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마태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말씀(128. 이것만은…(마태복음을 중심으로)) / 본문 : 마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이다 아멘)
성경에서 “아멘”은 예수님의 도장처럼 사용된 단어라는 것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멘”은 한글로 주로 “진실”로 번역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만:알라”또한 아멘과 비슷하게 사용됩니다. 그만큼 이 단어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만”은 원문의 ajlla;(알라)입니다. 이 단어는 a[llo”(알로스) “다른”이라는 뜻의 형용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다른 것들, 그러나”로 접속사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단순한 접속사가 아닙니다. 넓은 의미에서 “오직, 다만, 유일하다” 등으로 사용됩니다. 사도행전 1:8에서 “오직”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414번나옵니다. 한글로 “오직”이나 “다만”으로 번역된 곳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단어로 번역되거나 아니면 빠진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전체를 이 시간에 말씀드리는 것은 무리이고 마태복음에 나오는 것 정도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단어는 좀더 넓은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제목대로 “이것만은, 반드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2007년도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이 지나면 2008년이 됩니다. 한해에 꼭 해야될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만은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생을 통해서도 꼭 해야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ajlla;(알라)를 사용하셔서 말씀하신 것을 살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18)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요란한 가운데만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출애굽사건을 생각합니다. 지금도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시끄럽게 만듭니다. 조용하면 마치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조용한 중에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시끄럽게만 하는 사람의 문제는 은밀한 중에 보고 계시다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 6:4)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5)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마 11:8) “그러면”이 알라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하는데 절대 화려함만을 따라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ajlla:알라)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마 18:22) “예수님께서 꼭 그렇게 해라!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6:12의 주기도문에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했는데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를 과거형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용서한 상태에서만 주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원망을 쌓아놓으면 가슴만 아픕니다. 나쁜 일은 빨리 잃어버리시고 좋은 일을 많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ajlla:알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했습니다. 단순히 용서해 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3. 완전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ajlla:알라)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 “아니요 (ajlla:알라)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는 ajlla; plhrw’sai(알라 플레로사이)로 반드시 완전케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대속하심으로 우리를 완전케 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25에서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루려 함이니라” 이 단어가 마 5:17에서 “완전케 함이로다”의 원문 plhrw’sai(플레로사이)로 같은 뜻입니다. 히브리서 9:26-28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어떤 사람이 치과에 가서 이 하나를 빼는데 치료비가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의사가 2만원이라고 대답하자 그 사람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아니, 뽑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는데 왜 그렇게 비싸죠?”
그러자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물론 환자 분이 원하시면 아주 천천히 뽑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랬답니다. 예수께서 단번에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값없이 된 것이 아닙니다. 값이 있되 하나님이 계산을 안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5.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ajlla:알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17) 한글개역성경에서는 원문의 “알라”가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이 단어가 들어갈 곳은 “… 버리게 됨이라 (ajlla:알라) 새 포도주는 새…”여기에 들어가야 됩니다. 같은 본문인 막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고 바르게 번역되었습니다.
새 부대가 무엇입니까? 예수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에 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담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오르간을 갖고 있는 것이 대체로 전자식입니다. 그것은 컴퓨터로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그대로 내는 것 같지만은 실제로는 오리지날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큰 교회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려고 했는데, 첫째 조건이 온도를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름, 겨울 관계없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려면 오르간의 값보다 유지비가 훨씬 더 드는 거예요.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했더니 귀한 것이기 때문에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루브르 박물관(Le musee du Louvre)에 가면 모나리자, 비너스가 있는데 이것은 세계가 사랑하는 값진 보화들입니다. 얼마나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만지고 훼손하려고 하기 때문에 특별한 BOX에 넣어, 온도유지, 보관, 경비도 철저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죄와 마귀의 자녀 노릇하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4.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20) 원문에 “ajlla:알라”가 있어서 번역에도 들어가야 합니다. 행 1:8절처럼 처음에 넣든 가 아니면 “곧”을 “오직”으로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복음을 전할 때 ” (ajlla:알라)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막 6:9)라고 했는데 여기도 “오직”이 들어갑니다. 온전히 성령님만 의지하라는 강력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ajlla:알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 16:23) “ta; tou’ qeou’ ajlla;”로 나옵니다. “네가 (ajlla:알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에 넣어야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만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ajlla:알라)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막 3:29)
우리가 평상시에 늘 하나님의 일만 생각한다는 것이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선택해야만 하는 길이라면 하나님의 일을 선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어느 가구점에 존이라고 하는 청년이 취직을 했습니다. 주인은 술집에도 잘 다니고, 나이트클럽에도 잘 다니는 아주 사교적인 사람입니다. 존은 아무데도 가지 않고 교회만 다니고 이렇게 사니까 그를 불러서 “남자란 술도 먹도, 춤도 추고, 그렇게 세상을 즐기며 살아야 하는 거라”고 설득합니다. 주인님, 저는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술 먹으면 안됩니다. 그런 데에 가면 안됩니다. 몇 달이 지났습니다. “남자가 그렇게 종생원 처럼 그러는데 아니야, 남자가 남자다워야 되는 거야. 술도 마시고, 사람도 사귀어야 되는 거야. 그래야 사업도 잘 되는 거야.” 라고 합니다. “안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 것 먹어서 안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주인은 병이 들었어요. 불치의 병에 걸렸습니다. 주인은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부인이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회개하고 기도하면 은혜를 주실 거예요. 주인이 말합니다. 목사님을 찾지 말고, 우리 집에 목사님이 계시지 않느냐고 합니다. 존을 부르세요.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면 사람도 인정하고 하나님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ajlla:알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마 22:32)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왜 막 삶니까? 왜 교회를 핍박합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모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