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할 일꾼이 모이는 교회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생애(21. 추수할 일꾼이 모이는 교회) / 마 9:36-38

“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스코틀랜드에서 인도로 선교하기 위해서 갔었던 알랙산더 더프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평생을 인도에서 선교를 했습니다. 평생을 선교하고 나이 많아 선교를 마칠 때가 되어서 본국으로 돌아와 후임자를 모집했습니다. 인도에서 선교할 사람을 모집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외치고 다녀도 아무도 모집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실망했습니다. 그는 결국 실신했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와서 치료하고 다시 회복되어 일어나서 교회 목사님께 내가 하던 말을 다시 마치기를 원하니 다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빅토리아 여왕은 자원병을 모집할 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서 지원했는데 우리 주님은 이렇게 지원병이 없으니 이제 내가 죽어도 다시 인도로 가서 죽어야겠다고 호소를 했습니다. 이 때 많은 젊은이들이 헌신하고 인도로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에도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교회 역할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우리가 다시 맡아서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운동이나 윤리, 도덕 교육도 해야합니다. 하지만 진짜 교회의 역할은 주님이 하시던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 주앙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는 오늘 주님이 하신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민망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찬양이나 기도를 힘있게 하시면 육체에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크게 소리지르며 기도하면 창자나 배가 땡깁니다. 유대인들은 창자에 동정심이나 긍휼이 담겨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자가 감정이 담긴 기관으로 여겼습니다. 바로 “민망히 여기시니” ejsplagcnivsqh(스플랑크논)라는 말은 창자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창자에서부터 올라오는 동정심이나 긍휼, 아픔 속에서 나오는 배가 땡기는 아픔을 말하는 것이 ‘민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무리를 보시고 이런 아픔을 느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신 것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여러분!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면 ‘민망’할 것이 없습니다. 배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아픔을 가진 긍휼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의 죄인을 구하러 오셨기 때문에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민망히 여기신 이유는 “목자 없는 양”같아서 입니다. 양에게 목자가 없으면 양은 갈 길을 잃습니다. 좋은 꼴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이리가 와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양에게 목자가 없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민족이 이와 같은 상태입니다. 백성을 바른길로 인도해야할 책임 있는 지도자들(목자)이 삯꾼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만 쫓았으며, 대접받기만을 좋아했습니다. 예수님의 눈에 이 무리들은 목자가 없기 때문에 “고생”하는 것으로 보셨습니다. “고생하며” ejklelumevnoi(에크뤼메노이)의 원 뜻은 ‘가죽을 벗기다, 칼로 썰다’에서 온 말입니다. 양의 가죽을 벗길 때의 아픔을 말합니다. 우리 속된 말에도 남의 것을 갈취 할 때 사용하는 표현 중에 ‘홀라당 벗겨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겨두는 것이 없이 모두 빼앗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와 같이, 양을 위해서 좋을 꼴을 먹여줘야 할 목자가 오히려 양의 가죽을 홀라당 벗겨먹는 것입니다.
“유리함이라”는 술에 만취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절망적 상태를 말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어린양들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보고 계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창자가 찢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느끼신 아픔 ‘민망’ 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같은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이 지구촌의 사람들이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는 이방인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아픔이 있을 때 우리는 선교할 수 있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습니다.
37절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추수는 때나 시기를 나타내고 있어 마13:49에서는 세상 끝과 그 때 있을 심판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의미보다는 영혼구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복음과 진리를 받아들일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시던 2000년 전에도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은 더 많습니다. KCM에서 발행한 2002년 세계선교지도에 보면 단일종교로 제일 많은 것은 이슬람으로 20.99%입니다. 개신교는 14.74%이며 카톨릭이 14.87%로 기독교를 약간 앞섭니다. 두 개신교와 카톨릭을 합하여 기독교로 볼 때 32.90%입니다. 물론 이 통계만을 가지고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는 영혼인지는 잘 모릅니다. 유럽과 남미 등에서의 기독교는 이미 형식적으로 변화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6.78%이며 힌두교는 4.25%입니다. 그리고 현재 세계인구는 61억 정도 되는 것으로 봅니다.
세계기도정보 책자를 준비한 WEC의 패트릭존스톤과 함께 일한 제이슨의 보고에 의하면 가난한 나라일수록 인구밀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성장이 독립교회에서 급속히 증가추세를 보여왔고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영국성공회가 성장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선교사 분포를 보면 불행하게도 기독교 국가에서 73%선교사가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의 선교사만이 종족선교를 하고 있으며 8%의 선교사가 이슬람 지역에서 그리고 유대교와 힌두교를 위해서 1%씩의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계 교회의 1.7%의 성도가 십일조를 하고 있으며 1%의 선교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 헌금 중 1.25%의 선교헌금이 미전도 지역 선교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온 세상에 추수할 영혼이 얼마나 많은 지요. 이들이 우리의 손길을, 주님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에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대한민국도 선교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한국교회가 지속적으로 부흥하지 않고는 앞으로 선교를 잘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한국은 개신 교인을 아무리 많이 잡아도 25%이상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천주교 7%, 불교 23%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은 어디 갔습니까? 기타 종교는 1% 미만입니다. 무교가 47%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무교가 이렇게 많은 나라는 없습니다. 찾아보세요. 단 5%가 무교인 나라가 있는지요. 찾기가 어렵습니다. 다 어떤 종교든지 가지고 있습니다. 타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전도하면 그들이 종교를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는 무교보다 전도하여 결실을 맺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이 얼마나 전도하기 좋은 나리입니까? 제가 선교사 교육을 할 때 꼭 이 말을 합니다. 여기서, 한국에서 전도하지 않던 사람이 해외에 있다는 그 자체로 선교사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열심히 전도하던 사람이 다른 곳에서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추수할 것은 이렇게 많습니다. 그러나 일꾼이 부족합니다. 예수님 때는 세례요한과 제자들, 예수님과 제자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먼저 죽었습니다. 수많은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제사장들이 추수하는 일꾼이 되어야 하는데 이들은 오히려 추수를 방해하는 집단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일꾼이 부족한 것입니다. 독속에 갇힌 계들이 살아 나오려고 올라오면 밑에서 다른 계들이 올라가는 계의 뒷다리를 잡고 늘어져 같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결국 한 마리도 못나옵니다. 하나님의 추수하는 일꾼은 희생합니다. 자신을 드리는 사람이 추수꾼 입니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해야 합니다.
38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직물공장에는 다음과 같은 불문율이 있습니다.
“실이 얽히면 무조건 공장장에게 보고하시오.”
어느 날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여공이 작업을 하는 도중에 실이 얽혀버렸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풀려고 하면 할수록 실은 더 얽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그제야 그녀는 공장장에게 보고했습니다. 왜 즉시 보고하지 않았느냐는 공장장의 질책에 그녀는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공장장님, 저는 최선을 다해서 얽힌 실을 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장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란 공장장인 나에게 보고하는 일이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에게 부딪치는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 맡겨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의지대로만 행하려고 하면 더욱 풀기 힘든 실타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보고하고 맡기는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을 것이 하러 밭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익어서 곡식을 거두어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서리가 내리고 눈이 오면 겨울이 됩니다. 이 때는 추수할 수 없습니다. 추수할 곡식이 다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을 하다 보니 추수꾼이 턱없이 부족한 것입니다. 추수하는 일꾼이 부족하면 어떡해야 합니까? 이 밭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그 주인에게 일꾼을 더 보내달라고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다 추수하지 못합니다. 일꾼이 더 있어야 합니다.
“보내어 주소서” o{pw” ejkbavlh/(호포스 에크발레)는 강제력이 동원된 말입니다. o{pw”(호포스)는 ‘어떻게 하든지’라는 말이며 ejkbavlh/(에크발레)는 ‘잡아 빼다, 쫓아내다, 내밀다’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일하는 일터에 사람이 부족하니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다른 곳에 있는 사람을 더 빼내어서, 어떻게 하시든지 밭으로 일군을 더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일꾼은 자기가 원한다고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주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택함을 입어야 합니다. 이 밭의 주인도 하나님이며 이 밭의 일꾼을 보내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앙교회에도 일꾼이 부족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에도 일꾼이 부족합니다. 온 세상에 선교를 생각하면 더욱 일꾼이 부족합니다. 기도합시다. 일꾼을 보내달라고 한번 기도합시다.

추수는 감사한 것입니다.
일꾼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추수는 감사한 것입니다. 얼마나 기쁩니까? 저는 우리 주앙교회가 이 기쁨을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추수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제가 얼마나 행복한 시대에 사는지 구약의 예레미야를 보면 압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요시야 13년(B.C. 627)에 활동한 선지자로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될 것을 예언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하기 싫었습니다. 예언 그 자체를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나라,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한다는 예언을 하기 싫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하기 싫은 일이겠습니까? 단순히 멸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희 파괴됩니다. 예레미야 6:11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지아비와 지어미와 노인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고 했습니다. 또 이들의 모습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예레미야 8:1-3 “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2 그들의 사랑하며 섬기며 순종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아래 쬐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3 이 악한 족속의 남아 있는자, 무릇 내게 쫓겨 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왕, 선지자, 제사장들의 묘가 도굴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치욕스러운 것입니다. 그 뼈들이 무덤에서 나와 굴러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은 차리라 죽는 것이 났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백성들 때문에 기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미리 예레미야 7:16절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도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도 듣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결심은 섰습니다. 그 뜻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오직 예정대로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일뿐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다릅니다.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라고 하실 때는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라고 하시고 응답하실 뜻이 없으시면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왜요.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죽어서 천국에 갔답니다. 그런데 창고하나가 있는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필요했던 물건이 그곳에 잔뜩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저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땅에서 기도하면 주려고 했던 것이다”라고 대답 하셨답니다.
우리가 청하는 분은 “주인에게 청하여”입니다. 주인이면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주인입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일꾼을 보내주소서”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실하기로 이름난 영국의 한 부부가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하고자 선교사로 지원해서 훈련을 받고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선교사부부는 열심히 배운 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되도록 한 명의 결신 자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의 친구가 선교하면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왔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선물로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선교사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 것을 말했습니다. 부부는 똑 같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성찬식에 필요한 각종 성구들을 보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찬식은 당장은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꼭 우리 신디가 몇 달째 저렇게 있는 것하고 같겠지요. 그리고 몇 년 후 10년 동안 사역한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원주민들이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련해 두었던 성찬 기구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믿고 준비하면 때가 되면 추수하게 됩니다.

우리 주앙교회는 추수하는 일꾼이 모이기를 위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단순히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여 큰 교회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수 없는 손길이 있으며 영혼이 있습니다. 그들을 추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추수하는 밭은 하나님의 밭입니다. 그러기에 일꾼 역시 하나님이 보내주셔야 합니다. 우리 주양교회에 하나님을 위해 추수할 일꾼이 모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