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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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16. 한 마리의 양) / 본문 : 마태복음 18:12-14

“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한 마리의 양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다른 많은 양이 있다고 해서 한 마리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나와는 다른 것입니다. 내가 있어야 됩니다. 내가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다른 사람이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소중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시오. 심지어는 단점까지도 인정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초라하게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배용준과 닮았으면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남자 분들은 별로 그런 생각 안 하는데 여자들은 많이 하나 봅니다.

해외 갈 때마다 입국심사 대에 서게됩니다. 별 것 아닌데도 약간은 긴장이 됩니다. 천국에도 이런 입국심사대가 있는데 유난히 시간이 걸리는 줄이 생기더랍니다. 가만히 보니까 특히 한국 여자들이 길게 서 있더랍니다. 왜 길게 서있나 보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원본하고 달라서 대조하느라고 시간이 걸린답니다.

우리는 다른 누구와 비교하기 위해서 창조된 사람이 아닙니다. 항상 누군가를 모방만 하고 흉내내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만 비참해질 뿐입니다. 또한 자신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제인간의 집단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창조성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양성을 좋아하십니다. 제가 늘 주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다양성입니다. 누가 큰 교회에서 지성 전을 자꾸만 짓는데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봅니다. 제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저는 다양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획일적인 모습으로 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생태계가 얼마나 건전하냐는 시내로 비유를 들자면 얼마나 다양한 물고기가 살고있느냐로 그 생태계가 얼마나 좋은 상황인지 나쁜 상황인지 평가하는 것입니다.
남을 모방하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창조의 모습을 찾는데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소중한 조언을 듣지 말고 고집을 부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자아도취에 빠져 자신만이 제일인줄 아는 안하무인에 빠지라는 뜻도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잣대로 획일적인 평가는 부분적으로는 필요하고 옳은 것인지는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들이 만든 잣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내가 만든 상자에 넣고 평가하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은 내 스타일로 억지로 꿰어 맞추려고 하면 안됩니다. 많은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기분 좋게 출근했는데 직장 동료가 좋은 새 차를 몰고 오는 것을 보고 기분이 확 잡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갑자기 힘이 빠집니다. “나는 뭔가?” 자기 재능이나 능력, 교육 수준을 남과 비교하는 것은 자기 배우자를 남과 비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보실 때도 비슷합니다. 다른 목사님들과 비교해서 우리 목사님은 목소리가 쉰 음성으로 기도해서 거룩하게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기도도 안 하시나 봐!”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제가 제일 웃기 다고 생각하는 것은 목사님들 중에 다른 분 목소리 따라하려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주신 이 어눌한 목소리 얼마나 창조적입니까? 제 발음이 시원치 않아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답니다. 만일 사람의 목소리가 다 같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르기 때문에 소리로만 듣고도 누군지 알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개성을 주셨습니다.
우리 나라의 교육열은 대단합니다. 아마 세계의 어떤 엄마들 보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교육열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가지는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 아이를 누구와 똑같이 키우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저 다른 사람이 하니까 따라서 우리 아이도 해야 된다는 식의 교육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경주를 하며 독특한 존재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소명을 주셨습니다. 누구를 따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14-20 “14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 뿐이면 몸은 어디뇨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태국 갈 때 타이항공을 타고 갔습니다. 비행기에서 음료수 가져다주잖아요. 그 때 무엇을 먹을 것인지를 물어봅니다. 그래서 제가 “물 주세요.”그래 보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저를 처다 보는 것 같았고 태국 여 승무원은 약간 당황해 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의도적으로 “물 주세요.”를 다시 했습니다. 여러분!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의 여 승무원은 간단한 한국말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알아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국을 안 하니까 승무원들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한국 사람이 한국말 하는 게 창피한 것입니까? 한국 사람이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말 다 잊어버리고 영어만 하면 자기 자신은 잃어버리기 때문에 이것은 실패입니다. 앞으로 비행기 타시면 자신 있게 한번 해 보세요. “물 주세요.”

이제 한국인의 의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금번에 역사적인 인물을 많이 만났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최찬영 선교사입니다. 이 분은 인도차이나 지역의 최초의 한국 선교사입니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계시며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중국에서 성경을 찍어서 보급하는 일을 하십니다. 일년에 천만 권이 넘는 성경을 찍어 중국 전역에 보급한답니다. 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미국 시민권을 가지시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베트남에 가셨을 때 한국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빨리 들어가더랍니다. 그래서 자기도 그 쪽 줄에 서서 들어가려고 하니까 여권을 보더니 저 쪽으로 사라고 하더랍니다. 여기는 한국여권이니까 빨리 들어가는 것이고 당신은 미국여권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랍니다.

우리는 최고의 엄마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되시기 바랍니다. 저도 최고의 목사는 아닌지 모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목사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때 남과 비교해서 평가하시면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를 선택하실 때 “여호수아야 네가 모세와 똑같이 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15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수 1:15-16)고 하셨습니다.

최고의 칭찬을 하십시오.

자녀에게 이렇게 말해 보세요.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이 절대로 못한단다.” 그래요 안 그래요. 반드시 그렇습니다. 저는 피카소가 그린 그림보다는 예지가 그린 그림이 더 마음에 들더라구요.

이번에 제가 인도차이나 대회에 가서 무슨 이야기하고 다녔겠습니까? “미션 매거진”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태국 촌부리에서 사역하는 김정웅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지역별로 선임선교사님을 자문위원으로 하려고 하는데 김정웅 선교사님에게 자문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몇 일을 이야기 하니까 선교사님이 웃으시면서 아무 말도 못하시더라구요. 캄보디아에서 오신 정병대 선교사님은 목사님에게 여기 오면서 지금까지 이 이야기만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시간이 없어서 못 뵌 강승삼 목사님은 식당에서 차에서 완전히 넉 다운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진경 목사님이 헤어지면서 저에게 별도로 하신 말씀은 “아까 그거 말한 것 한 번 잘해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얼마나 힘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숭실대 이사장님으로 계시는 이원설 박사님도 서울에 비서실에 연락해서 도울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콕의 이정익 장로님(전 전주대 총장)도 흔쾌히 허락하시고 또 미국에서 케냐로 들어가는 동아프리카 최초의 선교사 임종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이분은 금년에 연세대에서 주는 언더우드선교상을 시상한 부부입니다. 어분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태국 행사장에서 비행장으로 가는 동안 완전히 녹였습니다. 그래서 가실 때 “제 이름이 필요하시면 목사님 필요한 곳에 사용하세요.”하고 가셨습니다.

다른 교회들은 그분들의 방법으로 전도하며 선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방법으로 전도하고 선교하고 교회를 부흥시켜야 합니다. 어떤 교회를 따라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방법이 있습니다.

주님이 오늘 본문에서 왜 그렇게 우리를 찾습니까? 그저 우리가 많은 것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귀한 존재이기에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주십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당당할 권리가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아멘.

 

섬기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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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스코틀랜드 가정의 표어 가운데 ‘봉사하기 위하여 구원받았다(Saved to serve)’란 말이 있습니다.
섬김을 모르는 삶은 구원의 감격이 없는 삶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고침 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일어난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섬기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어떤 이는

안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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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 14. 안쉴년? (마 11:28)

<설교 맛보기>
- 여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여유..
- 의무로 하는 자는 지치나, 사랑으로 하는 자는 한결같다.
- 주와 함께 지고, 사랑으로 지고, 소망으로 지는 자가 되자.
- 주일날엔 최대의 컨디션으로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자.
- 쉬기 위해 일하는 자, 일하기 위해 쉬는 자..

무엇을 구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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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13. 무엇을 구하느냐) / 본문 : 요한복음 1:35-42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오늘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발표한 559주년 되는 한글날입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또 한글을 사랑하여 발전시켜 왔습니다. 우리 한민족이 정말 자랑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한글입니다. 한글은 다른 나라 글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창작이면서 목구멍의 모양에 따라 자음의 모양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한글을 사랑하여 한글 기계화에 앞장선 사람이 있습니다.
1949년 우리 나라 최초로 “실용적인 타자기”개발에 성공한 공병우 박사입니다. 이분은 우리 나라 최초로 안과를 개업한 의사(1906.-1995. 3. 7.)이며, 70살이 넘어서 사진을 배워서 사진 작가가 되신 분입니다.
남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답게 그의 유언은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 장례식 같은 건 하지 말 것, 장기는 기증하고 시신은 해부학 교실에 기증할 것, 위와 같이 할 수 없을 때는 24시간 이내에 수장 또는 화장할 것, 부고는 죽은 지 1개월 후에 할 것……”입니다.
그는 창씨개명을 요구하는 일제를 향하여 ‘금일 공병우 사망’ 이라고 외치며 항거했던 것처럼 옮은 것에 대해서는 굽힐 줄 몰랐습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에게는 무료로 수술을 해주며 베푸는 삶을 살았기에 죽임을 당하기 직전에 풀려나는 기적을 체험하기도 하였다.
6.25사변 때의 일이다. 공산주의자들이 볼 때 공병우 박사는 소위 부르주아(가진 자)이었기 때문에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그 순간 인민들 속에서 “저 분은 우리의 적이 아니니, 살려야 한다”는 증언이 나온 것입니다. 다행히도 그 증언자는 공 박사로부터 무료시술을 받았던 가난한 환자였습니다.
또한 공병우 박사는 평소 하는 일이 많은 만큼 시간을 아껴 쓰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5분 안에 머리를 깎는 이발소가 아니면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혼인식을 낮에 하는 곳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과 궤짝을 포개서 만든 침대에서 잠을 잤고, 그 자신이 게을러지는 것을 늘 경계하였습니다.
그런데도 9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글 기계화 운동을 위하여 하루도 거르지 않고 PC통신(하이텔)에 글을 쓰다가, 1995년 3월 7일 마지막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구약성경에 보면 인과응보의 개념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우리는 아무공로 없지만 예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잘 하고자 하는 사람을 외면하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세례요한의 소개로 그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옵니다. 이 두 제자에게 예수님이 “무엇을 구하느냐”고 질문하십니다. 본문을 직역하면 “누구를 찾느냐”입니다. 누군가, 무엇인가 찾고있었던 것입니다.

찾으십시오.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은 생동감이 넘칩니다. 그러나 할 것이 없는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할 것이 있는 사람은 아침이 빨리 밝아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아침이 밝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습니다. 누구나 다 경험한 일일 겁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가는 날이 되면 비가 올까봐 밤새 걱정하며 잠을 못 이루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선교하고 싶어서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습니다.
시편 77:1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고 하셨습니다.
마 7:7-8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찾으십시오. 끊임없이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기뻐하시며 만나주십니다.

무엇을 찾아야 합니까?
대상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입니다. 대상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가족이 없으면 돈을 버는 목적도 집을 사는 목적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대상이 찾아져야 그 때부터 그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36절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했습니다. 어린 양은 희생제물입니다. 속죄제를 위해서 하나님께 바쳐지는 양입니다. 이사야는 이런 예수님을 가리켜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고 했습니다. 두 제자들이 찾는 것은 메시야 였습니다. 예수님이 질문하신 “무엇을 찾느냐”는 “메시야를 찾느냐”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메시야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12제자들을 말할 때 예수님께서 모두 불러서 예수님의 권한으로 선택된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제자가 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을 성경은 분명히 증거 합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메시야를 찾고 있다가 만난 것입니다. 이들은 아마 세례요한을 따라다녔던 것은 혹 그가 메시야가 아닌가 해서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메시야를 발견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했을 때 세례요한의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온 것은 아닙니다. 두 제자만 따라왔습니다. 이들은 확실히 메시야를 찾았던 것입니다.
TV에 프로그램 중에서 오래 전에 한국에서 입양되어간 아이들이 부모를 찾는 프로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소개되는 것은 “저는 종로에서 발견되어 불광동 천사 고아원에 있다가 지금은 네덜란드로 입양되어 살고있습니다.” 이런 소개가 여러 명 이어집니다. 그리고 서툰 한국말로 “엄마~~”를 말 할 때는 눈시울이 적셔집니다.

제가 인터넷에 칼럼을 올린 것이 있습니다. 제일 추천수가 많은 글은 “강아지를 찾습니다.”였습니다.
“저희 집에서 제가 7년간을 함께 지낸 강아지입니다.
가족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지금은 사진보다 털이 더 자랐을 것입니다.
이 개를 보신 분이나 가져가신 분은 연락을 주시면
20만원을 사례하겠습니다.“

이런 벽보가 아파트 집을 나섰을 때 신호등 앞에 붙어 있었다.

함께 살던 강아지가 집을 나가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찾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시고 만드신 사람이며 그분의 자녀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안타깝게 찾고 계십니다.
아직 하나님의 집에 가지 않은 분들은 속히 돌아오십시오.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성도님이 아니라 진짜 당신을 찾는 분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길을 열어놓으신 예수님 입니다.

돌아오시면 20만원을 사례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며 하나님의 유업을 이를 상속자가 되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십니다.

고아원에 맡겨진 어떤 여자아이가 있었답니다. 그 아이는 자기를 고아원에 버린 부모를 무척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고아원에 찾아왔습니다. 자기를 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본 순간 소녀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얼굴은 온통 화상을 입어 흉측했습니다.
처음 만난 아버지를 반갑게 맞이하기보다는, 자기를 고아원에 버렸기 때문에 벌을 받아 흉측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그 소녀가 자란 다음 어느 날, 혼자 어렵게 살던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토록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해왔던 터라, 별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낳아준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라 어쩔 수 없어 막상 장례를 치르려 했으나 돈이 없어 막막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화장을 시켰으나 안치할 곳도 없어 화장하고 난 가루를 그냥 산에다 뿌렸답니다.
그런데 장례가 끝난 후 누군가가 생전에 아버지가 보관해 오던 물건들(유류품)을 전해줘서 받아보니 아버지가 남긴 글이 있었습니다.
내용인즉, 그 아이가 갓난아기 때 밤중이었는데 집에 불이 나서 아버지가 엉겁결에 집밖으로 도망쳐 나왔는데, 아기를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불길이 치솟는 위험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갓난아기를 안고 나왔다고 합니다.
정신없이 아기를 데리고 나와서 보니, 부인은 아직 빠져 나오지 못해 훨훨 타는 불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젠 불길이 너무 거세져 구하러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 결국 타서 죽고 말았답니다.
불 속에서 딸을 구하는 과정에서 그 아버지는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부인마저 세상을 떠난지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딸아이를 고아원에 맡겼던 것입니다.
그제야 아버지의 흉측한 얼굴이 소녀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소녀는 통곡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런 기막힌 사연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허구한 날 원망하고 미워했던 자신이 더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나를 찾지만 나도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괜한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이지만 이 사람 저 사람 말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댄 브라운이라는 사람은 다빈치 코드라는 책을 써서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해박한 지식은 그의 상상과 더불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성경도 거침없이 변경하며 예수님의 일생도 변경했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책과 말들에 정신 팔 틈이 없습니다. 댄 브라운은 소설작가입니다. 성경은 사실이고 다빈치 코드는 소설입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방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따라갑시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를 함께 일어봅시다.
(골 2:20)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골 2:21)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골 2:22){이 모든 것은 쓰는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골 2:23)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골 3: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 3:2)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골 3:4)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아멘.

무엇을 듣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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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12. 무엇을 듣는가?) / 본문 : 마가복음 4:24-25

“24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우리는 세상에서 수 없이 많은 소리를 듣고 살아갑니다. 한국 자녀들이 제일 많이 들은 소리는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주냐”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15일 퇴학 처리된 전북 K고 1학년 이승철(가명)군이 도교육청에 급식불만을 제보한 글이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에 의해 입수되었습니다. 최순영의원실은 전북교육청의 삭제된 글 데이터베이스에서 이군의 게시물을 요청한 뒤 원문을 공개했습니다.
“부당한 일로 신고할게 있는데 첫 번째는 수업 시간입니다.
이유는 학생의 동의 없이 학교장 마음대로 결정해 7교시까지인 수업을 8교시까지 하는 것입니다.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에 축제 연습하느라고 8교시까지 합니다. 저는 학교가 김제이기 때문에 집에 가면 너무 늦습니다. 그리고 학교 급식 반찬이 너무 형편없습니다. 매주 같은 반찬이 나옵니다. 친구에게 물어 봤는데 학교장이 뇌물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승철 군은 위의 내용을 전북교육구청에 올렸다는 이유로 퇴학된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퇴학 처분되면 다른 학교에도 진학을 못한답니다. 저도 중학교 때 밤에 가지 말라는 천막 극장에 갔다가 선생님께 걸려 정학처분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 때 한 친구와 같이 체육관에 갇혀서 1주일을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학교가면 교실에 못 들어가고 체육관에 들어가 갇혀서 있다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제가 크게 어머니에게 실망 시켜드린 것이 없는데 이 때 어머니는 정학이라는 통지서를 받고 얼마나 속상해 하셨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래서 이번에 퇴학당한 학생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퇴학을 시킬 때는 현행법상 학생에 대한 퇴학은 의무교육 이외의 자(고등학생)에 한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으며,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31조에 따라 학교 내 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이수, 퇴학처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퇴학처분을 할 경우에는 5항에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