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전도(선교)방법2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마 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마 10:5-16 “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11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대학병원 영안실에 한 번에 세 구의 시신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세 시신이 다 웃고 있는 모습이 아닙니까? 담당 직원이 너무 궁금하여 구급대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 시신들은 왜 한결같이 웃고 있는 겁니까?” “예, 첫 번 째 분은 20억 로또 1등에 당첨된 것을 확인하는 순간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저기 계신 분도 역시 사인이 심장마비인데 아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을 통보 받은 즉시 죽은 사람입니다.”
영안실 직원은 그 두 시신이 웃으며 죽은 이유가 그런 대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시신은 더욱 환한 미소를 띠고 죽은 것이 아닙니까? 그 사연을 물어보자 구급대원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분은 벼락을 맞아 죽었습니다.” “번개와 벼락을 맞았을 때 어찌 웃고 있었단 말입니까?” “주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사진 찍는 줄 알고 평소 습관대로 웃다가 그만…”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 복음을(기쁨을) 슬픈 얼굴로 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항상 기뻐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지난주 설교에서 5가지전도(선교)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마 9:38
(1)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의 주체
(2)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기도와 협력사역
마 10:5-16
(3) 5-6절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전도나 선교의 대상
(4) 7절 “가면서 전파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할 때
(5) 7절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전할 내용 즉, 복음의 핵심
오늘은 이어서 6번째부터입니다.
(6) 8절 “병든 자를 고쳐주며…” 전도의 방법입니다. 상대방의 필요의 욕구를 채워주며 하라는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주신 것으로 하면 됩니다. 병든 자를 고쳐줄 능력이 없다 구요? 걱정하지 마세요.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했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주면서 하면 됩니다. 베드로가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나사렛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소망이요 기적을 일으킵니다. 성도는이요 예수를 가졌다면 다 가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잃었다면 다 잃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방법은이요 없는 것을 도적질 하다가 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하면 됩니다.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벗어주면서 하는 겁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무엇을 못합니까? 예수님 때의 종교 지도자들은 입으로만 했습니다. 이미 네게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을 활용하십시오. 주를 위해서 사용하세요.
(7) 8절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대가를 바라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했습니다. 다윗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 이미 받은 은혜가 많습니다.
(8) 9-10절 “전대나 금이나… 두벌 옷이나… 저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염려하지 말고 믿음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염려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못합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 못합니다. 여자나 남자가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염려를 많이 하여 결혼을 못합니다. 살면서 해결이 됩니다. 저 아시지요. 결혼할 때 토큰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도 결혼해서 잘 살잖아요.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염려는 믿음을 병들게 합니다. 염려는 사단이 뿌리고 간 것입니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눅 12:11) 우리의 의식주 뿐만 아니라 우리가 권세 가진 자들에게 끌려가도 우리가 말할 것에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9) 11-13절 “영접하는 자의 집에 평안을 빌고 그곳에서 머물라.” 영접하는 자의 집은 교회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의 집에서 교회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에 갔을 때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행 16:14) 이 여인을 만남으로 유럽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 교회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한국 최초의 교회를 세운 사람은 서상륜입니다. 이 사람은 만주와 조선을 오가며 인삼장수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만주에서 인삼을 팔던 그는 어느 날(1878년 30세) 갑작스럽게 열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고향친구 몇 명이 달려와 그를 현지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그곳에서 만나게 된 사람이 바로 로스 선교사(John Ross)입니다. 또 그곳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매킨타이어 선교사(John MacIntyre)의 끈질긴 전도를 받게 됩니다.
당시 서상륜의 병세는 매우 위독했습니다.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던 로스 선교사는 ‘서상륜이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이른 그는 결국 병이 완치되면 예수를 믿기로 약속합니다. 여러 달 동안의 정성어린 치료와 간호로 완쾌되자, 그는 약속대로 예수님을 믿고 매킨타이어 선교사에게서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당장 로스 선교사를 도와 성경번역에 착수했습니다. 1883년 그는 이렇게 완성된 성경 100권을 지니고 압록강을 넘어 국내 잠입을 시도합니다. 밀입국을 시도하던 서상륜은 입국 도중 관헌에 발각되고 맙니다. 구사일생으로 성경 10여권만을 지닌 채 탈출하여 숨어있던 곳이 가족의 고향인 황해도 소래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그는 교회를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한 자의 집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한국최초의 종합대학이 어느 대학인지 아십니까? 이화여자 대학교입니다. 메리 스크랜톤 여사가 1886년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단 한 명의 학생으로 자기가 살던 집에서 이화학당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 여인은 1855년 윌리암 T. 스크랜톤(William T. Scranton)과 결혼하여 외아들을 낳았는데, 1872년에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그리고 1884년 52세의 늦은 나이에 미국 감리교회에서 한국에 파송하는 첫 여성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스크랜톤 부인은 아들 윌리암 B. 스크랜톤과 함께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왔습니다. 아들을 윌리암은 예일대학(1878)과 뉴욕 의과대학(1882)을 졸업했습니다. 아마 한국에 늦게 들어온 것은 아들 공부시키느라고 그런 것 같습니다. 아들 윌리암은 제중벙원에 일했고 후에 최초의 민간병원인 정동병원을 운영하다가 1890년에는 상동병원(현 남대문시장 상동교회 자리)을 설립했습니다. 그는 성서번역위원으로도 활동하며 로마서 에베소서를 주로 번역했습니다.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중국인 셋이 모이면 중국집이 생기고 한국인 셋이 모이면 교회가 세워진다는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10)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mevsw/:메손-중앙에)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뱀(o[fei”:옵히스)는 뱀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해독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쳐다보다(ojptavnomai:옵타노마이)의 동사에 왔습니다.
시 58:3-4 “3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같으니” 거짓을 말하며 남을 속이는 사람의 말은 악한 것입니다. 독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죽입니다.
모세가 구리 뱀을 달아놓고 쳐다보게 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연습시켰습니다. 쳐다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자는 살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독에서, 죄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마가복음 16:17-18에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지혜(frovnimoi:프흐로모이) “슬기로운, 사려 깊은, 신중한” 는 어근 단어 frhvn 프흐렌(감정, 정신, 지혜)에서 왔습니다. 이 뜻은 “고삐를 매다, 자갈을 먹이다.” 에서 유래되었는데 fravssw 프흐랏소 “에워싸다, 포위 당하다”의 동사에서 옮. 우리 속담에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지혜란 다름 아닌 깨어있는 것입니다.
마 25:2, 4, 8, 9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들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했습니다. 높은 곳에 마음을 두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약성경부터 일관되게 낮은 곳을 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높은 곳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생각입니다. 사람의 뜻입니다. 낮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높은 곳을 보면 여러분 행복이 없습니다. 항상 불만입니다. 그러나 낮은 곳을 보는 사람은 항상 감사합니다. 지혜로운, 깨어있는 다섯 처녀와 같아야 복음을 전합니다.
순결(ajkevraio”:아케라이오스) “순수한, 썩지 않은” 부정 불변사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단 한차례 더 나옵니다.
빌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합니다. “순전하여”라는 단어가 바로 “순결”입니다. 이 절의 말씀을 잘 보십시오. 공부 잘하는 학생은 문제에서 답을 찾아냅니다. “순전하여”라는 단어의 양쪽에 눈에 띄는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무엇입니까? “흠”이라는 단어입니다. 순결을 잃어버리면 흠이 생기는 것입니다. 순결은 흠이 없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동물은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흠이 없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께 바칠 수 없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레 21:17 “아론에게 고하여 이르라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중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라” 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순결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순결한 마음, 썩지 않는 마음, 변하지 않는 마음이 순결입니다.
히스기야 왕 때에 “20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21 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대하 31:20-21)고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자들이 순결한 것입니다. 내가 빛이면 자동적으로 빛이 납니다. 그러나 내가 어둠이라면 아무리 애를 써도 복음은 전달되지 않습니다.
“코이”라는 잉어가 있습니다. 이 잉어가 사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사는 공간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8센티미터 밖에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족관이나 연못에서 키우면 15-25센티미터까지 자랍니다.
그러나 “코이”를 강물에 방류하면 90-120센티미터까지도 성장합니다. 우리들의 꿈도 똑같습니다.
주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함께가자!” 주님과 동행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점으로 주전(B.C.), 주후(A.D.)이 구분됩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과, 후는 분명 다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고후 5:17). 이제 우리는 새롭게 된 사람답게 그리스도인 답게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