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오전예배

“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삼상 7:1-2)

사무엘하는 사울의 죽음(B.C. 1010년)으로부터 다윗의 왕위 등극부터 다윗 통치의 마지막까지(B.C. 973년) 약 60년 간의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합니다. 한마디로 다윗의 왕정통치를 기록한 책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통합 왕이 되기까지 헤브론에서 7년 반 동안 먼저 유다의 왕이 됩니다. 다윗이 왜 헤브론에서 유다 왕이 되었는지는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다윗의 도피 경로를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마지막으로 도피생활 하던 곳이 시글락입니다. 시글락의 북서쪽에 가드가 있습니다. 블레셋 5개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삼하 1:20). 또한 다윗의 손에 죽은 골리앗의 고향(수 11:22 삼상 17:4) 이기도 합니다. 엘리 제사장 때에 블레셋에게 빼앗긴 언약궤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독종이 전염되어 법궤가 에그론으로 옮겨졌던 곳입니다(삼상 5:8-10). 다윗이 사울의 칼를 피하여 주변의 이방 나라까지 피신을 하였던 것입니다. 가드에 가있자 사울 왕은 다윗 쫓기를 그쳤습니다(삼상 27:4).
이 때는 가드가 블레셋 지역이기는 하지만 블레셋이 국가 통치의 개념이 미약하고 성주가 통치하던 시대입니다. 성경은 다윗이 “6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삼하 27:2)고 합니다. 사울보다 가드 왕 아기스가 더 안전한 것입니다. 아기스는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삼하 29:3)고 합니다.
이 때 아기스에게서 시글락을 받아 1년 4개월을 있었습니다(삼하 27:6-7). 다윗이 가드에서 아기스에게 사흘 머물렀는데 이때 아말렉이 시글락에 쳐들어와서 다윗의 두 아내와 여인들이 사로잡혀 갔습니다. 이 일로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삼하 30:4) 다윗은 600명과 함께 뒤쫓아가서 찾아왔습니다. 다윗이 이 승리의 기쁨에 있을 때 사울 왕은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 군에게 패하여 죽었습니다.

다윗이 바로 이 시글락에 있을 때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듣습니다. 보고하는 아말렉 사람은 자기의 공을 세우기 위해서 사울을 자기가 죽였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대답은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삼하 1:14) 군사를 시켜 그 자리에서 죽입니다.

그리고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삼하 1:23)고 합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고 사울의 아들 중에 40세가 된 이스보셋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군사령관의 아들 아브넬을 중심으로 왕으로 추대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다윗과 아브넬의 전쟁은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요압의 계책으로 아브넬은 살해당하여 죽습니다.
“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삼하 5:4-5). 30세에 왕위에 올랐으니까 20세부터 10년 동안 도피생활을 했고 이 때에 많은 시편을 기록했습니다.

12지파 통합한 후에 ‘여부스’(예루살렘)을 공략합니다. 여부스가 우리는 장애인만 나가도 이길 수 있다. 다윗이 군사들에게 칼을 차라 그리고 수구로 올라가서라도 반드시 여부스를 함락하라. 5-6백년 동안 너희가 빼앗지 못한 것을 너희가 빼앗을 수 있느냐? 그럽니다. 그러나 다윗의 군사들이 하수구로 올라가서 예루살렘 성을 점령합니다.

그 다음에 하는 일이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는 일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예루살렘의 환도와 더불어 왜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느냐 하는 논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와야 합니다.
법궤가 아직까지 예루살렘으로부터 13km 기럇여아림(바알레유다)에 법궤를 모셔오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법궤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잊어버리고 찾지도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법궤는 하나님의 법이요, 하나님의 법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첫 번째 법궤를 가지러 갈 때 3만 명을 뽑아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새 수레를 만들어 실어오려다가 소가 뛰어 웃사가 죽습니다.
다윗은 사람의 수로 밀어붙이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또한 새 수레를 만들어 가지고 오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법대로 해야 되는 것이지 자기 생각이 아닙니다.
그 뒤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 놔두고 옵니다. 3개월 있었는데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이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법궤는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이라고 해도 만지지 못합니다. 고핫 자손은 성물을 운반할 수 있는 지파입니다. 그런데도 법궤는 못 만집니다(민 4:15, 20, 삼상 6:19).
아비나답에 있는 법궤를 수레에 싣고 운반하다가 소들이 뛰어 웃사가 법궤를 만져 죽었습니다. 다윗은 이 일로 매우 상심하였습니다. 그러나 3개월 후에 레위인들로 몸을 성결케 하고 모세의 법대로 운반하게 하여(대상 15:14-15) 법궤 운반에 성공하여 예루살렘에 안치합니다.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대상 15:16) 사실 이 때에 다윗의 성가대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최초의 성가대입니다. 성가대를 조직한 것은 법궤를 옮겨오기 위함이었습니다(대상 15″17-24).
그리고 자신도 기뻐서 뜁니다. 그 분위기 휩쓸려서 보면 모르는데 다른 곳에서 내려다보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미갈이 보니까 다윗이 너무 촐랑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윗이 법궤를 안치하고 미갈에게 가까이 나아갔는데 미갈이 하는 말이 왕이 체통도 없이 그게 뭐냐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완전히 삐칩니다. 여러분! 남자들이 모처럼 기분이 좋을 때, 상처 주는 말을 하면은요 평생 가는 겁니다. 여자는 남자들이 잘 삐진다고 그러는데 남자는 여자보다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상처가 됩니다. 특히 다른 남자하고 비교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다윗이 하나님에 네 집 사울의 집에서 왕위를 빼앗아 내게 주었는데 걱정 말어 너 같은 계집종에게 조롱받지 않을 거니까 걱정 말라고 하고 다시는 미갈를 찾지 않습니다. 이 일 후에 다윗이 밧세바를 취합니다. 다윗이 진정 잘못했지만 미갈이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절정 적인 신앙은 오늘 본문 “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삼상 7:1-2)에서 나타납니다.
사랑의 절정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그러시잖아요.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했을 때 이미 그 마음을 받으신 것입니다.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창대(쉽:!ve):명성,명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삼하 7:9) “위대하게”로 번역된 단어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단어와 같은 단은 ‘쉽’입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마태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마태복음이 어떻게 시작합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이름처럼 명성을 얻은 이름은 세상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은 온 중동 국가들도 다 알고 있으며 많이 사용하는 이름 중에 하나입니다. 다윗 역시 온 세상에서 제일 즐겨 사용하는 이름중의 하나입니다. 아무리 소크라테스가 유명해도 저는 오늘날 소크라테스라고 이름지은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때부터 다윗은 승승장구합니다. 싸웠다 하면 다 이깁니다. 8장에 보면 블레셋 사람에게서 메덱암마를 빼앗고 또 모압을 쳐서 조공을 바치게 하고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자랑하려고 유브라데로 가려고 할 때 쳐서 마병 1,700명과 보병 2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100대만 남기고 모조리 말발의 힘줄을 끊어 가지 못하게 합니다(삼하 8:4) 다메섹과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2만 2천명을 데리고 왔는데 다윗이 다 죽여버립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8:6)

그리고 9장에 넘어가서 사울의 집사람들이 다 죽었는지 알았는데 시바라는 종이 살아있는 겁니다. 다윗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돌보겠다고 합니다. 시바에게 다윗의 또 혹시 살아 있는 사람이 없느냐 은총을 베풀고자 함이라고 말하니까 시바가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를 저는 자니이다”(8:3)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므비보셋인데 다윗은 사울 왕이 가지고 있는 밭을 다 주고 다윗과 함께 왕의 자리에서 밥을 먹게 했습니다.

11장에 넘어가서 생각보다 빨리 다윗에게 위기가 옵니다. 사무엘하가 24장인데 11장에서 다윗이 범죄 하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이 B.C. 1010년인데 솔로몬이 B.C. 990년에 출생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범죄가 이보다 1년 빨리 발생했으니까 B.C 991년입니다. 19년만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왕을 하고 진정한 이스라엘 왕이 된 것은 그 후이니까 예루살렘에 와서는 12년 정도 되어서입니다. 그러니까 약 10년의 기간이 다윗이 제일 흥왕 한 기간이고 그 이전에 도망 다닐 때까지 약 20년 정도가 다윗의 신앙이 좋았던 시기입니다. 20세부터 도망 다녔으니까 20-40세 정도까지가 좋았던 시대입니다.
암몬과 전쟁 중인데 자기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다가 괜히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데려오라고 해서 범죄를 저지릅니다. 나중에 남편 우리아는 다윗이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써서 가장 치열한 전쟁터에서 가장 앞세워 맞아 죽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아가 다윗의 부하들 몇 사람과 함께 전사합니다(11:17). 밧세바는 남편 우리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소리내어 우니라”(11:26)고 했습니다.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11:27)고 했습니다.

나단이 바로 12장에서 나옵니다. 이러면 선지자가 바빠집니다. 그리고 목숨을 내 놓고 전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도 헤롯왕궁의 도덕적 범죄를 지적하다가 목베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단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바로 지적을 하지 않고 이야기를 합니다. 가난하여 아무 집안이 있는데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는 겁니다. 잠도 같이 자고 우유도 먹고 그래서 그 양이 아예 딸처럼 되었다는 겁니다. 몇 일 전 텔레비전에 보니까 제주도 할머니가 돼지를 강아지처럼 끌고 다니는 겁니다. 말이 통하고 돼지가 어렸을 때부터 한집 가족처럼 지낸 것입니다. 동물하고도 잘 지내니까 한 가족처럼 됩니다.
그런데 어떤 지나가던 부자 행인이 있었는데 양 새끼를 빼앗아가 자기 집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아죽이고 잔치를 벌였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삼하 12:5)고 합니다. 바로 나단이 “당신이 그 사람이라”(12:7) 고 합니다. 그러면서 할 이야기 다 합니다. “하나님이 이 꼴 보자고 너를 사울 왕에게서 왕위를 빼앗아 너를 세운 것이 아니다” 라고 합니다.
이후 다윗은 죽지 않지만 자기 자식들이 다 죽습니다. 어떤 분들은 농담 삼아서 다윗도 범죄하지 않았냐고 하면서 이 일을 우습게 생각하는데 자식 다 죽이고 싶으시면 마음대로 하세요. 뿐만이 아닙니다. 이후 다윗의 왕권은 급속도로 쇠약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시 한편 못 씁니다. 차라리 사울의 칼을 피해 도망 다닐 때는 시도 쓰고 하나님께 울부짖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제 범죄 이후 할 일이 없습니다. 사실 여기서 끝난 겁니다.

그 이후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을 내 주고 피난까지 갑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제 3자로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소생입니다(삼하 3:3). 이 사람은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는 이스라엘 중 제일의 미남자입니다(삼하 14:25). 미남은 미녀를 밝힙니다. 미모의 누이 다말을 강간하고 장형 암논을 죽였습니다(삼하 13:28-29). 결국 이 일로 아버지 다윗 왕을 두려워하여 그술 외가에 가서 3년 간 있다가 요압의 주선으로 돌아 왔으나 2년 간 부왕을 대면치 못하였습니다(삼하13:37, 14:1-3, 21:28). 그 후 반란을 일으켜 부왕을 곤경에 빠지게 하고 스스로 왕이라 자칭하고 부왕의 군대와 싸우고 나중에 우거진 나무 속으로 도망가다가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다(삼하 15:7-12, 18:6-15). 20장에 보면 세바의 반역사건도 나옵니다. 그리고 나중에 22, 23장의 승전가는 내용상 지금 승리해서 부른 노래가 아니고 이전에 있었던 것을 편집 상 나중에 붙여진 것입니다.

사무엘하의 마지막 24장은 다윗의 끝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삼 24:1) ‘다시’(요세프)는 이전에 국가적인 재앙이나 다윗 치세 때 하나님이 진노하여 징계를 내리신 사건이 있다는 뜻입니다.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삼하 21:1) 바로 이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다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다윗이 마음에 안 든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그러나 참 씁쓸하지 않습니까? 다윗의 결론은 하나님이 방임하셔서 인구조사를 하게 하시고 결국 다윗은 이것이 하나님께 범죄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삼하 24:10)

여러분!
선한 행실도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선하게 살고 싶어도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도울 만한 자를 돕는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미 범죄 하여 그 이후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고 계속 징벌로 자식 다 죽지요, 반역이 끊일 날이 없지요. 이렇게 되면 이미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사실 다윗의 말년이 정말 아름답게 되려면 모세처럼 신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쳤다는 뭐 그런 기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래도 죽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인구조사나 하여 싸움에서 이겨볼까 하는 생각 아닙니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버리고 경제나 살려봐야 소용없습니다. 경제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왕이 되어야 합니다. 대통령, 목사, 가장인 우리 자신들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다윗을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은 하나님의 법궤가 장막 안에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내가 장막에 있다고 불평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일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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