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라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생애(36.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라) / 마 16:21-23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미국의 유명한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통증에 관한 연구를 했습니다. 통증을 느낄 때 그 통증을 약하게 하기 위해서 아스피린을 먹습니다. 그런데 통증을 느낄 때 자기의 과거 추억 중에서 좋은 것을 생각하면 아스피린이 미치는 영향보다도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발표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아스피린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심지어 마약보다도 더 강력하게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대개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불행해집니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에 대한 생각을 했고, 실패한 사람은 실패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클린턴 부부 이야기입니다.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주유소에 갔다가 우연히 힐러리 여사의 옛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클린턴이 부인에 물었습니다. “당신이 저 남자와 결혼했으면 지금 주유소 사장 부인이 돼 있겠지?” 그러자 힐러리가 되받았습니다. “아니 바로 저 남자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있을 거야.”
생각이 여러분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면에서는 환경보다도 내가 생각하는, 내 마음과 내 생각이 크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도 바뀝니다. 그리고 운명도 바뀝니다. 여러분! 인생을 새롭게 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생각부터 올바르게 하시기 바랍니다. 생각부터 새로운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 생각 중에 제일 되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은 베드로
“이 때로부터”는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사람들이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고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3-16절)라고 고백한 때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으로 고난을 받고 죽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는 분위기를 보아서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지금이 고난에 대해서 말할 때라고 본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고백으로 제자들의 신앙이 이 말씀을 받을 만 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간곡하게 만류했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안됩니다.’ 이 대답으로 인해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엄청난 충격적인 책망을 듣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 사단이 틈탄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시험이 옵니다. 인본주의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23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영과 육이 함께 존재한다고 믿고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육체를 위한 일과 영을 위한 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육체를 위해서 일하는 것인지, 아니면 영을 위해서 일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육체를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영을 생각하지 않고 육체만을 생각하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16:20-27절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에 거지 나사로가 있습니다. 부잣집 대문 앞에서 구걸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지나가던 개가 거적데기를 핥고, 한마디로 노숙자처럼 생활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갔습니다. 그러나 부잣집 주인은 지옥에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부자로 사는 사람은 모두가 잘못되었고 반대로 모두 노숙자로 살라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 극단적인 비유를 들으셨습니까? 그만큼 육체보다는 영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육체는 100년을 못삽니다. 하지만 영은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하셨습니다. 즉 육이 영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이 육을 살리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우리에게는 육과 영은 동시에 존재하지만 영에 비해서 육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가 살아가는데 모든 것이 영 중심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해서 하루에 밥 세끼를 먹어야 한다면 영을 위해서는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면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이 헛수고가 아닌가? 등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단순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면 고통스럽고, 또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이 정말 안타까워서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정말 마음이 좋은 분입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 옆에 앉아 세상을 다스리려고 하던 꿈을 버려야 합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슬피 웁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 울음소리를 잘 들어보면 모두가 자기 한탄에서 운다고 합니다. ‘나는 어떻게 살라고…’하면서 운답니다. 남편의 죽어서 불쌍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아갈 것이 한심스러워서 운다고 합니다. 결혼이 진짜 무엇인지 아십니까? 결, 결론적으로 혼, 혼자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만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의 영을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는데 출애굽기 16:26-27에 보면 모세가 안식일에는 주시지 않기 때문에 나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27절 “제 7일에 백성 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먹을 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안나오고 공부하면 잘할 것 같아요. 여러분! 해 봐서 알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일만 한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무엇이 내 삶에 우선 순위인지 분명히 정해 두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면 하나님의 일이 보입니다.
본문 24절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방법을 설명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십자가는 지고 있는데 자기 이름으로 지고있는 분이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그렇습니다. 내가 했다고 말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십자가를 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십자가는 “내가” 빠져야 합니다. 내가 있으면 자기를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한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러면 “내가”대신에 누가 들어가야 합니까? “주님”입니다. 지금 이영제 목사가 설교를 하는 것입니까? 주님이 설교를 하는 것입니까? 이영제 목사가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육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을 보시는 분들은 주님이 하시는 것을 보십니다. 아멘.
베드로는 아직까지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책망을 들은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있습니다. 자기의 욕심이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아는 분이 전화가 왔습니다. 어느 곳에 장로님이 한 분 계신데 지금 교회를 쉬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이분이 하시는 말은 자기는 평신도가 와서 교회를 가자고 하면 안가고 꼭 목사가 와서 교회를 가자고 하면 혹시 갈지 모른다고 저에게 가서 전도해 가지고 모시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전화한 것입니다.
잠시 기도하면서 생각한 것은 장로님도 시험에 드실 수는 있습니다. 베드로도 시험에 들었고 사단이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려고 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마 제가 모셔 올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모셔다 놓고 그분 대접하느라 상당히 바쁘지 않을까 생각해서 감당이 안될 것 같아 원래 다니시던 교회, 장로로 피택하신 교회가 있을 것이니 그곳으로 다니시는 것이 좋겠다 싶어 그곳 교회로 안내하라고 했습니다. 지난 한번은 또 교회가 어느 교단이냐고 물으시는 장로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이해는 됩니다. 신학과 신앙이 같은 곳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좋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래저래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전주안디옥교회 이동휘 목사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입니다. 따라합니다. “성도는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 아멘.

훗날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만을 생각했습니다.
육체만을 생각하다 한 때 예수님의 엄청난 책망을 들었던 베드로는 훗날 영혼의 귀중함을 누구보다도 철저히 깨닫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아멘.
베드로와 같이 변화되는 주앙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 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는데 특별히 제한을 두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 하고 싶다고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목사가 구약시대의 제사장하고는 물론 차이가 있지만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을 감당했었고 지금의 목사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집행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지파 사람이어야 하지만 그 중에서 육체적으로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레위기 21:16-23절까지 제사장 될 수 있는 사람이 나옵니다. 저는 특별히 19절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라고 나옵니다. 제가 왜? 특별히 이 구절에서 은혜를 받았겠습니까? 제가 손 부러졌거든요. 구약성경에서 손이라고 하는 것은 팔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팔이 부러져 군대 현역을 못 가고 방위를 받았습니다. 총 쏘고, 훈련받는데 별로 지장은 없는데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 아니면 살맛이 없는 세상이 될 뻔했습니다. 군대도 현역으로는 오지 말라지요,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도 못되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수 있는 자격도 없지요.
그러나 로마서 10:12-13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사우나 이발소에 머리를 깍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아저씨는 갈 때마다 당신이 한 때 청와대에서 머리를 깍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나 청와대에서 머리깍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부름을 받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아멘.
우리 주앙교회는 개척한지 얼마 안되어 작아서 성가대도 없고, 아직까지 각 부서도 없고 해서 오히려 봉사할 수 있는 기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없는 것이 많기 때문에 또한 할 일이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 맡겨진 직분과 사명 열심히 감당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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