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 10:10-13)
닭고기는 유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육류입니다. ‘어머니’ 하면 닭고기 스프를 연상할 정도로 유대인에게 있어서 닭고기는 중요합니다. 갈렙은 양계장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번창일로 였습니다. 사업가로 상당히 성공한 그는 행실이 좋지 않았으나 금요일마다 교회에 나와 버젓이 경건한 유대교인으로 행세를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랍비가 물었습니다. “갈렙씨, 요즘 당신에 대한 불미스러운 소문이 나돌고 있어서 몹시 걱정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습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랍비 선생님도 아시다 시피 전 금요일엔 반드시 교회에 나오고.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을 읽고 있는데요.” 그러자 랍비는 “갈렙씨, 당신은 매일같이 당신의 양계장에 나가죠? 하지만 매일 닭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탈무드) 그랬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입니다.
한국교회 목회자 252명에게 “교회 내부의 가장 큰 문제점” 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삶의 변화 없는 은혜만 추구함’ 이 11.6%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이 ‘믿음과 실천의 불균형’ 을 11.0%로 뽑았습니다. 두 가지는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고 10.8%가 ‘목회자 윤리 부재’, 10%가 ‘개교회 주의’ 순위로 나타났습니다.
“孟子曰 順天者(맹자왈 순천자)는 存(존)하고 逆天者(역천자)는 亡(망)하니라.”
맹자가 말하기를 “하늘의 명(命)에 따르는 자는 살고, 하늘의 명을 거역하는 자는 망하게 된다.” 는 뜻입니다.
맹자는 성경에서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우상에게 절하거나 조상신에게 빌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맹자가 말했던 “하늘의 뜻” 이란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살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면 죽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이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버리면 죽습니다.
시 37:20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사 1: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고 했습니다. 악인이 한 때 좋아보이고 잘 나가는 것 같아도 결국은 패망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거두시기 때문입니다.
롬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율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입니다.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지킨 사람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율법 자체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율법 없이” 란 말은 하나님의 법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자는 다 망하게 됩니다.
야고보 장로님은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 2:12)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삽니다.
신 8: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에스겔 18:28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아가서의 표현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엄중한 말씀으로만 우리를 “살고, 망한다” 는 식의 표현으로만 고 우리를 이끄시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구약성경인데요 그 말씀이 시편을 능가하는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아름다운 말씀을 대하면서 저의 딱딱한 면 때문에 하나님의 온유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제가 가로막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가서는 남녀간의 사랑의 표현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달해준 책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신랑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신부인 여자는 우리들입니다.
신랑의 모습
신랑, 하나님의 모습이 아가서 1장에 나옵니다. 5절에 “예루살렘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라고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를 데려가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모습니다. 그의 모습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아 1:6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흩겨보지 말 것은” 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열심히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얼굴을 햇볕에 쬐여 거무스름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보면 안됩니다. 그분의 그런 얼굴 모습은 나를 위해 그렇게 되신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의 주름살은 나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자식은 자식이 아닙니다. 저희 아버님은 다리를 저셨습니다. 절뚝거리며 강원도를 오가며 보따리 장사를 하셔서 저를 키우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그 십자가는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닙니다.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 1:23) 라고 했으며 고전 1:18에서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검게탄 주님의 얼굴을 사랑합니다. 그의 육체적 모습은 흠모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합니다.
우리를 부르심
이분이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을 들어보세요. 아가서 1장에는
7절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9절 “내 사랑아” 13, 14, 15절에 “나의 사랑하는” 이라고 부르십니다.
오늘 본문 10절, 13절에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라고 불러 주십니다. 십자가를 지시면서 사랑해 주셨던 분의 음성이 분명합니다. 주님의 이 음성을 듣는 사람은 살아납니다.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던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 예루살렘에 넘겼습니다. 그러나 그도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얼굴이 검게 타시고, 제대로 쉴 곳이 없어 나그네처럼 다니시고, 머리 둘 것이 없이 이 땅에 잠시 오셨던 주님, 그분이 왜 그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을까요?
네. 우리를 당신이 계신 곳으로 데려가시기 위함입니다.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간곡히 요청하십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일어나십시오. 주님과 함께 갑시다. 성전을 지을 때 하나님이 야킨(우:그가 세우신다), 보아즈(좌:그가 지키신다) 두 기둥 꼭대기에 쇠사슬에 석류 100개를 매달아 달았습니다(대하 3:16). 우리를 세우시고 지켜주시는 주님께서 쇠사슬로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게 온전히 붙들어 메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버리시고 오셨습니다. 라오스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님이 그곳 장관들을 모시고 경비를 들여서 한국에 오셨습니다. 한국에 처음 온 그분들은 라오스에서 선교하는 것을 방해하고 한국 선교사님들을 오해하다가 한국에 와서 보고는 이런 잘 사는 나라에서 라오스에 와서 고생한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고 했습니다.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것으로 24절기(二十四節氣)가 있습니다. 한 달에 두 개의 절기가 들어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처음에 시작하는 절기가 입춘(立春 2월 4일나 5일)입니다. 입춘 다음에 우수, 경칩, 춘분 … 동지, 소한, 대한입니다. 그런데 이 절기 중에서 제가 중학교 때 새벽에 신문 돌렸는데요 한자로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써 놓은 대문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절기는 별로 신경 안 씁니다. 계절 중에 봄이 오는 것은 어둡던 죽음의 땅속에서 기지개 펴듯이 생명이 싹트는 계절이 오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의 집에는 겨울이 가고, 십자가의 사건은 끝이 나고,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는 꽃과 각종 열매가 가득합니다. 꽃은 아름답게 피어 있습니다. 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가기만 하면 됩니다.
“함께 가자”는 주님의 부름에 기뻐 뛰어 나오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희 누님이 어려운 일을 당해서 병원에 누워 있습니다. 아직 약간 기억이 안 나는 것이 있나봅니다. 사람마다 저에게 누님 정신나라고, 기억을 뒤 찾으라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은 기억나게 하지 말게 하여주시고 기억해도 좋은 것만 기억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렇게 기도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보다 더 큰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최고의 영광, 축복, 기쁨,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그 안에 살아가는 것 보다 더 영광스러움은 없습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모두 다 그 아래 입니다. 예수 믿는 거 이상의 성공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성공을 해서 축복을 받았다고 할 찌라도 하나님을 믿는 축복 같은 이 복을 이 세상에서는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 안에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시시합니다. 사도 바울은 배설물 같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가 나에게 잘해줘도 좋고, 못해줘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나의 사랑하는 자야” 라고 불러주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