인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하지만 그 보다 그 율법을 만드신 분이 왜 그것을 만들었느냐, 그 분의 의도가 무엇이냐, 그분의 마음이 어땠냐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했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구약성경을 보면서 율법만 보았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을 만드신 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신명기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24번이나 나옵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율법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한마디로 신명기는 사랑장입니다.

자 성경 몇 군데 찾습니다.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신 4:37)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 5:10)
여기서도 사랑이 먼저입니다.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야지 사랑 없이 계명만 지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은 잊어버리고 율법만 남겨 놓았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부자청년이 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이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니까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 없이 율법만 지킨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16-22)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신 30:20) 고 하십니다. 얼마나 사랑이 많이 나옵니까. 우리가 이런 책을 못 본 것입니다. 어디 구약이 율법만 강조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그 속마음을 누가 알았냐 하면 모세가 알고 설교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셔서 똑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세와 예수님만 바로 본 것입니다.

율법사가 자신 있게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6-40)

복음송 “마음을 다하고 … ”

그리고 오늘 본문은 성경 66권 중에 어떤 구절을 써서 붙여라. 여기에도 붙이고, 여기에도 붙이고, 또 바깥문에도 붙이고 잘 보이는 곳에 붙이고 매일 가르쳐라 하는 유일한 구절입니다. 이것을 바로 붙여야 합니다. 집집마다 붙여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굳이 더 붙이고 싶으면 친교 실에는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교회를 나갈 때에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면 됩니다.
성경에 유일하게 써서 붙이라고 한 것이 이 말씀입니다. 신구약이 모두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말씀 놔두고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이런 것 붙이지 마세요.

제일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음식점이나 회사 같은데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인데요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욥의 친구 수아 사람 빌닷이 욥을 조롱한다고 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성경이 다 하나님의 말씀 아닙니까? 그럽니다.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지만 성경 속에는 사람의 말도 있는 겁니다. 심지어는 사탄의 말도 있습니다. “네 눈이 밝아지리라” 누구의 말입니까? 이걸 안경점에 같다 붙이면 그럴 듯 하지요?, “땅을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이것은 여행사가 좋아할 것 같습니다. 성경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보면 안됩니다.
시골에서 어떤 집은 대문간에 ‘개조심’ 그렇게 붙어요.
처음에 외국에서 온 선교사가 한국사람 문패는 딱 석자이니까 참 쉽죠.
그래서 ‘개조심’을 이름 문패인줄 알고 ‘개조심’씨 계십니까? 그렇게 물어봤대요.

이제 아셨죠, 신명기가 사랑 장이라는 것을 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랑은 다 잊어버리고 껍데기 율법만 들고 있는 거예요.
바울이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롬 2:28)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스킨십이 없답니다. 중국도 합니다. 러시아도 합니다. 지난번에 보니까 김정일도 중국가서 러시아가서 몸을 대고 인사합디다. 그런데 유교가 잘못 들어와서 “남녀유별” 뭐 그러면서 사람들을 떼어놓았습니다. 아이를 안아 주세요. 우리도 이따가 한번씩 껴 안읍시다. 섭섭한 것, 잘 몰랐던 것 한번씩 안으면서 다 날아갑니다. 하나님께도 안기시기를 바랍니다. 요한의 유일한 자랑이 “예수님 품에 안겼던 자라”입니다. 예수님 품에 안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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