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시는 하나님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25 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26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28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신 1:25-33)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옴즈씨를 구하려고 북한에 들어갔습니다. 언제나 악역은 북한이고 선한 역할은 미국이 하고 있습니다. 참 멋있는 나라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지난번에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인질로 잡혀있는 두 기자를 데리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나라에서 살고싶다 그런 생각을 하게됩니다. 한사람의 미국 국민을 위해서 기꺼이 전직 대통령까지 나서서 힘을 보태는 나라, 한 사람의 국민을 포기하지 않는 나라, 바로 그런 국가를 우리 모두는 꿈꾸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 다른 사람들이 이 땅에 와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제 자식, 제나라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다른 민족, 다른 사람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에 오셨습니다. 먼저 선택했던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래 전에 아브라함 때부터 선택했던 유대인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결과 비참한 결과를 체험했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유대인에게 보냄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미국이 하나님의 이런 정신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왜, 모세와 바울을 선택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알고 보면 살인자입니다. 모세는 자기 동족이 학대받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참지 못하고 애굽 인을 쳐죽였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목동으로 살았습니다.
바울은 유대교에 빠져서 지나친 열심 때문에 예수님을 모를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예루살렘에 보내고 죽였습니다. 바로 스데반이 죽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장본인이 바울입니다. 바울은 그것이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구약에서 제일 많은 성경을 쓴 저자들이 바로 살인자들입니다. 그것이 정당화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두 살인자를 불러 사용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그들에게는 동족을 사랑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지나쳐서 살인 할 만큼 동족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동족의 죄를 위해서 모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2)
바울은 예수님께 돌아와 모든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전제는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 바칠 때 전제로 드리려고 했던 것이잖아요. 바로 그와 같이 자신은 성도를 위해서라면 불태워서 죽는다 해도 기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 사회를 보면서 때로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개인을 보호하고 열심히 사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국가입니다. 오히려 진짜 개인주의가 우리나라 아닌지 우리 자신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과 국가는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왜 들어가지 못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의 길을 인생에 자주 비교합니다. 또한 가나안땅은 천국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람들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래 전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이지만 오늘날에도 똑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잘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답이 없습니다. 문제는 많이 지적하지만 길은 찾지 못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고 합니다. 언제나 우리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합니다.
지난번 MBC에서 4대강 문제점을 담은 PD수첩을 방송하려고 했다가 사장단의 검열로 방송을 취소하였습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일로 MBC노조는 크게 반발했습니다. 그러나 자성의 목소리도 함께 나왔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은 말하기를 ‘MBC가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강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번에 제작을 맡았던 팀은 지난번 광우병을 보도한 팀입니다. 여러분! 바른 것만 가지고 안됩니다. 바른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국가를 생각하고 어떤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인지를 생각할 때입니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특정한 정치세력에 서 있으면 안됩니다. KBS만 공영방송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공영방송과 같은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나라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북한을 보세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지 않습니까? 지금 정권이양 한다고 홍수로 온 나라가 엉망이 되었는데도 평양에 모여서 저 열광하는 것을 보세요. 우리가 지금 싸울 때가 아닙니다. 말이면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도와야 합니다. 미국도 평온할 때는 대통령 개인생활도 다 문제삼습니다. 그리고 뒤도 캡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가 여유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위기 상황에서는 대통령에게 힘을 모아 주는 것입니다. 현 정부가 다 잘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를 위해 때를 알고 할말만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얼마나 축복을 받았습니까? 5천년 역사이래 지금처럼 세계 속에 함께 한 적이 있습니까? 세계주요 선진국 20개국 정상이 다 모여듭니다. 세계가 한반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연일 아마 전 세계가 한국을 소개하고 알릴 것입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그래도 참 우리나라 좋아졌습니다. 대통령도 총리, 장관 아무나 못시킵니다. 지난번 청문회에서 총리후보자가 어렵게 살았다고 보리밥만 먹었다고 하니까 야당 의원이 그 당시 그럼 우리나라 사람이 다 그렇게 살았지 총리 후보자 아버님만 그렇게 사신 것이냐고 하면서 우리 집은 보리밥이 없어서 밀가루만 먹고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럼 저희 집은 밀가루도 부족해서 감자만 먹고살았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선교사님이 10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인데 대륙이 아니라 오른쪽 인도양에 있는 큰 섬입니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입니다. 케냐와 면적이 거의 비슷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자주 자연다큐에서 소개될 때 카말레온이 자주 나옵니다. 자연 습지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곳은 다릅니다. 한국에 온 학생들은 한국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부럽기도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특히 가는 곳마다 산에 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다는 산에 거의 나무가 없다고 합니다. 나무를 베어서 숯을 만드느라 산이 민둥산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가뭄이나 태풍 같은 수해로 한해 농사가 흉년이 들까 봐 농민들이 애를 태웠습니다. 그런데 남한은 오히려 풍년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쌀 재고가 자꾸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대풍이 예상됩니다. 쌀이 남아도는 걱정을 해야하다니 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잘 보존하고 나누는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25절 “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고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지시하신 땅은 확실히 좋은 땅이라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이제 그곳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다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왜 들어가지 못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해야 됩니다.
본문 26절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라고 말합니다. 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원해야 됩니다. 기도가 다 무엇입니까? 원하는 것입니다. 땅속으로 굴을 파고 다니는 쥐도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곳에 가두면 3분이면 죽는답니다. 그러나 빛줄기 하나를 비춰주면 36시간을 산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입니다.
원망했습니다.
본문 27절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고 했습니다. 여기 잘 보면 원망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 번째가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라고 했습니다. 장막은 그들의 집입니다. 집에서 나오지는 않고 집안에서 원망만 하는 것입니다. 일하지는 않고 않아서 말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잠 13: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가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라고 합니다. 여러분! 언제 하나님이 자기들을 미워했습니까? 그런데 왜 자기들을 미워하신다고 말합니까? 자기들이 볼 때 조금 힘들어 보이는 일이 생겼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소설을 잘 씁니다. 자꾸 꾸며내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왜 성경을 봅니까? 우리 멋대로 생각하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입니다.
잠 14: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목숨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 안됩니다. 비행기 조종하시는 분들은 자주 하늘과 바다를 착각하기 때문에 자기 눈을 믿지 말고 계기 판을 믿는 훈련을 꾸준히 한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비행기 계기 판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결론입니다.
본문 28절 “우리가 어디로 가랴” 그럽니다. 갈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백성은 갈곳이 없습니다.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러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말은 낙심케 할 뿐입니다.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자신들만 생각합니다. 자기들이 싸우면 패하지요. 실제로 본문 다음에 신 1:40-44에 보면 아모리 족속과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돌이켜서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42절에서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힘만을 믿고 싸우러 갔습니다. 그 결과 대패입니다. 45절에서 통곡하고 울었지만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듣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전쟁은 패망입니다. 왜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합니까?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을 왜 믿지 못합니까? 인간의 교만함과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4)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생각과 다릅니다.
29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고 하십니다.
30절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에서 크라이막스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어린양이 아닙니까? 아무 대책 없이 하나님이 지시하시고 가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지금 얼마나 어떤 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본문 31-33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잘 표현합니다.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32절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