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재림주이신 예수님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은 누구 신가?(22. 나의 재림주이신 예수님) / 본문 : 히10:37-39
어린아이들은 부모님과 헤어지면 불안해합니다. 어린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니고 누구나 가까운 사람과 헤어진다면 마음이 아픕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지지만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으면 헤어짐의 슬픔이 작아집니다. 그리고 다시 만날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떠날 때는 반드시 자녀에게 언제 온다고 말하고 떠납니다. 다시 만나기 때문에 그 때까지만 참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오늘 본문 히10:37절에서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미국 플로리다해변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는 바캉스를 떠나는 젊은이들의 들뜬 분위기로 가득했습니다. 그 틈에 한 중년의 사나이가 몸을 잔뜩 움출인체 앉아 있었습니다. 허술한 옷과 덥수룩한 수염과 굳게 닫힌 입술의 사나이에게 한 소녀가 접근해 어렵게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내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뉴욕 교도소에서 4년 동안 복역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오. 아내가 나를 맞아줄 것인지 불안하오. 나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소. 오늘 출소할 것인데 나를 받아주겠다면 집 앞의 커다란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매달아 놓으라고 했소. 만약 노란 손수건이 보이지 않으면 내 인생은 끝나는 것이오”
승객들은 모두 숙연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버스가 마을에 이르자 승객들은 손에 땀을 쥐며 참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수백 개의 노란 손수건이 환영의 깃발처럼 참나무에서 춤추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먼저 그분이 우리를 다시 만나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정말 우리는 잘 모릅니다. 우리는 오늘도 주님을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혹시 나의 욕심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습니까? 우리교회가 주앙교회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교회인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만 보입니다. 주님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친히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눅18:1-6에 보면 불의한 재판관에 대한 이야기를 주님이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한 과부는 그에게 찾아가 자신의 억울함으로 호소했습니다. 재판관은 계속해서 이 과부가 찾아와 자신을 괴롭힐 것을 생각하고 처음에는 그 여인의 간청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들어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8:7-8)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지 명확히 하셨습니다. 우리의 원한, 억울함을 풀어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우리가 다 용서했는데 우리의 원한과 억울함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에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용서하지 못해서 개인의 원한을 풀어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은 이기주의적인 신앙을 가지신 분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망하고 자신만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게는 하지 않으십니다. 미국의 16대 링컨 대통령은 당시의 남북전쟁이 있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한번은 참모가 와서 “하나님이 우리편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북쪽이나 남쪽이나 모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은 그 참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편이기를 기대하기 이전에 우리가 하나님 편인가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에는 우리는 구원을 받으나 사단은 완전히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을 통해서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 죄 값으로 우리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습니까? 죄의 뿌리는 아주 깊어서 서로가 의심하고, 미워하고, 대적합니다. 그리고 인류는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끊임없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이유도 모르고 죽어 가는 순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죄의 결과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죄를 가져다준 사단을 멸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재림은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재림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마13:40-43, 마19:28, 마24:30, 막8:38, 막13:6-7, 눅12:35-40, 눅18:8, 요5:28, 요12:48, 요21:22-23). 천국이 싶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많이 말씀하셨고,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고도 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재림에 대한 이야기가 318번 언급되어 있는데 특히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예언보다 재림에 대한 예언이 거의 8배나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24:30),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눅12:4),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증거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기초하여 바울도 그리스도의 재림소망을 그의 모든 서신에서 증언했습니다(롬8:19-24, 고전15:22-28, 51-57, 고후5:9-10, 엡4:30, 빌3:20-21, 골3:4, 살전4:13-17, 5:1-11, 살후1:7-10, 딤전6:14, 딤후1:18, 딛2:13).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역시 그의 서신의 핵심으로 기록하였습니다(벧전1:7, 4:5, 13, 5:4-10, 벧후3장). 베드로전서는 마지막 때 임할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기록한 것입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7)고 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1:10-11에서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증거 했습니다.
하나님이 요한을 통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재림을 믿지 않으신다면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거나 기독교인이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모두 믿느냐고 문답을 합니다.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만 기록된 책입니다. 21장 중에서 18개장들이 구체적으로 재림을 다루고 있습니다. 2장과 3장은 재림에 앞서 있게되는 교회에 대해서 말한 것이고, 4장부터 18장까지는 하늘과 땅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19장은 재림 자체를 묘사한 것이고, 20장은 천년 왕국에 대한 것이고, 21장과 22장은 우리가 가게될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것입니다. 이토록 정확하게 하나님은 요한을 통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재림을 믿지 않는다면 요한계시록 자체를 믿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헬라 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은 필립 2세였습니다. 그에게는 이상한 신하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신하는 다른 일을 전혀 하지 않고 꼭 한가지만 맡아서 했다고 합니다. 이른 아침 이 신하는 왕의 침소 머리맡으로 다가가서 큰소리로 왕을 깨웁니다. “대왕마마! 오늘이 어쩌면 대왕마마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왕이 깜짝 놀라서 깨어난다고 합니다. “그래 맞아! 오늘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지. 내가 이렇게 잠에 취해 있을 수 없지.”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아침 식탁에 앉으면, 이 신하가 이번에는 아주 흉측하게 생긴 해골을 갖고 식사를 하고 있는 왕의 식탁 위에 올려놓습니다. 왕은 연신 그 해골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 맞아!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결국 썩어질 육신,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살아야지. 먹고 마시는 일에 귀중한 인생을 낭비할 수 없지.” 왕이 식사 후 집무할 때 이 신하는 그 해골을 들고 이제는 왕이 집무하는 책상머리에 갖다 놓습니다. 왕은 틈틈이 해골을 바라보면서 집무를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 맞아!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어차피 썩어질 육신, 청렴결백하게 살고 공평무사하게 일해야지.” 왕은 어디를 가든지 그 신하가 가지고 온 해골을 보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