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신 가정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말씀(43. 하나님이 주신 가정) / 본문 : 눅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1997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장관을 열 네 명을 임명했는데 일곱 명이 거절했습니다. 그리스토퍼 국무장관도 안 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느냐 가정 때문이라는 겁니다. 나는 가정으로 돌아가서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라는 겁니다. 우리 같으면 안 불러줘서 못 갑니다. 아마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할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만은 않습니다. 가정은 장관이상으로 높이는 사회일수록 그 사회가 건강한 사회, 복 받는 사회입니다. 가정은 어떤 빌딩보다도 더 높은 집이 가정의 집이고, 어떤 산보다도 산 위에 있는 집이 가정의 집인 것입니다. 이 땅에 가정보다 귀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모든 생명에게 주신 선물은 가정이라고 하는 집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모두가 가정 중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가정의 종교입니다. 가정을 버리고 떠나 혼자 도를 닦는 종교가 아닙니다. 또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사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도 가정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함으로 방주를 만드는 것도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아들을 낳아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도 그 시대의 한 족장의 이야기입니다. 이삭이 리브가와 함께 쌍둥이를 낳아서 살아가는 이야기, 야곱의 열 두 형제와 함께 복을 받는 족장들의 이야기, 모두가 가정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로 넘어가면서 모세 가정이야기가 나옵니다. 룻기서에는 남자들이 다 죽고 없어 한 가정이 멸망을 당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방 여인이지만 룻을 통해 시어머니(나오미)를 잘 모시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을 통해서 다윗 가문을 일으킵니다. 사무엘상으로 가면서 한나(남편 엘가나)가 낳은 아이 사무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은 전부 가정 이야기인 샘입니다.

천국은 가정이고, 가정은 작은 천국입니다. 천국에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아들이 있는 것처럼, 가정에도 부모와 자녀가 있습니다. 천국에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 신부인 성도들이 있는 것처럼, 가정에도 신랑과 신부가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사랑하는 부부가 사는 가정은 보이는 낙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가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초의 축복의 장소요, 인간의 진정한 안식처인 것입니다.
교회는 또한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마가의 집이었고, 에베소 교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이었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눔바의 집이었고,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의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는 가이오의 집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모든 청소년의 문제도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열 명 중 여섯 명의 아이들은 술 먹는 집 아이들에게서 청소년이 탈선한다라는 겁니다. 술 먹는 부모의 자녀들은 탈선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다섯 명 가운데 세 명은 부부가 가정불화를 일으킬 때 자녀들의 성격이 잔인해지고, 난폭해지고, 잘못된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네 명 가운데 세 명은 부모의 허락을 받아 아무데나 가는 아이들이 결국 잘못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벽돌쌓기를 하면서 노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하도 열심히 쌓고 집중해서 놀고있기에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너 뭐 만들고 있는 거니”하니까 아이가 대답하기를 “쉿 조용히… 교회를 만들고 있어요!”그러는 겁니다. 아버지는 기특해 하면서 “그 동안 교회 가서 떠들고 장난만 노는 아이인줄 알았는데 교회를 만들고 있다니”라고 생각하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조용히 하라는 거지?” 그 때 아이가 대답하기를 “다 자고있잖아요. 깨우면 안돼요.”라고 하더랍니다. 이 아버지는 교회 가서 졸은 것이 아니라 아주 주무신 모양입니다.

교육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삶이 교육입니다. 아이들은 본대로 따라합니다. 우리가 성경책 보면서 넘기니까 서은이가 책보면서 넘기잖아요. 교회 와서 아이가 저렇게 잘 적응할 수 없습니다. 원래 어린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은이를 보면 참 기특합니다. 아마 서은이도 갑자기 교회에 나왔다면 못 견딜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 나오고 태어나서 바로 교회에 오게되니까 적응을 한 것이지요. 성경보고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자란 아이는 세상아이들과 다른 겁니다. 부모님들! 조금 귀찮아도 자녀와 함께 교회 나오시기 바랍니다.

17세기 프랑스의 화가 밀레의 두 그림을 보시겠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두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니다. 가정은 열심히 땀 흘리고 부지런히 일해야 가정이 축복을 받고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겁니다. 열심히 일하는 곳에 가정의 위로와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가정은 땀흘려 거둔 것을 가지고 먹고사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돈으로 꾸미는 것은 아닙니다. 땀으로 꾸며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겁니다. 이런 모습을 자녀들이 보고자라야 합니다.
우리는 “축복”하면, 나의 노력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축복”이란 아무공로 없이 받은 은혜인 “구원”과는 달리, 뿌린 대로 거두고, 심
은대로 열매 맺으며, 내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려
서 모은 재산을 속아서 한 순간에 날리거나 또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있습니까? 이렇게 노동의 신성함을 거부하고, 수고하고 땀 흘리기를 싫어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사람입니다(살후 3:10하). 하나님조차도 6일 동안 일하시고, 수고하셨기에 창조의 기쁨을 맛보셨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밀레 그린 두 번째 보면 밀레 그림에 두 부부가 같이 마주서 있는 모양이 아름답고 행복한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 같이 보면서 사랑해야 합니다.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면서 서로 사랑하는 그 사랑이 그림 속에 있습니다. 또한 이 그림은 서로 겸손히 고개 숙인 모습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교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겸손히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기도하는 모습니다. 기도로서 한 마음이 될 때 진정한 하나님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D.W. 게랄드(Gerald)는 “행복이란 우리 자신의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지, 남의 집 정원에서 뽑는 것이 아니다”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어디에서 뽑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온 가족이 한 마음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고 싶지 않으십니까?
꽃이 만발하고 향기 가득한 정원으로 가꾸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도 이와 같이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 수 있을까요?
신명기 6:2절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요.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여호와를 경외하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부모를 우습게 생각하는 자식은 문제가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를 우습게 생각하는 자녀 하나님도 우습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자녀 부모에게 순종합니다. 부모가 나중에 자녀들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느냐! 그것은 한마디로 부모하기 나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로 키우시기를 바랍니다. 그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는 예배하며 기도하고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돈주고 학원은 보내도 가정에서 예배하며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등한히 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학원에서 사람 만드는 것 아닙니다. 지식은 조금 나아질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 때로는 우리도 장관직도 사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가정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윌리암 하킹은 ‘가정이 없는 곳에 국가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역사가들은 나라가 망하기 전에 가정이 망한다고 합니다. 가정이 건강한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정 다 팽개치고 나라일 한다고 다 나가면 가정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1809년 가난한 구둣방 가정에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주위에서는 이 아이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의 미래를 내다보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면 꼭 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성경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아이가 아홉 살 되던 해 어머니는 풍토병에 걸려 숨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숨지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이야, 너는 부자나 위인이 되기보다는 성경을 힘써 읽는 사람이 되라” 그리고 어머니는 성경 책 한 권을 남기고 이었습니다. 이후 이 아이는 자라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미국에서 30년 전에 가정생활 강의로 이름난 제임스 해치 교수가 행복을 위해서 세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는 입을 열라(open mouth)는 것입니다. 부부간이나 부모와 자녀간에 대화가 없으면 서로 마음을 닫는 결과가 온다는 것입니다. 연애시절처럼 말을 많이 할수록 행복의 수치는 올라간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화’하라는 것입니다. ‘대’놓고 ‘화’내는 것이 대화가 아닙니다.
둘째는 귀를 열라(open ear)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려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귀를 닫아버리면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는 결과가 온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함께 계획을 세우라(make schedule)는 것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함께 하라는 의미입니다.

존 웨슬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세 가지 질문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첫째, 너에게 준 시간을 어떻게 관리했느냐?
둘째, 너에게 준 재산을 어떻게 관리했느냐?
셋째, 너에게 맡긴 자녀를 어떻게 양육했느냐?
유대인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곳에 직접 계실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냈습니다. 어머니가 계신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어머니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어머니의 손이 가는 곳에 하나님의 손이 가는 것이며, 어머니가 일하는 곳에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오던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우리가 진정 울어야 할 것은 내 영혼을 위해서입니다. 내 가정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세워지는 가정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주신 천국으로 알고 열심히 가꾸고 만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키산맥 해발 3.000m 높이에 수목 한계선인 지대가 있습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 끓고 있는 모습”을 한 채 있어야 합니다. 이 나무들은 열악한 조건이지만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를 발휘합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共鳴)이 잘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끓는 나무”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내는 사람은 아무런 고난 없이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어 온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찾아오는 매서운 바람 때문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내는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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