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오전예배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삼상 1:27-28) 사무엘서는 원래 사무엘상하서와 열왕기상하서하고 하나의 책으로 묶여 있던 것입니다. 나중에 헬라어로 번역되면서(LXX) 왕국기(비블레이 바실레이온:알파, 베타, 감마, 델타)로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서를 시작으로 이스라엘의 왕국기가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무엘상은 마지막 사사로 부름 받은 사무엘과 초대 이스라엘 왕 사울의 죽음까지 나옵니다. 약 100년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룻기 이후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스라엘의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엘가나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한나와 브닌나입니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없었습니다. 엘가나는 열 아들보다 당신이 귀하다고 하지만 한나는 실로에가서 만일 여호와께서 이들을 주시면 여호와께 바치겠다고 맹세합니다. 한나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하나님께 드립니다. 보통 여자가 하나님께 약속한 것 다 지키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자 예수님이 ‘맹세하지 말라’는 것은 맹세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맹세는 했다하면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입다는 자기 딸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하고 관계를 끊으려면 안 지켜도 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하고 합께 가려면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한 여인의 맹세와 그리고 그 지킴이 이스라엘을 새롭게 열고 있는 것입니다.

한나는 2장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합니다.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이런 어머니의 마음은 비록 떨어져 있지만 아들 사무엘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 2:12)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식을 잘 키워야 합니다. 한국교회도 문제가 자식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현재 목회 하시는 분들을 보면 부모님이 서원해서 목사 되신 분이 많습니다. 그냥 네 마음대로 살아라! 이게 너무 강합니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합니다. 자녀에게 부모의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너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잘못하면 매를 때려야 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어느 정도로 문제를 일으키느냐? 하나님께 드리는 고기를 삶는데 자기는 삶은 고기 실어하니까 그냥 달라고 고집을 피웁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 2:17) 제사를 멸시하면 끊난겁니다. 예배를 우습게 생각하면 큰일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제사 드리는 자,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잠자고 있는 사무엘을 여호와께서 세 번 부르십니다. 어린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 알고 달려가서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러면 안 불렀다는 겁니다. 엘리 제사장이 두 번 계속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신다는 것을 알고 음성이 또 들리거든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삼상 3:9) 그리고 하나님 말씀하신 것이 14절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삼상 2:25절의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그랬습니다. 제사장의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에게 속죄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제물로나 예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4장에서는 이스라엘에 치욕적인 일이 발생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4천명을 죽이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빼앗아 갔습니다. 한번 다시 찾아왔는데 또 쳐들어와서 3만 명을 죽이고 빼앗아 갔습니다. 이 소식을 98세, 사사로 40년을 지낸 엘리 제사장이 듣고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가져다가 곁에 두었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이 아침에 가보니까 다곤신의 우상들이 땅에 쓰러져 있는 것을 일으켜 놓았는데 다음날 가보니까 머리와 손목이 잘라지고 몸둥아리만 땅바닥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기가 일어나고 재앙이 그치질 않으니까 가드로 옮겼습니다. 블레셋 지방에 7달을 지내고 법궤를 벧세메스까지 갔다 놓고 돌아갔습니다(6장).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삼상 7:3)
그후 사무엘은 5절에서 “미스바로 모이라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리라” 그리고 다스립니다. 9절에서도 “부르짖으매”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은 예나 지금이 한길 밖에 없습니다. 백성은 우상 버리고 하나님만 따라야 하고, 지도자들은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인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요 나라입니다.
이런 기대가 금방 무너집니다. 사무엘도 엘리처럼 자식들이 또 문제입니다. 장자 요엘과 아비야가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의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합니다. 러시아에서 정교회가 부패하니까 공산주의가 나온 것입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세상의 왕이 세워집니다. 그러나 그 왕 또한 더 악한 왕들만 나옵니다.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삼상 8:6),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 8:7). 어느 교회 사모님이 이단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도 떠나지 않고 목사님을 잘 따르고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참 대단한 교회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성도를 양육하셨는지…

사무엘의 마지막 설교가 1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6절에서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며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는 여호와이시니”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호소합니다. 그러나 이 백성의 현재 상태를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삼상 12:10)라고 잘 말해 줍니다. 무조건 회개하고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하고 돌아와야지 본문을 잘 보세요. 조건부입니다. 자기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구원해 주시면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조건부 신앙이나 하나님께 이러한 상태의 신앙은 안됩니다.

사울의 처음 통치 행위는 사무엘을 통해서 여전히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수행하는 형태였습니다. 일종의 하나님은 섭정을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시고자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이 차질을 빗기 시작한 첫 번째 사건은 블레셋과의 전투에 출정하기 전에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떠나는 것인데 사무엘이 지체하여 나타나나지 않자 사울 왕이 “부득이하게 번제를 드렸나이다”(삼상 13:12). 이것이 첫 번째 사울왕의 범죄입니다. 이 일로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삼상 13:14)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사건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든 백성을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삼상 15:9). 이 일로 하나님은 사울 왕을 세운 것을 후회하셨습니다(11절). 자기 생각에 좋은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지 말씀이고, 목사님 설교이고 간에 다시 자기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입니다. 모두가 사울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 이해가 안 되도 여러분의 생각에는 선한 것이 따로 있어도 하나님이 더 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룟유다의 생각보다 못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니까 하나님이 더 이상 사울하고 같이하셔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그 사람하고 하나님이 계속 함께 하셔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사탄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울 왕에게 사탄이 들어갑니다, 사탄이 들어가면 누구 마음대로 사는 겁니까? 사탄의 조종을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이후 사울의 삶은 애꿎은 다윗을 죽이려고 따라다니다 망합니다. 사탄이 들어가면 용서를 못합니다. 시기와 질투심만 일어나기 때문에 선한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다. 사울이 그렇게 변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길 때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이 선이 아닙니다. 선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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