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보다 귀한 생명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생애(35. 천하보다 귀한 생명) / 눅 9:23-27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지난 22일 25세의 한 젊은 연예인(이은주)의 자살로 사회적 패닉증상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중스타의 죽음은 연예계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마치 아는 사람, 친한 사람이 죽은 듯한 심리적 충격을 안겨줍니다. 자신이 좋아하던 드라마나 영화속 주인공이 현실에서 사라짐으로써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허상과 현실을 구분해야 합니다. 일본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욘사마’ 열풍도 알고 보면 허상인 것입니다. 그가 실제 인물이기는 하지만 드라마 속의 인물을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허상 속에 살아가지는 않나 우려가 됩니다. 이번에 자살한 연예인은 모두가 의아해 합니다. 왜! 스스로 목을 메어 죽었는지 얼른 납득이 안가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 일을 하고 싶었다.” 등의 내용은 더욱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시는데 자신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는지 보통 사람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만족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기에게 짐이 되었던 것입니다. 독일속담에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여인은 향기 없는 꽃과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가 세상을 좀더 넓게 이해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바로 믿게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이 세상의 것에 비전을 두지 않습니다. 목적을 삼지 않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 세상을 보고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다가아니며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우리의 생명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대로 우리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생명입니다.
창세기 1:26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자연이나 동물에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말이 없습니다.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지음을 받은 사람은 창 1:31절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것을 지으시고는 “좋았더라”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지으시고는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물과 식물들을 사람을 위해서 지으신 것입니다.
창 1:28-30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동물이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까? 동물이 아무리 똑똑해도 하나님을 찾지는 않습니다.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도 범죄한 인간에게는 허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 된 것입니다. 만일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없다면 동물보다 그저 머리가 좀 나을 뿐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된 것을 고쳐야 합니다. 다시 원상복귀 되어야 합니다. 죄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서 죄 없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범죄 한 죄인들뿐입니다. 성경이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선열들 또한 죄인에 불과합니다. 이런 죄인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죄를 없게 하는 것이 예수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원상복귀 시키는 것,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고전11:1).
하나밖에 없는 생명입니다.
본문 25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행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베드로와 사도들이 산헤드린공의회 앞에서 증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입니다(요 14:6).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분이십니다(요 6:35). 우리 각자는 이 생명을 좌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되십니다. 결코 내가 내 생명의 주인이 아닙니다. 잘 간직하고 , 받아 누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를 착각하여 생명을 자신의 것으로 잘못 아는 데서부터 엉뚱한 생각, 엉뚱한 행동이 나오게 됩니다.
인터넷상의 자살 사이트는 계속해서 단속을 하는데도 생겨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생명이 자기의 것인 줄 알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알고 생명을 죽일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결코 내가 내 생명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내 생명을 찾으시면…. 지체 없이 떠나야 할 내 생명입니다(눅 12:20). 여러분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세요. 조금도 함부로 생각하지 마세요. 내 생명의 주인 되시는 주님 앞에서 소중하게 잘 가꾸어야 합니다.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생명입니다.
고전 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형제를 대신하여, 아니 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피로 값 주고 사셨다는 말씀입니다(행 20:28).
여러분! 우리 목숨은 내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피로서 죽을 죄인을 사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죄인을 불러모은 곳,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하셨습니다(마 18:20).
여러분! 성도들의 몸값을 계산할 수 있습니까? 그냥 사람의 목숨도 계산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주님의 피로산 성도의 몸값은 계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은 영원합니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며 이 땅의 모든 삶이 정리됩니다. 하나님이 공평하신 것은 누구나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물질을 조금 더 가지고 살았느냐, 아니면 명예와 권세를 누리며 살았느냐,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았느냐, 건강하게 살았느냐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모두가 죽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정리될지 모르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착각하는 것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죽으면 다시 심판을 받게되어 있습니다.
1892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윌 피어비스란 남자는 은행강도로서 도망을 치다가 은행 문지기를 쏘아 죽였다는 죄목으로 사형 언도를 받았습니다. 본인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했으나 그가 사람을 죽이고 도망가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는 증인이 있었습니다. 당시 정황으로 보아 이 사람이 진범이라고 단정한 7명의 배심원들은 그의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에, 사형수는 목소리를 높여 부르짖었습니다. “나는 죽을 수 없다. 나는 무죄다. 죄 없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워 죽이려는 이 배심원 놈들아 나보다 네 놈들이 먼저 죽을 테니 두고 보라!”고 발악을 했으나 그는 끝내 교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날 사형수의 시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가 죽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판명된 것입니다. 이에 법관은 그를 다시 죽이려고 했는데 그것을 강하게 반대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고장의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한 번 죽인 사람을 하나님이 되살려 놓았는데 인간이 어찌 주님의 뜻을 거슬리고 다시 죽일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법관과 목사의 논쟁으로 8년 동안이나 형 집행을 못하고 있었는데 사형수는 어느 날 무죄로 석방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조라는 이름을 가진 사형수가 사항을 당하면서 은행 문지기를 죽인 사람은 자신이라고 실토하였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단 한가지
본문 24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어야 할 때는 단 한가지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렇게 귀한 존재이기에 우리의 삶을 헛되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생각할 때 열심히 살게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주님이 부르실 날이 있습니다. 그 때 아멘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가시면 됩니다. 성도 여러분의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사단이 이기지 못합니다. 건들지도 못합니다. 주님의 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앙모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최근에 아주 감동적인 얘 기 하나를 들었습니다. 중학교 선생님의 얘기예요. 중학교 1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여 선생님, 그리스도인 여 선생님의 얘기입니다. 자기 반에 가르치는 학생이 하나 있는데 아주 우수한 학생이었대요. 아주 top. 성 적이 아주 제일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왔던 학생이었는데 한 1년 동안에 이 학생이 망가져 가는 거예요.. 점 점 성적이 뚝뚝 떨어집니다. 반항적 인 아이가 되어가고 불량한 학생이 되어갔습니다. 점차 친구들이 그를 따돌리기 시작합니다. 선생님들도 그를 문제아로 취급하기 시작합니다. 친구가 없어요. 그는. 점점 반항적이 되어가고 그는 점점 학교 수업을 거부합니다. 선생님이 ‘이유가 있겠지.’ 이 학생에 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부모가 별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별거하고 있다 는. ‘그랬구나’ 환경조사서를 봤더니 배경이 기독교인이예요. 자기도 기독교인이니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어느 날 양쪽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선생님이.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걸어보니까 따로따로 있어요. 이미. 같은 집에 있지 않고 따로따로 있었습니다. 아들 성적문 제로 의논하고 싶다고 학교에 오실 수 있냐고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 소에 양쪽 부모를 학교에 같이 오시게 합니다. 와서 보니 깜짝 놀랐어 요. 혼자뿐인 줄 알았는데 자기 아내가 있거든요. 자기 남편이 있거든요. 처음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고 이 선생님에게 아주 좀 안 좋은 태 도로 나오시더래요. 그리고 설명을 드렸대요.
“이 아드님의 이 성적을 도울 수가 있는지 그리고 제대로 자 기 인생의 페이스를 찾으려면 두분 중의 한 분의 도움 가지고는 안되고 두 분의 도움이 다 필요하기 때문에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두 분을 다 학교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선생님에게 충격이 되었던 이 학 생의 시험지 답안지하나를 보여드렸답니다. 이 선생님이 영어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는데 답안지에, 어느 날 답안지에 한문제도. 답을 하나도 안 쓰고 낙서를 해버렸대요. 전체를.. 그의 일종의 반항이었죠.
그런데 이 학생의 휘갈겨 쓴 낙서에 맨 마지막부분에서 이 학생의 마음속에 있었던 진실을 이 선생님 이 본 것입니다. 거기다 빨간 줄을 쳐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걸 좀 보시죠.”
휘갈겨 쓴 낙서의 밑바닥에 숨어 있었던 이 학생의 진실한 독백이 기록되어있었습니다.
“아빠 엄마 난 누구하고 살아? 난 누구하고 살아? 이혼하면 누구하고 살아? 아빠 엄마 난 누구하고 살아.. 아빠 엄마 난 둘 다 필요해. 난 둘 다 필요해”
그리고 또 한마디 마지막에 맨 구석에
“아빠 엄마 우리를 사랑해? 아빠 엄마 우리를 사랑해?”
보여준 순간, 순간 아버지가 고개를 떨어뜨립니다. 엄마도 고개를 떨어뜨립니다. 깊은 정적이 지났습니다.
“두 분이 기독교 배경을 가지고 있지요? 저도 그리스도인 입니다. 기도해 드릴까요?”
선생님이 이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기도하자 순식간에 교무실은 통곡의 장으로 변합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기 시작합니다. 이 것이 이 가정의 회복의 전개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합쳤어요. 이 부부 는. 그리고 이 아이는 다시 인생의 길을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쓴 글을 제가 직접 읽어봤는데
“맨 마지막에 함께 기도하고 교정을 나서는 이 부부. 이 학생의 아버지 와 엄마. 교정을 나설 때 나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내 생애에서 이것보다 더 귀한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이웃을 살리는 축복. 저와 여러분은 이웃을 살리는 자일까요? 죽이는 자일까요?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