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를 기억하라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말씀(50. 6.25를 기억하라) / 본문 : 마가복음 8:15-18

“15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16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오늘은 6월 25일입니다. 56년 전인 1950년 6월 25일 새벽3시 바로 오늘 주일날 새벽에 야음을 틈타 3.8선을 넘어 이북의 공산당이 소련제 탱크 500여대와 항공기 200대 보병 20만 명으로 전면 남침을 하였습니다. 남쪽에서는 전혀 전쟁을 막을 만한 무기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무참히 당했습니다. 소총으로 탱크를 막아야 했습니다. 방법이 없었습니다. 수류탄을 몸에 묶고 돌진하는 탱크를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56년 전 이 민족이 겪어야 했던 놀람과 쓰라린 아픔을 생각하면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안됩니다. 이런 민족적 아픔을 생각지도 않고 오늘날 소위 대학 교수라는 어떤 분이 누가 침략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막심하였습니다.
대략 300만명이 살상되었고 그 중에 전투원의 전사가 21만명, 외국군 전사자가 22만명, 인민재판 등으로 인하여 학살당한 양민은 13만명, 치납 8만5천명, 행방불명 30만명, 남편 잃은 미망인이 29만명, 고아 4만명, 교역자(목사)가 535명이 학살되고, 교회가 2,122개소가 파괴되었습니다. 여러분! 교회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십니까? 주님의 피와 살과 같은 교회입니다.
실로 피와 죽음으로 점철된 전쟁이었습니다. 6.25 56돌을 맞아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오늘 성경 본문 말씀과 함께 우리 민족의 수난을 더듬어 생각해 보는 가운데 이와 같은 민족적 수난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6.25 전쟁 당시 충남에서 강경 침례교회를 담임하셨던 이종덕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조용하던 강경 지방에 어느 날 공산당이 들이닥치자 마을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모두들 공산주의자가 된 듯이 행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던 사람들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목사님은 후배인 김장배 목사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부탁하며 두껍고 큰 종이를 가져왔습니다. “목사님, 이 두꺼운 종이로 무엇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내 명함을 만들려고 하네.” “명함이요? 생전 명함 한 장 안 지니시다가 갑자기 명함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종덕 목사님은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후배 목사에게 큰 종이를 명함 크기로 자르도록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그 명함종이에 ‘강경 침례교회 목사 이종덕’이라고 쓰도록 했습니다. 후배 김장배 목사는 시키는 대로 쓰면서 다시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이 명함을 어디에 쓰시려고 하십니까?”
“이 명함을 가지고 다니면서 경찰이고 공산당원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나눠주려고 하네.”
“아이고 목사님, 다른 사람들은 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숨기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봉변이라도 당하시면 어떡하려구요.” “아니 이 사람이! 자네도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운가? 내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라는 사실을 숨겨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 목사님은 그 명함을 뿌리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공산당의 총탄에 맞고 순교하셨습니다.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6.25 전쟁이 발발한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삼상 17:47). 이 민족의 죄악을 심판하고 경고하시기 위해서 6.25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첫째로, 이 민족은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습니다.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할만큼 교회가 부흥했던 도시였습니다. 1907년 1월 16일 한국 교회 최초의 성령강림이 있었던 곳이 평양장대현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일제 시대 때 한국 교회는 신사참배를 하고, 성도들에게 이를 권장하기까지 했습니다. 교회의 종을 떼어서 일본의 전쟁무기를 만드는 데 헌납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주의 종들을 파면했을 뿐만 아니라, 감옥에 집어넣어서 온갖 고문을 당하여 죽게 했습니다.
둘째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의 죄도 모자라서 해방을 전후로 치열한 교권 싸움과 교회 분열이 한국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5만 1천여 교회, 10만 주의 종, 1,000만 신자를 가지게 되었다고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천년 동안 정교회 국가였던 러시아에서 제일 먼저 공산주의가 일어났고, 종교개혁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서 히틀러가 나타났습니다. 교황청이 있는 이태리에서 독재자 뭇솔리니가 나타났으며,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평양에서 공산주의가 일어나서 남한을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개인, 교회, 국가 모두에게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다시 전쟁의 징계를 받지 않도록 이 나라의 빛과 소금이 되며, 민족의 파숫군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파숫군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숫군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겔 33:6-7)라고 경고하십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므로,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엡 6:12). 그럴 때 이 민족이 변화되고, 이 땅에서 전쟁이 사라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하나됨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경계해야 합니다.
본문 15절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예수께서는 비록 당신이 목숨을 내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그 시점이 되어서는 스스로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사역하시는 동안에는 당신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들로부터 경계했습니다. 경계로 번역된 원문은 diastevllomai(디아스텔로마이)로 “따로 떼어놓다”입니다. 악한 것은 우리가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들어옵니다. 사단은 그것을 노립니다. 전방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군인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깨어있지 못하면 어느새 적군이 내 목을 베어갈지 모릅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예수님 때의 경계의 대상은 바리새인과 헤롯당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헤롯당은 예수님 탄생 때부터 예수님을 죽이려고 무고한 2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죽인 집안입니다. 바리새인은 어떻게든 예수님의 흠을 잡아죽이려고 하는 무리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의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 믿기가 어렵습니다. 오늘날에도 바리새인과 헤롯당원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공산주의가 그렇습니다. 미국은 모든 정치의 자유는 허락하되 공산당은 헌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공산주의가 하나님을 대항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는 정교회를 핍박하고 가두었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자유롭게 전하지 못하게 방해를 합니다. 중국의 공산당은 더 핍박이 심합니다. 베트남의 공산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산국가가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나라가 한나라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이며 인간 최악의 정치집단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철이 없어도 공산주의를 옹호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곳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사람의 생명을 쉽게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목적으로 위해서 사람의 생명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사람의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공산주의 사상이 들어오는 것이 바로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과 같은 것입니다.

6.25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안타까운 심정의 표현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본문 18절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왜 기억을 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많은 절기를 지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절기의 목적은 모두가 하나입니다.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 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민 10:10)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때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이스라엘민족에게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바로 그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을 광야생활 가운데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6.25노래에도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이라고 노래합니다. 망각의 동물인 인간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수치스러운 역사나 불행했던 과거는 빨리 잊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과거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40년 광야 생활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6.25를 통해서 역사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베트남이나 중국처럼 공산화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화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북한이 침공했을 때, 유엔 파병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소련 대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오던 중 이유 없이 차의 시동이 꺼지는 바람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여 유엔군의 한국파병이 결정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를 사랑하시고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 것입니다.
6.25는 자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회초리입니다. 성경에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 7:14)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6․25를 맞이할 때마다 자녀들에게 지난 잘못을 이야기해 주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가르쳐야 합니다.

다시 6.25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6.25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이 지구상에 오직 우리민족만 분단된 채로 남아있습니다. 통일을 빨리 앞당기고 이 민족이 하나되는 길을 오늘 본문 17절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떡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그분의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일어서는 것은, 6.25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이 나라에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6.25전쟁 이후 육체적, 영적으로 굶주림에 허덕이던 이 민족이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의 능력과 기독교 신앙 때문입니다.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하는 긍정적인 신앙과,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적극적인 신앙이 심겨졌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눈에 아무 증거 안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풍성한 축복을 받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벧전 1:21).

이제 조금 살만해 졌다고 하나님을 버리면 망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과 같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말씀처럼 사단은 다툼으로, 전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에 힘을 쏟습니다. 성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은 예수님은 성령님은 우리에게 화평을 주러 오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이 화평을 이룹니다.

최근 미국 기독교 언론보도에 의하면 정기적으로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성인의 비율은 선진국 중에서 미국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시간 대학이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매주 드려지는 예배나 종교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미국인의 비율은 전체성인 미국인 인구의 44%인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전 인구의 38%인 캐나다와, 27%인 영국 그리고 21%인 프랑스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며, 이밖에 독일은 14%, 러시아는 25%인 것을 각각 조사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민족이 축복을 받습니다. 미국은 세계제일의 선진국이지만 동시에 여전히 제일 많은 사람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세계제일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내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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