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진리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말씀(5. 해방과 진리) / 본문 : 요한복음 8:31-36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어느 가정에 아내가 며칠간 친정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아내는 혼자 있을 남편이 걱정이 되어 반찬도 마련해놓고, 자기가 없는 동안 옷은 어떻게 입고 나가고, 양말은 어디 있고 등등 여러 가지를 남편을 위해 챙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부인은 못내 미안한 마음으로 ‘가능하면 빨리 올게요’하면서 떠났습니다.
그런데 부인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남편의 표정을 보니, 부인이 없기에 쓸쓸한 표정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부인이 없는 집에 들어선 순간 남편은 땅을 치면서 좋아하더랍니다. “나는 자유인이다. 나는 해방이다!” 마치 8.15 광복절을 만난 것처럼 어쩔 줄을 모르더랍니다.

내일은 우리 나라가 일제치하에서 해방 된지 60주년 되는 날입니다. 이제 일제의 만행과 광복을 체험한 세대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때의 아담과 하와의 죄로 우리가 지금까지 죄의 문제로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일제의 잔재는 아직도 많은 곳에 남아있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한번 엎지르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역사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역사를 교훈 삼아 지금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일제의 만행으로 고통 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사진/위안소에서 도망치다 잡혀 온몸에 문신을 당한 정옥순 할머니.) 저는 이 사진과 이야기가 너무 끔찍해서 주일예배에 전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 전해야 되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성경은 역사를 왜곡하고 있지 않으며 모두 거짓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마다 전쟁기념관을 만들어서 역사적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자료제시 설명).

우리 나라가 해방되었던 1945년의 국민생활 수준을 통계청에서 발표하였는데 당시 평균수명 44세, 유아 사망 율은 1000명당 102명, 인도 다음 2위로 높았으며, 문맹자 77%이었습니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현재 평균수명 남자 73.4, 여자 80.4세로 평균 77세입니다. 그리고 문맹률은 2%정도로 세계 최하위에 속합니다. 우리경제는 IMF을 경험했지만 교만하지 않고 다시 정신을 차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런 민족적 해방을 귀히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동시에 아직까지 자유가 속박되어있는 북한이 여전히 있다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루 속히 자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사람은 속박 당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속박 당하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찾으려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1.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본문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를 모르면 자유 함이 없습니다.
시편 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진리이십니다. ‘진리’라는 말은 ‘참’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참이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의 진짜 거짓말은 ‘나는 절대 거짓말은 안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이시며 진리이십니다.

정부의 정책이 발표되어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대통령이 심각한 얼굴로 담화문을 발표해도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이미 사회와 정부, 국가의 신뢰도는 백성들에게 깨어져 버렸습니다. 백성들이 정부와 국가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이런 나라, 이런 정부가 싫다고 조국을 떠나는 젊은 엘리트 가정들이 늘어나고만 있습니다. 사회 생활하면서 누구를 만나든 그 말을 그대로 믿으려 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 ‘에그, 순진하기도 하지’라고 동정을 살 정도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의가 사라졌습니다.

미국 LA 영락 교회에서 목회 하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몇 해 전, 평양에 가족을 만나러 갔다가 그곳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목사님이십니다. 이 분이 오래 전에 서울에서 목회 할 때, 남대문 시장에 바지를 하나 사러 가셨습니다. 바지 사러 가시는 목사님께 권사님 한 분이 코치를 하셨습니다. “목사님, 무조건 절반을 깎으세요” 그래서 바지 하나를 고르고, 얼마요 했더니 주인이 7천원 이라고 합니다. 무조건 절반 깎으라는 코치가 있었기에, 심호흡을 하고 짐짓 잘 아는 체 하며 ‘아니 왜 그렇게 비싸요? 3천 5백원만 합시다’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풀이 죽는 표정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속으로 ‘옳거니 기 싸움에서 내가 이겼구나’했는데, 그 주인이 풀 죽은 소리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목사님, 그거 원가가 6천원이에요.” 자기를 보고 목사라고 부르는 소리에, 게다가 그 가게 주인이 자기 교인이란 말에 목사님은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다고 합니다.

시편 57:3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셀라}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이제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영으로서가 아니라 육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 내려오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주님은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스스로를 선언하실 때 분명히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2. 진리를 변명으로 거부합니다.

31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아니고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변명합니다.
33절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여러분 아시겠지만 거짓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남의 종 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출애굽을 할 때 왜 애굽에서 탈출해 나왔습니까? 노예 살다가 나온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선조 들이 출애굽기에 그리고 구약성경 전체에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종이 된 덕이 없다니요! 우리는 이럴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게 낫다’ 이런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합니다. 그리고 바벨론 때도 70년간이나 했습니다. 지금도 로마 통치하에 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에게 민족적으로 지금도 자유가 있습니까?
그러면 정말 당시에 유대인들이 이런 것을 모르고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겠습니까?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치적인 예속상태에 있었던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압제 속에서도 종교적인 자유를 빼앗겨본 적이 없다는 일종의 자부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따지면 거짓인 것이 금방 들어 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들이 우상을 섬기고 거짓을 계속해서 행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 보계대로 계수되고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대상 9:1)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거부하면 안됩니다. 제일 무서운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거부한다는 그 자체가 그 어떤 죄보다 더 무서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민족적 자부심도 좋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대항하면 안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을 보면 이런저런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무슨 무슨 가문의 몇 대손 이라고 하는 자부심 때문에, 내가 그래도 어떤 학교를 나왔는데 등등 많습니다.
빨리 손들고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영원한 것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은 일의 활력이 되지만 자만심은 망하게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3. 죄의 종

34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민족적인 노예나 지금 유대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종교적으로 자신들이 잘 지켜왔다는 자부심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극명히 들어 납니다. 그것은 유대 민족적인 해방이 아닙니다. 죄에서 해방입니다. 지금은 민족적으로 해방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로부터 해방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민족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민족이 타민족에게 지배받고 있기 때문에 천국에 못 가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민족은 지배당하고 있을지라도 천국 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민족이 해방되어 있어도 지옥 갈 사람 있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죄의 문제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죄의 종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경 쓰이는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육체가 노예가 되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 또한 죄에게 지배받으면 안됩니다.
목회하기 힘들다고 할 때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런 분 만나면 괴롭습니다. 다른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세례를 받지 않았으면서 세례증명서를 떼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목사님 앞으로 받을 거니까요. 그러면서 떼어줄 때가 다 되었는데도 세례 받을 수 있도록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 같으면 떼어주겠어요 안 떼어주겠어요. 안 떼어줍니다. 이 목사님도 안 떼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분이 나가서 하는 말이 “목사가 융통성이 없니, 목사가 사랑이 없어, 너무 꽉 막혔어!”하고 다니더랍니다.

4. 아들이 자유를 줍니다.

36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뒤에 나오는 “자유하리라”는 해방을 받으리라는 말입니다. 아들은 예수그리스도이시며 진리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죄를 사해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과감하게 종의 멍에를 버립시다. 오랜 관행이라고 하면서 대충하지 맙시다. 정직하게 삽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해방은 죄에서 해방을 바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일제 만행의 증거 정옥순 할머니

정옥순(鄭玉順)씨의 기억은 매우 또렷했다. 그는 함경남도 풍산군 파발리(豊山郡 把撥里)에서 1920년 12월28일 태어났다. 1933년 6월3일 우물에서 물을 긷다가 제복을 입은 남자 3명에게 연행됐고, 끌려간 파발리 주재소에서 강간당했다. 저항하다가 눈을 세게 얻어맞아 이때부터 왼쪽 눈이 차츰 안 보이게 됐다.

그 뒤 10일이 지나 7~8명의 군인에 의해 트럭에 실려 혜산(惠山)에 있던 일본군 수비대에 연행됐다. 그곳에는 각지에서 끌려온 여성들이 많이 있었다. 정씨는 하루에 약 40명이나 되는 군인을 상대한 일도 있어 자궁출혈이 심했다.

그해 8월27일, 칼을 찬 군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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