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목회현장에서의 선교정보 활용

필자는 1986년 한국컴퓨터선교회(KCM)를 창립하여 현재까지 운영해 오고 있으며, 지난 8년 전에 경기도 산본에 주앙교회를 창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두 가지 영역의 사역을 하나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필자가 일만 벌여 놓고 오늘과 같은 강의를 한다는 것을 널리 양지해 주기 바란다.
두 가지 영역의 사역을 하다보니 단점도 있지만 동시에 장점이 있다. 그것은 굳이 선교지향적인 교회라는 표방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선교현장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교회성도들에게 소개하게 되고 함께 기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오늘 제목에 부족함을 한없이 느끼며 임하는 것은 오늘의 전체적인 주제가 ‘스마트미션 소셜네트워크’인데 오늘의 제목 속에도 바로 이점을 부각하여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교회의 부흥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음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필자가 다루어야 할 제목 속에는 이러한 암시는 있지만 교묘히 비켜가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평소에 생각한 것을 부담 없이 나누고 싶다.
교회 목회현장에서의 선교정보 활용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의 문화적인 현상들은 외계에서 가져온 문화가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문화들이 새로운 IT 미디어의 환경에 맞추어 표출된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쇼셜네트워크가 대중화되면서 사실 우리가 염려하던 바가 즉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교회가 뿌려온 상당한 이미지들이 기독교대한 반감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카톨릭뉴스(2009.8.18)에 [아무리 '개독교'라 불러도 한국개신교는 망하지 않는다!]는 씁쓸한 제목의 내용이 실렸다.
“지난 몇 년간 한국교회는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비리와 세습, 물신주의와 성장주의, 수구 보수적 행태,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상징되는 패권적 선교방식으로 ‘개독교’라고 불리며 신뢰도가 급락했다. 지난 8월 15일자(100호 특집) 시사인 여론조사결과(실시기관: 미디어리서치, 전국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 개신교의 신뢰도는 26.9%로 천주교(66.6%)와 불교 (59.8%)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신교 인구가 천주교에 두 배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국민들이 개신교에 가지는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천주교와 불교에 비해 신뢰도는 많이 떨어졌지만 그들의 선교방식과 교회운영은 효과를 발휘했다. 이에 타종교인들은 한국교회의 배타성과 공격성을 비판하면서도 포교나 집회방식을 따라하고 서울 강남과 수도권 신도시에 대규모 종교시절을 지으면서 한국교회와 경쟁하고 있다. 비판하면서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교회는 쉽게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목회자와 교인 간에 이해가 일치하고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와 물신주의에 벗어나지 않는 한 말이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들은 한국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물신주의라고 보고 있다. 이들의 말을 다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2011.7.12) KBS 1TV 뉴스에 ‘모욕죄’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지하철에서 발생한 젊은이가 어르신께 막말을 했는데 이러한 경우 어르신이 젊은이를 대상으로 모욕죄로 고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예를 든다고 하면서 ‘교회 목사가 신자를 향해서 막말을 했다면 모욕죄로 목사를 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정말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힌다. 어쩌다 한국교회가 이지경이 되었는지, 이런 방송이 나와도 지켜만 봐야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이런 이유로 사실 필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아무리 잘 사용한다 해도 원론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문제들이 먼저 선행되지 않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아무리 잘 활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복음을 전달하지 못한다고 본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 10, 12, 18, 21, 25, 31)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다(창 1: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신앙의 기준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창 2:3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라고 하셨다.
모세는 나이 80에 부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사역이 마칠 때쯤이 다 되어서 그는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은 막연히 자기 식으로 생각한다. 가나안 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에 모세도 연대적인 책임을 지고 수장으로서 못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별도로 설명해 주고 있다.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민 27:14)고 하셨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 것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3)고 했다. 그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야 하는데 사탄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물질과 기술만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고 움직일 수 없다.
중국의 경우도 올림픽을 기점으로 국가의 철학을 찾고 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공자이다. 공자를 국가의 철학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무엇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려고 하는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신약성경 중에 유일하게 저자를 알 수 없는 것이 ‘히브리서’이다. 그러나 히브리서가 왜 기록되었는지는 알고 있다.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이 계속되는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배교가 있었다. 이에 대하여 로마에 있던 사도들은 이 소식을 접하게 된다. 로마까지 가게 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대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곳에 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있다. 이런 사도들에게 예루살렘 교회의 배교가 있따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마치 오늘날 선교사에게 한국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무너져 가고 있다는 소식과 다를 것 없다. 뒷문이 열린 것이다. 집안단속이 안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결국은 선교도 힘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기도의 응답이 아니며, 좋은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갈 길은 하나이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길이고 성경을 펴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이다.
제자가 무엇인가?

필자가 e-book에 관심을 가지고 뭘 하나 만들고 있다(ebook.kcm.kr). 현재 우리나라 e-book 시장은 먼저 시스템 프로그램 차원에서 보면 기존에 프로그램 회사들이 개발해 왔다. 그런데 제가 하는 것은 오리지널 e-book개념이 아니고 일종의 e-book 커뮤니티이다. 오리지널 e-book은 이제 기존의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시스템으로 가면 안된다. 단순히 불편한 것말고 전체적으로 표준화나 제대로 된 e-book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기관에서조차 상황 파악을 못하고 기존의 우리 식으로 만든 e-book으로 뭘 만들고 시스템 보급까지 하는 정부 부처가 있다. 또한 기존 프로그램 회사들은 이제 기존 우리 식의 e-book시장을 접어야 한다. 왜냐하면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사장될 개념이기 때문에 그렇다.
필자는 갤럭시 탭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 오려고 아이패드도 구입하기는 했지만. 켈럭시 탭용 e-book은 ‘리더스 허브’ 앱이 있다. 여기에 보면 신문은 월 4,900원 서비스하고요 무료 책은 달랑 16권의 도서가 있다. 전문서적은 2권이 들어 있다. 그리고 만화책 3권 무료 서비스를 하고 있다. 왜 갤럭시 탭이 안 되는지 실상을 보여주는 것다.
구글은 전 세계 100개 이상의 나라에서 3만 5000개 출판사와 1500만 권의 도서를 디지털화하고 있다. 저작권 때문에 문제가 되니까 50년이 지난 책하고 출판이 단종 된 책을 제공해 왔다. 그러다 출판사에서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고발했다. 이에 대해 구글에서는 원 저자를 찾아 말하자고 했다. 그 중에는 행방불명 죽은 사람 등이 있어서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일종의 그 사람이 나타나면 저작권료를 주는 것으로 일종의 비축 금을 마련해 놓으라고 판결이 났다. 구글이 법정에서 밝힌 것은 ‘우리는 역사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인류 역사에서 사장되고 잊혀질 뻔한 책을 살려낸다는 뜻이다.
지난 20일에 구글북스에서 영국국립도서관의 25만 권 중세 시대 장서를 볼 수 있도록 제공하겠다고 한다. 잘 아시겠지만 이러한 e-book시장에 불을 붙인 것이 스티브 잡스가 고안하여 만든 아이패드이다. 또한 유사한 일종의 리더기 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볼 책이 없다.
우리가 세계 속으로 못 들어가는 이유는 이제 기술만이 아니다. 문화이다. 젊은이들의 힙합이 프랑스에 이어 영국에서도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역사상 우리 문화가 서양인들에게 이러한 열광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힙합 문화만 가지고 안 된다.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하고는 말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e-book 시장은 아직도 안개이다.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이라 돈주고 누가 사볼지 모르겠다. 그냥 볼 수 있는 책도 이제 서비스를 나서야 한다. 기계만 파는 회사들이 아니라 컨텐츠를 만들어 내서 서비스를 해야 한다. 문화를 주도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목회 현장에서 선교정보의 이용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필자에게 있어서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향상을 입은 우리들은 자연히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기를 힘써야 한다. 정보가 드리지 않다. 공개 지향적이며 나눔 지향적이라야 한다. 소통의 문화이다. 우리는 지난날 마이크로소트웨어의 원도우 성공신화를 알고 있다. 공개 버전이다. 그리고 아이패드의 신화를 이룬 애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처음 다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을 비우고 공개와 소통과 연결이 필요하다. 유저를 가두어 두는 홈이 아니라 이동하게 하는 것이다.

필자는 설교에 있어서 가능한 필요한 모든 예화는 선교지 이야기로 채우고 있다. 사실 엄청난 이야기는 아니다. 때로는 상당히 위급한 상황에 대해서도 다룬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쇼킹한 이야기를 찾거나 만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미 이러한 이야기들은 ‘미션매거진’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그러니까 상당히 특이하고 신비스럽고 그런 것은 없다. 그저 선교사의 일상을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케냐의 최동훈 선교사가 보낸 ‘먹고 마실 물만 있으면 행복한 것입니다.’란 제목은 그것만 읽어 주어도 선교지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며 상대적으로 우리의 축복을 이해하게 된다.
가끔은 개인적인 경험담을 말하게 된다. 예를 들면 태국에서 골프를 치게된 선교사의 사연을 말하고 이해를 돕는다. 이러한 예는 수도 없다.
헝가리 흥부네 선교사 부부가 있다. 이분들은 변변한 집 하나 없다. 또 그것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편지 하나 보낸 적이 없다. 지하철 공간에서, 공원에서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그곳에서 설교하고 복음을 전한다. 필자를 더욱 감명 깊게 하는 것은 사모님이 행복해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분들도 있다. 캄보디아의 고 오형석 선교사 가족의 비행기 추락사고, 김병관 선교사님은 암 투병 중에 필자를 찾아왔다. 라오스의 김정인 선교사는 아들에게 하나 사줄 노트북을 필자와 같이 사고 아들을 위해 평생 뭐 하나 해 준 것 없었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행복해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 모든 이야기는 필자가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다. 사명이 있다.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지를지 모른다.
선교사의 이야기가 우리를 깨운다. 마치 히브리서가 다시 예루살렘교회에 바른 기독교를 정리해 주듯이 대한민국의 선교사들이 새 소망을 한국교회에 전달해 주는 생수가 된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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