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의 예수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말씀(127. 임마누엘의 예수) / 본문 : 마 1:18-25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오늘은 크리스마스주일입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미사(예배)’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리스도께 예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 만족을 위한 날로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선물을 기다리고 어른들은 휴일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예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하지 않는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시면, 동방박사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왕을 찾아갔지만 그에게 경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 찾아갔지만 요셉과 마리아에게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경배는 의례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정성을 다한 경배였습니다. 그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라는 아주 값비싼 예물을 드리면서 경배했습니다(마 2:11).

성탄절은 과거의 사건을 단지 기념하며 축하하자는 것만은 아닙니다. 물론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찾아오신 것을 축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시는 영적인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 사건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어도, 그리고 동방박사들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어도, 헤롯왕은 오히려 자신의 기득권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을 싫어했습니다. 헤롯 왕궁에 있었던 서기관들은 구약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의 탄생이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는 신앙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하고 경배하는 영적 사건이 이번 성탄절에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성령으로 된 것이라(20절)

본문 18절에 보시면, 요셉과 마리아가 서로 정혼(일종의 약혼)하고 동거하기도 전에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이 일 때문에 고민했을 것입니다. 나와 약혼한 처녀가 임신했다는 것은 남자서는 참기 어려운 일입니다. 율법대로 그녀를 정죄하고 돌로 쳐죽여도 시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정리하고 분노의 감정을 가라앉혔습니다.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약혼을 취소하고 모든 일을 없는 것으로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그는 꿈을 꾸게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요셉은 하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싫습니다. 그녀는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습니까? 처녀가 임신을 했다고요. 그녀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제 마음이 허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자상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네 아내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 수없이 많이 약속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성취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 그대로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 5:2) 구약의 예언 그대로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예수님께서도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라.”(요 5:39)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응답이고 성취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성실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둘째,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21절)

본문 21절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을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1)고 합니다. “너희에게 전하노라” 너희가 바로 내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가 2000년 전에 당시 사람에게만 해당된다면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예수님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3)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구원을 주십니다. 그가 누구이든지 상관없습니다.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알렉산더 플레밍(1881-1955)은 페니실린을 발견하여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한 영국의 세균학자입니다. 사람들이 하루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박사님, 박사님께서 지금까지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사람들은 당연히 그가 ‘페니실린’ 이라고 대답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플레밍 박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일생 중에 내가 발견한 것 중에 가장 위대한 발견은 내가 죄인이요 예수께서 나의 구세주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구주,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여러분들에게 구원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23절)

본문 22-23절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성육신 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우리가 이 땅에 살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큰복은 없을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의 이야기입니다. 이 부족에는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해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훈련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마을의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하루는 그를 데리고 밀림 속 깊이 들어갑니다. 그것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택하여 정글 속으로 정처 없이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칼 한 자루를 손에 쥐어주고 그곳에 혼자 남겨놓고 어른들은 돌아와 버립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깊은 밀림 속에서 혼자 밤을 지새워야만 합니다. 사나운 맹수의 울음소리에 온 몸이 오싹해지고, 주변에서 짐승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해 지고, 그렇게 두려움 속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됩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이 아이는 아침이 되면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왜냐하면 밤새도록 자기 혼자인줄 알았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 아이의 아버지가 완전무장을 하고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 아이가 이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하,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아버지가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셨구나’ 이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이 아이는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항상 지켜준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전 7:2)를 기억하면서 예수님의 탄생일에 우리는 동시에 마지막을 생각해야 합니다.

넷째 분부대로 행하여(24절)

모든 하나님의 역사에는 한가지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본문 24절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천사의 분부대로 행하여”라고 합니다. 요셉의 순종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통적인 섭리로 나타납니다. 사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이미 성장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내려오시면 굳이 애매한 성령의 잉태설을 말하지 않아도 되고 마리아와 요셉의 입장을 또한 난처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잘 알 수 있도록 성장하게 하시고 우리의 아픔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구원의 완성을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본부대로 해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남편 선교사를 잃고 혼자된 여 선교사님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왔던 선교사도 이러한 분이 많았습니다. 맥켄지 선교사는 캐나다 총각 선교사인데 당시 캐나다 장로교회 선교부를 찾아 100$을 내어놓으며 한국에 선교사로 갈 것을 자청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한국에 올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선교회의 배경 없이 독립적 선교사로서 1893년 10월에 캐나다를 출발하여 부산을 거쳐 인천 제물포에 내항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교회가 설립된 소래지역으로 가게되었습니다. 자연히 소래교회 초대 목사처럼 되었습니다. 1895년, 예배당 건축공사가 거의 끝나,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 전도차 장연읍을 다녀왔는데 뜻하지 않게 일사병에 걸립니다. 그리고 5일간의 고열 끝에 1895년 6월 23일 낮선 땅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일기에서 “…잠을 잘 수도 없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너무 약해졌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에는 전신이 추워지는 것을 느낀다. 옷과 더운 물주머니가 있어야겠다. 땀을 내야겠다. 조금 나은 듯하기도 하다. 죽음이 아니기를 바란다. 한국과 내가 한국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게 될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내가 조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낮에는 뜨거운 햇볕 아래서 전도하고 밤이면 공기가 추워질 때까지 앉아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중략) 내 마음은 평안하며 예수는 나의 유일한 소망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루신다. 몸이 심히 고통스러워 글을 쓰기가 너무 힘이 든다.”
그는 같은 날 에비슨(Oliver R. Avison) 선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을 써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발송하지 못한 채 그는 숨졌고,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한편 그의 여자친구는 창창한 청년 선교사와 함께 한국을 위하여 헌신하게 될 장미 빛 미래를 그리며 태평양을 항해하고 있을 때 애인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소식은 그녀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지만 도중하차하지 아니하고 소래에 내려와 애인이 잠들어 있는 무덤 앞에서 경건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고인이 된 애인을 위하여 한국을 떠나지 아니하고 원산지방에 머물면서 열심히 전도하고, 한국에서의 매켄지의 생애 “A Corn of Wheat or the Life of the Rev W. J. McKenzie of Korea”라는 제목의 책으로 남겼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매컬리(Miss Elizabeth A. McCully)입니다. 이런 분들이 ‘분부대로 행한’, 예수님의 명을 따라 산 분들입니다. 또한 이 분들에게 임마누엘의 예수님이 되십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의 분부대로 행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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